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일기

#001. Prologue

by Minjung Emma Kim

어젯밤 과음을 좀 했더니만 일어나고 보니 오전 11시가 넘어있었다.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나 쉐어하는 주방으로 나가니 플랏 메이트이자 랜드로드인 아담이 토스트 한 조각에 잼을 발라 먹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며 어제 해 먹고 남은 흑미밥으로 간단하게 볶음밥을 만든 후 달걀을 얹어 오므라이스를 만들었다. 내가 이 낡고 오래된 플랏에 이사 들어온 지 벌써 4개월이 지나가지만, 아침 식사를 만들 때마다 여전히 아담은 내가 만들어 먹는 아침 식사가 항상 거하지 않느냐며 놀리곤 한다. 아침은 간단히 먹고 저녁을 거하게 먹는 그네들에게 나의 간단한 아침식사는 전혀 간단하지 않게 보이는 것이다. 단언컨대 쌀을 사랑하고 신봉하는 한국인으로서 도대체 왜 밥이 거한 아침 식사가 되는지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생각을 내 식대로 이해하려고 하면 결국 골치가 아파지는 건 나다. 그러니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해하려 들지 않고 내 식대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만들어 아주 맛있게 해치웠다.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정리해 넣고 지난 12월 잠깐 한국에 들렸을 때 챙겨 가지고 온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로 아이스커피를 만들었다. 세상 모든 커피를 좋아한다 말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커피는 맥심 모카골드다. 석회가 잔뜩 낀 포트에 물을 끓이며 창밖을 바라보니 날씨가 정말 환상적이다. 역대 최고로 따뜻한 2월이라는 요즘의 런던은 코트를 걸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따뜻하다. 물론 이상기온과 지구 온난화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지만 나처럼 간사한 보통 사람의 마음은 일찍 찾아온 봄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특히 해가 잘 뜨지 않는 런던의 겨울에서 만나는 햇살은 정말이지 사람을 무진장 행복하게 한다.


어젯밤 디시 워셔를 돌리지 않아 남아있는 머그가 없었다.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와인잔에 따라 방에 들어왔다. 랩톱을 켜고 한국에 있는 친구 S와 근황에 관해 간단하게 카카오톡 대화를 나눴다. 나는 아침이지만 그녀는 버스에 앉아 집에 돌아가며 늦은 일요일 저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좋은 친구이자 예전 직장동료였던 S는 주말인 오늘 야근을 했다. 그녀와의 대화는 내가 지난 1년 반 동안 잊고 지냈던 내 지난 직업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준다. 염색, 재단, 패턴 뜨기 등 여성 속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작업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약 3년간 속옷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나는 그 일들을 끔찍하게 싫어하게 되었었다. 처음엔 분명 좋아서 시작한 직업인데, 나를 고단하고 지치게 했던 반복적인 직장생활은 내가 좋아했던, 재밌어했던 것들이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 돋을 정도로 싫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 1년 반 그 진절머리 나는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 온 나로서는 싫어했던 것들에 대한 나쁜 기억들은 모조리 지워진 채 오히려 혐오했던 그것들에 대한 낭만적인 향수에 젖는 것이다. 항상 말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기 짝이 없다. S와 서로의 신변잡기에 대한 짧은 수다를 마치며 나는 그녀에게 런던에 1년 정도 더 머물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막상 1년 더 체류하기로 하기 전에는 몰랐던, 하지만 막상 한국행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아쉬워지고 마는 한국의 것들과, 보고 싶어 지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나보다 1살 어리지만. 오히려 더 성숙한 그녀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미 결정한 이상, 아쉬워하지 말라고. 그래 맞는 말이다.


