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복지협의회 복지저널 2021년 5월호 게재]
기부금품법, 어떤 법인가?
2020년 21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의회 입법안에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약칭 기부금품법)’ 개정안이 연달아 발의돼 2021년 4월 말 현재까지 총 20개의 안건이 제출됐다. 지난해 발생한 정의연 사건의 후속조치로 보인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입법안들은 공익단체의 모금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깔고 기부금 모집과 사용에 대한 감독과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한다. 기부금품법은 행정안전부 소관법이다. 모금하는 주체들이 일정 조건에 해당되면 모집 등록하고 모금활동과 기부금 사용의 감독을 받도록 요구한다. 원칙적으로 모금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야 한다. 결핵예방법, 재해구호법, 국가보훈법, 식품기부법, 문화예술진흥법,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등 법에서 정한 몇몇 예외사항이 있기는 하다. 이들을 제외해도 그 적용 범위가 매우 폭넓기 때문에 부지불식 간에 불법모금을 하다가 처벌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 법에 대해 아는 이들이 많지 않고, 막상 법을 따르려 해도 내용이 너무 애매하고 복잡해 준용하기도 어렵다. 도대체 이 법이 언제부터 있었냐고 더러 묻기도 한다. 평생 사회복지사업을 해왔지만 이런 얘길 들어본 적이 없고, 사회복지는 사회복지사업법으로 규율받기 때문에 해당이 없다고도 한다. 사회복지사업법은 기부금품법의 예외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모금을 하는 모든 사회복지법인과 기관, 시설은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된다.
기부금품법의 역사는 길다. 최근 연구들은 법의 역사를 3구간으로 나누기도 한다. 금지법 시기(1951.11~ 1995.12), 규제법 시기(1995.12~2006.3), 사용법 시기(2006.3~현재) 등이다. 1951년 11월 시작된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은 1995년 12월 ‘기부금품모집규제법’으로 바뀔 때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한국전쟁 후 사회와 국가재정의 궁핍, 각종 세금의 증액과 인플레로 인한 국민 생활 핍절, 멸공 구국의 미명으로 모금 부작용 증가 등의 상황에서 국민 재산권 보장과 생활 안정을 위해 모금활동을 금지한 것이다. 한편, 경제 발전과 88올림픽 개최 등으로 사회환경이 바뀌고 국내외 공익 자선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기부금품모집을 계속 금지할 수만은 없어 1995년 12월‘기부금품모집규제법’으로 전면 개정하고 허가제를 도입하였다. 대신 허가대상을 구휼사업, 불우이웃돕기 등 자선사업 및 국민 참여가 필요한 사업으로 한정했고 모집 완료 시와 기부금 사용 시에는 결과를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무분별한 모집을 막고 기부금품 모집과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려 했다. 규제법은 한자 표기가 많아 이해와 적용이 어려웠기 때문에 2006년 3월에는 그 명칭과 내용을 알기 쉽게 한글화하면서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었다. 이때 모집허가제를 등록제로 바꾸고, 국가 또는 지자체 출연 법인의 모집을 제한하며, 한동안 지나치게 낮추었던 모집비용 충당비율을 다소 상향 조정하여 현실화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모금을 규제하는 것 자체를 바꾸지는 않았다.
그동안 문제되지 않았던 기부금품법, 왜 지금 문제가 될까?
