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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신애 Feb 06. 2021

시간이란 놈은...

시간관리자와 함께 일하는 즐거움

procrastinator

#1. 인간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도전하고 정복하고 성취를 이루었다. 자연으로부터 에너지원을 찾아내고 전기를 일으키고 빛을 밝히고 폭발적인 동력으로 땅과 물속과 하늘과 우주까지 달리면서, 자연을 정복해가고 있다. 애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형상을 닮게 지었고, 인간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 중에서 유일하게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고안하며 창작하는 능력이 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들에 도전하며, 새로운 경험에 희열을 느끼고, 정복하고 또 정복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한 조물주의 명령을 잘 이행하고 있는 듯 하다.   


#2.수천년 동안 인간은 자연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왔다. 우물을 팠고, 수도관을 설치하고 하수도를 만들며 도시를 개발했다. 동물을 이용해서 탈것을 만들었고, 문자를 만들어 의사소통과 교육, 문화와 예술 등 보이지 않는 정신 세계에 대해서도 창의성을 발휘했다. 그런데 불과 200여년 전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에너지와 동력의 발견, 대량생산, 물자의 보급, 데이터와 커뮤니케이션의 폭발적 확장 등을 통해 인간사회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뒤바꿔놓았다. 그 변화는 실로 대단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어릴 적 SF영화에 등장하던 장면들이 불과 몇 십년만에 현실로 다가온 것들이 상당하다. 컴퓨터의 상용화나 로봇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자율적으로 생각하는 기계인 AI가 등장했다. 기대반 우려반으로 AI를 평가하지만, 아직까지는 AI가 인간생활에 유익함이 더 많고 잘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에 힘입어 계속해서 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가상현실과 증강현실도 제법 '말이 되는' 설정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일본과 독일이 저지른 인간 생체실험을 통해 축적된 정보로 인간생명에 대해서도 도전적 행보가 시작되었다. 유전 연구와 줄기세포 연구, 생명복제, 신물질과 신약의 개발 등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3. 인간이 아직 극복하지 못한 영역은 시간인 것 같다. 이쯤되면 타임머신 하나 등장할 법도 하고, 마시면 어려지는 샘물이 개발될 것 같기도 한데 말이다. 아마도 시간을 거꾸도 돌릴 수 있다면 암치료제 개발도 필요없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유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초월하는 것은 신의 영역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고, 개연성을 두지 않는다. 모든 여성들이 '별에서온그대'의 김수현을 마음놓고 사랑하는 것은 그가 인간이 아닌 것을 아는 까닭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우리가 좌절하는 일들의 가장 흔한 이유는 시간 탓일수도 있다. 무한대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지금의 실패가 좌절이 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역으로 무한대의 시간이 허락된다고 해도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다. 그래서 알베르 까뮈는 영원히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위해 돌을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숙명을 보면서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시간의 한계 앞에서는 누구도 어쩔 수 없다.


#4. 사무실에서 일할 때 제일 보기싫은 사람이 시간을 갖고 쪼아대는 사람이다. 굳이 급하다고 독촉하지 않아도 급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일부러 마음을 불편하게 하려는 듯 눈 앞에서 얼쩡대면서 시계를 가리킨다. 한 번만 얘기해도 충분할 것을, 주기적으로 나타나서 타박을 해대면 정말 속에서 미움이 불처럼 솟아오른다.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한 두 번 참다가 폭발하기도 한다.  "제가 알아서 할텐데, 이제 고만하시죠! 그런다고 바늘 허리에 매어 쓸 수 있나요. 급하다고 대충하면 나중에 사고 나요." 나름 일리있는 충고이고 변명이다. 그러면 시간관리자는 "그러게 미리 챙겨두라니까 왜 그걸 꼭 이제서야 합니까. 할 일을 제때 못해두어서 늦게 시작하니 시간이 뒤로 밀리지요. 마감일은 정해져 있는데 그렇게 임박해서야 하면 제대로 검토할 시간이 부족해서 더 문제가 되잖아요."라고 하면서 속을 긁는다. '에효... 괜히 말했다' 싶을 정도다.  


#5. 아는데 잘 안된다. 다음에는 꼭 미리 해두어야지 라고 곱씹어 다짐을 해도 안된다. 습관이기도 하고 무얼해야 할지 손에 안잡히기도 하다. 뭔가 루틴(routine, 일상)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시간은 통제가 안된다. 그런데 아무리 작은 루틴이라고 해도 갑자기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나름 반복을 통해 별생각없이도 행해지는 습관처럼 굳어져야 루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연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시간을 잘 쓰려면 소소한 시간 연습을 해야한다.