그녀와 대화를 마친 후 나는 재작년 11월 런던 히스로 공항에 첫 발걸음을 내딛던 순간을 떠올렸다. 5년 만에 밟는 런던이었다. 2012년 내 첫 유럽여행의 시작 지점도 히스로 공항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소름 끼칠 정도로 그대로였다. 오기 전부터 걱정했던 악명 높은 히스로 공항의 입국심사는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일을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이는 젊은 여자 입국 심사관은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꼬투리를 잡아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입국심사도 통과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지던 찰나 지나가던 그녀의 동료가 나를 구해주었다. 심사를 통과하고 긴장이 풀리자마자 낯선 곳이 주는 새로운 두려움이 나를 엄습해왔다. 약간 주눅 든 채로 짐을 찾아 출국장을 빠져나오니 한국에서 미리 고용했던 중년의 한국인 택시기사가 나를 마중 나와 있었고 그의 밴에 올라타 예약한 숙소로 출발했다. 아버지 뻘쯤 되는 연배로 보이는 그는 나의 모든 것이 궁금한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너처럼 착하고 아름다운 아가씨에게는(?) 자신이 일자리를 구해줄 수도 있다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 아저씨에게 언제든 연락하라면서 호기로운 척을 했다. 그의 그런 호기로움이 나는 너무나도 불편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쩌면 죽어도 버려지지 않을 그놈의 착한 아이 신드롬 때문에 그의 말을 자르지 못하고 네, 네 해주며 그가 말하게 놔두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기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귀찮았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창밖으로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런던 시내의 모습은 나를 사로잡았고 동시에 한국 두고 온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벌써부터 나를 쓰나미처럼 덮쳤기 때문에 그의 말은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이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다시 인천공항에서 떠나던 때로 돌아가 보면, 나의 영국행을 우려하는 주변 모든 이들을 뒤로한 채 남편,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을 한국에 남겨두고 런던으로 떠나겠다고 패기 있게 선언했던 나였다. 그러나 홀로 선 이국땅에서 주는 생경함은 나를 움츠러들게 헸는데 특히 13시간 전 한국을 떠나오던 순간의 기억이 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혼자 가겠다고 해놓고선 나는 공항에 나를 배웅 나온 남편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막상 한국을 떠나려니, 그것도 남편을 두고 가려니 너무 무서웠다. 지금이라도 당장 당신 곁에 남겠다고 하고 싶었다. 남편은 그냥 나를 끌어안고 나를 바라보며 웃어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네가 원하면 가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눈빛. 하지만 나는 알량한 자존심에 나를 팔았고, 그의 눈빛을 애써 무시한 채 그를 뒤로 하고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그게 2017년 11월 7일이었다. 떠나가는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에게 배시시 웃어주던 남편의 모습과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펑펑 울던 광경을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흥미롭게 바라보던 공항 검표원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주말부부였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남편이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5시간 떨어진 거리의 회사로 취업이 되면서 우리는 약 4년간 장거리 커플 생활을 한 뒤 결혼 후에도 주말부부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2016년 10월이었을 것이다. 날이 매우 좋았던 토요일 오후 우리는 오랜만에 프러포즈받았던 남산 소월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얘기하고 여느 때와 같이 남편에게 해외 이민 갈 것을 종용했다. 끊임없는 설득에도 넘어오지 않는 남편에게 결국 나는 언성을 높이며 도대체 언제 이민 갈 거냐고. 가기로 하지 않았냐고. 정 이민 가기 싫으면 더 늙기 전에 1-2년이라도 둘이 나가서 살다 와보자며 협박도 해보고 애원도 했다. 내가 풀이 꺾일 때쯤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던 남편은 짧게 대답했다.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나는 정말 한국을 떠나서 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네가 그렇게 가고 싶으면 너만이라도 1, 2년 다녀와. 난 여기서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줄게."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코웃음 치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지키지도 못 할 말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은 여느 때와 달리 진지했다. 나는 그 순간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남편은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원래는 절친 J가 살고 있는 유럽의 대도시를 가고 싶다고 했다. 근데 왜인지 어차피 외국 가는 거 돌아와서 쓸만한 영어라도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J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런던으로 이어졌다. 그날 이후로 내가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남편의 마음이 변해서 절대 런던에 가지 못할 것 같았던 나는 불도저처럼 런던에 대한 조사와 이국 생활에 대한 계획을 짜서 추진했다. 남편은 약속대로 묵묵히 나의 계획을 도와주었다