1995년까지 금지된 행위로 묶여 억제됐던 모금이 허용된 후 2000년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기부금 세금감면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국민들의 기부가 증가했고, 비영리단체들의 미디어 모금활동, 금융기술 변화 등이 더해졌다고 보인다. 모금은 양적, 질적인 성장을 이루었고, 미디어와 모바일, 핀테크 기술 등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모금 주체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문화도 싹트기 시작했다. 기부금 세금감면이 증가함에 따라 2010년도부터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서서히 기부금단체 관리, 공익법인 회계기준 마련, 공시시스템 도입과 강화 등으로 공익법인과 기부금 사용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반면, 기부금품법은 -2006년 법의 목적을 기부 활성화 추구로 바꾸기는 했지만- 크게 바뀌지 않았고 모금은 여전히 규제할 행위였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와서 기부사건이 몇 개 터지고 투명성 이슈가 제기되자 갑자기 규제를 높여야 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정리해 보면, 2000년 이후 공익 모금 활동의 증가와 다변화 속도에 비해 법 제도의 현실화 속도는 느리고 부처별 차등 접근이 이루어짐에 따라 제도와 현실 간에 괴리가 생긴 것이다. 이런 복잡한 배경 탓에 법의 변천 흐름을 모르고 법 문구만을 읽어보면 무엇이 문제이지 쉽게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이 법은 콕 찝어 말하기 어려운 묘한 구석이 있다. 모금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면, 모금 현장의 구체적인 상황과 정보를 기초로 사례 해석을 해야만 한다. 문제는, 이 법을 적용하기 위한 사례분석 자료나 기타 보조적인 안내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따라가 보면 법률상 용어와 개념의 모호함이 있다. 언뜻 보면 법 문구는 명확해 보인다. 법의 주된 내용은 모집 등록이다. 모금 주체가 1천만원 이상 모금을 할 때 사전등록을 해야 하고, 등록 시 제출한 모집 계획, 결과, 기부금 사용까지 관리 감독하며, 이를 지키지 않거나 모집 등록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등)을 받을 수 있다. 모집등록에 대해 공익 종사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그럼, 지금 내가 하는 모금이 모집 등록 대상인가’이다. 법에서는 ‘불특정 다수에게 1000만원 이상 반대급부가 없는 기부금품을 모집’하는 경우 등록을 요구한다. 이에 해당되어 등록된 기부금은 국세청에 신고되는 전체 기부금의 10% 미만 수준이다. 역으로 말하면, 우리나라 총기부금 중 90%는 기부금품 모집 등록 대상이 아니거나 또는 누락된다. 한편, 주무관청에서는 모집 등록을 받을 때 (자의적으로) 요건을 엄중히 따져 가려받고, 요건을 갖추지 못한 대상은 아예 등록을 받아주지 않는다. 쉽게 말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은 아예 등록받지 않겠다는 판단이다. 결국 대부분 기부사고는 미등록 건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미등록한 모금은 주무관청에서 조사도 하지 않고 책임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등록이 반려된 자가 불법모금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한편, 등록이 된 모금들은 주무관청의 검사를 받게 되고, 잘못의 경중을 따져 벌금 등의 처벌을 내린다.
대부분 복지관과 시설들은 일부 사업비 마련을 위해 모금을 한다. 만약, 기관 홈페이지에 후원계좌를 노출하고 복지관 이용자, 주변 상가, 지인들에게 후원을 꾸준히 요청하고 연간 모금액이 1000만원 이상이라면 이 복지관은 모집 등록을 해야 할까 안 해도 될까.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후원계좌를 노출했으니 등록해야 할까 아니면 후원자의 자발적 입금이니 안 해도 될까. 몇 년 전 주무관청은 홈페이지 계좌 노출 행위는 모집 등록 대상에 포함된다고 해석했었다가 최근에는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몇 년 전 홈페이지 계좌 노출이 모집 등록 대상이라고 들은 기관들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등록하지만, 최근 바뀐 해석을 들은 기관은 모집 등록을 안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법에서는, 모집 등록 대상이면서 등록을 안 하면 형사처벌을 받도록 한다. 같은 행위인데 담당자의 해석이 달라 처벌 여부가 달라질 수 있을까. 결국 감독의 내용이 고무줄처럼 되어버린다. 참 이상한 제도가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동안 이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지난해 이후 상황이 달라져서 등록된 대상을 전수조사하기 시작했고 법 개정을 통해 감독과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기부금품법의 해석과 적용은 수십 개, 수백 개의 상황을 안고 있다. 모금을 위한 바자회, 걷기대회와 등반대회, 일일주점이나 만찬회, 온라인 모금과 크라우드펀딩, 기업후원, 기업고객과 함께 캠페인, 정기후원 모집 등이 있는데 각각의 경우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아무 데도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모집 등록 대상이 법에 명시되었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담당자 해석이 필수다. 그러니 담당자의 공익 업무 이해도에 따라서 판단이 갈리고, 모집 등록 상담을 할 때마다 담당자의 결정이 오락가락하고, 새롭게 전보된 담당자가 현장 검사를 하면 단체들과 언쟁을 하기 일쑤다. 합의된 원칙이 없는 것은 중앙관청과 각 시도 주무관청 간에도 마찬가지다.
기부금품법 개정, 현재 발의된 개정안들이 통과되면 어떻게 될까?