#6. 지난 해에 생전 처음 해본 일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중 가장 어려웠던 것을 꼽으라면 책을 쓴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그래요, 글 쓰는게 참 어려워요'라고 호응해 준다. 그런데, 내가 겪은 어려움은 글 쓰는 어려움이 아니다. 쪼가리 글들은 평소에도 써봤다. 글쓰는 것이 그다지 어렵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석사 논문을 쓸 때도 거짓말 조금 보태서 2주만에 초고를 썼고, 연구 보고서를 쓸 때도 수십 페이지를 며칠만에 끝내기도 한다. 쓸 내용에 대한 생각이 명확하고 단촐하면 쓰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책은 완전히 달랐다. 마치 아이를 낳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책을 왜 쓰고자 하는지, 공감해 줄 독자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거기에 맞춰서 주제와 컨셉을 읽히는 방식으로 구성하고, 문체를 정하고, 적절한 스토리를 담는 등등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목표'를 두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내 글을 읽을 가상의 독자들을 상대로 나를 커스터마이징하는 느낌이었다. 몇 달째 나는 시지프스처럼 돌을 굴렸지만 다시 제자리에 있는 시간 보냈다.


#7. 개인적으로 애덤 그랜트 박사를 좋아한다. 여러가지 매력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그의 특이한 시선을 좋아한다. 지극히 평이한 결론에서 출발해서 색다른 결론을 이끌어내는 묘한 재주가 있는 연구자이다. 그가 TED강연에서 procrastinator(일을 질질 끄는 사람)과 precrastinator(일을 미리 해치우는 사람)의 예를 들면서 진짜 대단한 아이디어와 성과는 막판에 시간이 쪼들릴때 나오기 때문에 사회변혁가들은 procrastinator들이 많다는 주장을 할 때 내 머리가 반짝 깨어났던 기억이 난다. 나도 마감시간이 되어서야 제대로된 성과물을 내는 사람중의 하나라는 것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내게는 늘 불편한 진실이었는데, 애덤 그랜트 덕에 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8. 불행 중 다행인지 내가 책을 쓰면서 두번째로 만난 에디터는 나의 천적과도 같은 기질을 가진 분이었다. 아주 부드럽고 예의바르게 연락했지만 내게 칼같이 시간을 들이댔다. 속으로는 하루나 이틀만이라도 늦게 연락이 오길 바랬는데, 그 분은 내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어김없이 확인하고 확인하고 확인했다. 물론 내가 놀면서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가을에 나는 한편의 연구보고서와 두편의 컨설팅 보고서와 두개의 프로젝트 기획서를 내고, 그 외에도 20개가 넘는 강의주제를 소화하고 있어서 짬이 없다는 것이 진실이었다. 그러나 이 정확한 에디터는 아예 묻지를 않았다. "바쁘셔서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라고.. 대신 계속해서 마감날짜를 들이댔고, 마침내 내가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어떻게든 쳐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9. 훌륭한 시간관리자였다. 결국 그 분 덕택에 책이 태어났다. 산고를 거친 것이 맞다. 내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산고를 치렀다. 한가지 즐거웠던 것은 그런 압박감 속에서도 무언가 든든한 것이 있었다는 거다. 누에가 실을 뽑듯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글을 뽑아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길을 잃는다거나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똑바로 하고 있는건가 라는 따위의 의심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알고 나는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는 자기 역할을 충분히 잘 해주었고, 나는 모르지만 그 것을 신뢰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가 나를 배려하느라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쯤 그를 마음 한구석에서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0. 내 인생에 좋은 시간관리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몹시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직장 상사나 선배일수도 있고, 집에서는 배우자나 부모일수도 있으며 교회에서는 목사님이나 사역자들일 수도 있다. 가끔은 파트너이거나 라이벌일수도 있다. 시간관리자는 늘 악역에 가깝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부담을 안긴다. 널부러져 있고 싶은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를 쪼는 그 시간만큼은 그가 가장 피하고 싶은 1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덕에 다음 코너에 영광과 기쁨이 내 몫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막판 스퍼트(spurt)를 감당해야할 그 순간에 나를 지탱해주는 그 사람이 바로 나의 시간관리자이다. 그를 믿고 그와 함께 코너링을 즐길 줄 안다면 감당이 안되는 시간 게임 속에서 조금이나마 시간의 묘미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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