남편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그는 정말 나의 가장 큰 버팀목이자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람됨을 알기 전에는 그의 외모만 보고 좋아하기 시작했었는데, 그 당시 내 눈엔 너무나도 잘 생기고 멋있어 보였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안경을 쓰고 있는데 안경은 그를 잘생기고 지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다부진 어깨와 가슴팍 그리고 큰 키는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사람처럼 보였다. 거기다 항상 성적은 과탑이라 6학기 동안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아르바이트까지 해서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한 멋있는 사람이었다. 우리 둘이 어울린다고,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었지만 이러저러한 역사를 거쳐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고 5년 반의 연애를 거쳐 2015년 12월 결혼에 골인했다. 나에게 내 남편은 사랑하는 연인이면서도 버팀목이자 선생이자 부모 같은 사람이다. 한 스타 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를 육체적으로 성장시켜주는 것은 나의 부모이지만, 정신적인 성장을 완성해주는 사람은 배우자라고 했다. 그는 딱 그 말에 들어맞는 사람이다. 항상 감정적이고 자존감이 낮았던 나를 내 남편은 감싸 안았고 가끔은 쓴소리를 해 주었다. 물론 쓴소리를 들을 때마다 우린 미친 듯이 싸우기도 하지만 우린 서서히 서로를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현명하게 싸움을 피해 가는 법을 깨달았다. 그런 모든 과정은 오늘의 우리를 완성시켰고 그가 앞으로의 나를 완성시킬 사람이라는 것에 조금의 의심도 없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그에게도 나의 영국행은 매우 힘든 결정이었다. 오히려 반대가 심할 줄 알았던 나의 어머니와 시부모님은 별말 없이 우리의 결정을 응원해주셨지만, 그 외의 주변에서는 다들 그를 미친놈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주말부부면서 왜 더 멀리 떨어져서 살려고 하냐, 이렇게 살 거면 결혼 왜 했냐부터 시작해서 뭘 믿고 마누라를 혼자 해외에 내보낼 생각을 하느냐며 멋모르는 얼빠진 놈이라고도 했다. 앞에서는 대단한 결정을 했다며 칭찬할지언정 뒤에서는 비웃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직접 영국에 가기로 한 나보다, 나를 보내주기로 한 그에게 오히려 더 주변의 시선이 꽂혔다. 나는 그에게 억울하지 않냐고, 당신이 원한다면 그만두겠다고도 얘기했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단 한마디로 나를 안심시켰다. "정말 네가 해보고 싶은 일이니까 꼭 해봤으면 좋겠어. 그렇게 해서 네가 행복하다면 난 그걸로 행복해." 그 순간 도대체 내가 어렸을 적 무슨 좋은 일을 했기에 이런 사람을 만난 것인지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 결혼식 테마곡이었던, Sound of music의 OST [Something Good]의 가사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남편에 대한 주변의 평가가 가혹(?)했던 반면에 내 주변에서는 내가 대단한 결정을 했다며 부럽다고 추켜세워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뒤에선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무슨 생각을 하건 그건 그들의 몫이기에 별달리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 걸 신경 쓰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저 내게 있어 중요하고 확실한 건 남편이 없었다면 런던 아니 외국에서 살아보는 경험은 하지 못했으리라는 것뿐이었다. 그와 온전히 함께한 20대의 시간을 통해 나는 내가 되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런던에 왔고 오늘로써 1년 하고도 3개월 17일째다. 그리고 얼마 전 올해 6월 최종 귀국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1년 더 체류하기로 남편과 합의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도록 하겠다.) 내가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때 올해 나와 같이 살 꿈에 부풀어있던 남편은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한참 동안 내가 왜 여기에 1년 더 남아있어야 하는지 열변을 토하는 것을 듣기만 했다. 나의 긴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로도 뜸 들이던 그는 입을 열었다. 그때와 같이 나를 기다려주겠다고 하지만 더는 안 된다고. 다시 한번 남편에게 빚을 지게 된 나는 기쁘게 약속했다. 1년 뒤엔 반드시 돌아가겠으며 받은 만큼 당신에게 돌려주겠다고.


그렇게 나는 그로부터 런던에서의 마지막 1년을 다시 선물 받았다. 그리고 선물 받은 이 1년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변화해야 하는 시점에 오게 되었다. 나를 괴롭히고 짓누르는 모든 것으로 도망치고 벗어나려는 지난 1년이었다면 새로 시작해야 하는 1년은 다시 그 모든 것들로 돌아가야 할 준비를 해야 하는 1년이다. 다행히 나는 지난 1년간의 타국 생활을 통해 깨달은 귀한 것이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지만 지난날에는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던 것들. 어디에 살든, 어느 조건으로 살든 모든 것은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 다는 것을 나는 마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완전하게는 아닐지라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힘들다면 힘든 외국 생활을 통해 지난 20대 내내 멋모르고 가졌던 외국 생활에 대한 판타지는 깨진 지 오래되었고 오히려 내가 현실적으로 변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내년에 돌아가게 되면 즉 돌아가야 하는 내년 5월이 되면 우리가 연인관계를 시작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며 내가 만으로 서른이 된다. (물론 한국 나이로는 올해 서른하나지만 난 여기서 만 나이로 살고 있고 만 나이가 내 나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는 또 다른 10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10년을 맞이하기에 앞서 뭔가 내 삶을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고 싶었고 또 사실 서울을 떠나올 때 계획했던 것이지만 하지 못했던, 글로 나의 런던 생활과 내 생각을 정리해 연재해보려고 한다. 서투르지만 또박또박 꾸미지 않고 내 마음을 담백하게 써볼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이 모든 과정이 쌓여서 앞으로 펼쳐질 30대를 준비할 수 있는 양분이 되는 기록이 되어주리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드라마[도깨비]의 클립 영상을 보다가 마음에 닿는 대사를 접했다. 많은 이들이 기적의 순간을 접하고 나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고 그들은 또 다른 기적의 순간을 기다리기만 한다는 대사였다. 내 남편을 만나고 런던에 오게 된 것은 내게 기적 같은 일들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또 1년이라는 기적을 선물 받았다. 기적을 세 번이나 선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기적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차례다. 멈추지 말자고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