발의된 20개의 법안 중 유효하게 검토되고 있는 의안의 핵심은 온라인 기부통합관리시스템 도입을 위한 근거 마련, 모집 등록 대상의 확대, 기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장부 공개 의무화,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대한 검사 강화, 그리고 위반 시 처벌 강화 등 이다. 정의연 사건의 후속 조치이기도 하지만 기부금 투명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모든 것은 결국 기부 투명성을 높이자는 것인데 각 내용들은 투명성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고, 단지 담당부처가 나름 통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형식을 만들어 줄 뿐이다.
현재 발의된 기부금품법 개정 안이 통과된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연간 1000만원 이상 모금을 할 때 반드시 온라인 모집 등록을 해야 하고, 모집이 끝나거나 기부금 사용이 끝나면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고 공시해야 하고, 모집계획과 상황이 바뀌면 관청의 허가를 얻어서 기부금을 사용해야 하거나 아니면 기부자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기부자가 요구하면 14일 이내에 기부금 모금 및 사용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필요시 행정안전부가 기부금 관련 장부를 요구하면 제출해야 한다. 10억원 이상 모금하는 기관들은 행정안전부 검사를 매년 받도록 하고, 이 모든 것들을 이행하지 않으면 3000만원 이하 벌금 또는 3년 이하 징역을 받게 된다. 이 모든 사항은 각 공익법인 및 단체들이 주무관청과 국세청 보고사항과 별도로 이루어진다.
모금현장은 이미 매우 고도화되었고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모금 주체들은 국세청에 기부금단체 자격을 얻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며, 법인 회계 및 기부금 관련 정기 공시를 하는 등 의무사항이 많아졌고, 국세청은 불법 영수증 발급 조사나 기부금 사용 감독을 통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기부금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단체들의 모금활동도 바뀌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단발적인 모금 이벤트를 하는 대신 정기후원 모집과 같이 지속 가능한 장기적 후원을 하는 곳들이 많아졌고, 자발적으로 후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다각적인 소통의 노력을 기울인다. 금융기술의 발달로 일시 후원보다 정기 후원이 늘었고,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한 모금활동이 압도적으로 증가했다. 고액 자산기부나 유산기부도 늘고, 현물과 상품, 마일리지나 포인트, 미술품, 부동산과 주식, 소프트웨어, 저작권과 판권 등 다양한 환금성 가치들이 기부에 등장한다. 한편, 공익법인 외에도 셀리브리티를 위한 팬클럽과 개인 인플루엔서들의 후원 요청도 눈에 띄게 늘어 ‘후원’의 개념이 영리와 사적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기부 투명성,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기부자의 판단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 모금활동을 할 때 준수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만들고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다. 그런 제도가 있는지 몰라서 못 지켰다는 말이 안 나오게 해야 한다. 정부는 민간에 직접 개입해서 세부내용을 결정하는 관리자가 될 것이 아니라, 현실이 반영된 통합 정책을 마련하여 이중적인 행정부담은 낮추고 실효성은 높이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특히 기부 투명성을 높이려면 다음 사안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는 합목적성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 이 법의 목적은 규제가 아니라 기부 투명성 제고와 활성화이다. 과거 ‘규제’ 프레임에 갇히면 목적도 효과도 상실하게 된다. 기존 틀에서 벗어나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하여 현 상황을 최대한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이 최선이다. 둘째, 기준과 개념, 용어들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기준이 모호하면 자의적, 임의적인 해석이 많아지고 일관성도, 형평성도 무너지며, 적용도 어려워진다. 만약 모집 등록을 꼭 해야 한다면 그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 모집자격, 등록 대상, 등록 주체, 미등록 대상, 허용 불가 등의 내용을 명확히 할수록 좋다. 현재 기부금품법의 문제들은 대부분 애매모호한 개념 때문에 생긴다. 셋째, 국세청의 공익법인 및 공익단체 공시제도와 의무이행 제도 등 유사한 제도 간의 합리적 조정을 해야 한다. 기부 투명성은 기부문화 활성화와 직결되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내용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민간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비영리단체의 투명성은 정부가 아닌 국민에 대한 책임성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정부는 관리자적 입장이 아닌 정책과 제도로 접근해야 하며, 국민과 비영리단체의 입장을 반영한 통합시스템을 마련하는데 힘써야 한다. 영국과 호주, 미국 등은 각자 상이한 방식이지만 총괄 정부기구와 통합된 법적 제도적 시스템 및 자율규제 기구를 통해 접근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길을 잃지 않으려면 다시 한 번 지도를 꺼내들고 좌표를 확인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글. 황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