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냉동고_네덜란드 편

#1. 암스테르담과 레이우아르던_2012년 2월 29일 - 3월 3일

by Minjung Emma Kim

나는 그다지 성실한 편은 아니라 여행을 하며 일기를 쓰거나 글로 기억을 남겨놓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이나 동영상 외의 매체로 기억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잊어버리기 전에 천천히 내가 다녀온 여행지들(주로 유럽에 집중된)의 기억을 글로 남겨볼 생각이다. 여행지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아주 오래된 기억들을 되짚을 때도 있을 거라서 여행의 정보는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기억을 풀기에 앞서, 네덜란드는 내가 유럽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다.

가장 좋아하는 나라라고 하기엔 사실 살아본 적도 없고 그저 4번 방문했던 것뿐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가장 좋아하는 나라다. 누가 나에게 유럽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면 항상 대답은 똑같다. 음식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친절한 사람들은 포르투갈, 박물관은 이탈리아, 자연은 스위스 하지만 내가 평생 살 수 있다면, 살고 싶은 곳은 네덜란드.


20대 초반까지 나에게 네덜란드는 튤립과 진주 귀고리 소녀를 그린 베르메르의 나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 하나 더. 안네 프랑크가 살았던 나라. 화려한 프랑스나 전통적인 영국, 정열적인 스페인과 이탈리아와는 달리 그다지 존재감 없었던 네덜란드가 내 삶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순간은 스물한 살 쯤이었을 것이다. 다름 아닌 나의 베프인 Jean이 네덜란드의 레이우아르던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된 순간부터였다.


내가 네덜란드에 처음 방문한 것은 2012년 3월 초순이었다. 앞서 말한 Jean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만 21번째 생일이 있던 겨울, 내 생일 겨우 일주일 뒤 아빠를 허망하게 보내드렸다. 혼란스러운 나날의 와중이었으나 아빠의 49재가 끝나자마자, 나는 언제나 나중으로 미루었었던 유럽여행을 떠났다. 도피성이었을지 아님 그때 아님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을 했었던지, 나는 무작정 급하게 준비를 했다. 이 계획을 가장 먼저 말해준 것은 Jean이었는데 그녀는 내게 무조건 자기를 보러 오라고 메일을 썼고, 나는 34일밖에 되지 않는 일정 중에서 남들은 다 패스하는 네덜란드에 할애하여 무려 4일이나 머무르게 되었다.


지금의 배낭여행 트렌드는 그때와는 좀 다르겠지만, 그 당시 내가 찾아본 블로그들에서 본 정보로는 암스테르담은 당일치기로 다녀가거나 아예 패스하는 곳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 모두 내게 왜 스페인을 가지 않고 왜 네덜란드를 가냐고 물어보았는데 이유야 심플했다. Jean을 보기 위해 가는 곳이었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오랜 여행 끝 마지막 목적지가 이곳이었던지라 상당히 피로했었다. 따라서 오래된 도시가 주는 드라마틱한 감흥이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했다. 지금이야 암스테르담의 매력을 2박 3일이라도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때 내겐 그다지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여행책자에서 본 홍등가와 안네 프랑크 뮤지엄 그리고 프리츠라고 불리는 감자튀김이 이 도시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였다. 전날 묵었던 브뤼셀의 이비스호텔에서 출발한 N언니와 나는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갔다. 센트럴에 내리니 한 오후 1시가 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후 1시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3월 초의 암스테르담은 흐릿했다. 암스테르담 당일치기를 계획했던 나는 제일 먼저 기차역에서 레이우아르던으로 가는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난 후, 암스테르담에서 유일하게 가보고 싶었던 안네 프랑크 뮤지엄으로 향했다.

IMG_2697.jpg 혹시 잃어버릴지 몰라 찍어두었던 지도.

생각보다 기차 시간이 촉박했기에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여행책에서 찢어낸 지도에 의지해 안네 프랑크 뮤지엄을 찾아냈다. 요즘이야 손쉽게 심카드를 사서 구글맵이나 시티 맵퍼로 길을 쓱쓱 찾는 것과 달리 그때의 나는 맥도널드나 스타벅스의 와이파이에 의존해서 카카오톡 메시지나 간신히 보내던 때였다. 때문에 주변 경관은 보지 못한 채 길을 찾느라 헤매다 간신히 찾아낸 안네 프랑크 뮤지엄.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입장료가 9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학생 할인을 받지는 못 했다. ISIC 학생증을 이탈리아에서 도난(혹은 분실)당했기 때문이다.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상상했던 곳을 직접 보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박물관은 안네가 진짜 살던 집을 개조해 만들었기 때문에 협소했다. 이 협소한 곳에서 안네의 가족 4명, 안네의 사랑 페터의 가족 3명 그리고 뒤셀 씨 총 8명이 2년가량 생활했다고 하니 얼마나 답답했을지 가늠도 가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일기의 주인공이 처했던 비극적인 상황이 담담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안네의 내밀한 모든 것이 너무 노골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숨김없이 드러내지고 있었다. 그때는 그게 참 낭만적으로 느껴졌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안네의 아버지가 안네에게 한 짓이 너무나도 끔찍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죽은 딸이라고 하지만, 죽은 딸의 일기를 들춰보는 것도 딸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을 텐데 그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번역돼서 읽히다니. 전쟁에 상처 받고 비참하게 죽어간 그녀가 편히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까발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날 이후로 방문하지 않았다.

IMG_2698.jpg 낯선 네덜란드어,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

관람을 마치고 안네 프랑크 박물관을 나와보니 오후 4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유럽의 짧은 겨울 해는 이미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주변을 대충 구경하다가 기차를 타기 위해 센트럴 역으로 향했다. 3일 뒤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후 N언니는 미리 예약해놓은 암스테르담의 한인민박으로, 나는 레이우아르던행 기차를 탔다. 직행이 있었는지 중간에 한 번 갈아탔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기차는 통근자들로 붐볐는데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사람들 사이에서 껴서 가려니 참 힘들었다. 한 시간 가량 서서 가다가 문 옆에 설치된 간이 좌석의 승객이 내리자마자 잽싸게 앉았다. 떠나기 전 카페에서 와이파이를 잡아 카톡으로 Jean에게 몇 시쯤 도착할 거라고 메시지는 보내 놓았지만 그녀가 제대로 마중을 나와있을지 불안해서 살짝 긴장했었던 기억이 난다. 자리에 앉자마자 피곤이 몰려왔지만 고작 1시간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잠을 청하는 도박을 할 수 없어 억지로 참아냈다.


2시간 정도의 여정을 끝내고 레이우아르던에 도착하니 오후 아홉 시가 좀 넘었던 것 같은데 해는 완전히 떨어져서 어두컴컴했다. 작은 플랫폼에 낑낑대고 짐을 내리니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Jean이었다. Jean은 남자 친구 K와 함께 나를 마중 나와있었다. 꽤 오랜만에 만나게 된 우리는 한참을 얼싸안고 있었다. 지금이야 오랜 이별과 재회에 익숙해진 우리지만 그때의 우리는 아니 나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렸으며 무엇보다도, 생애 첫 긴 여행 끝에 타지에서 만난 친구는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녀와 그녀의 남자 친구 K가 빌려온 플랏 메이트 B의 차를 타고 Jean의 집으로 향했다. Jean과 K, K의 고양이 Murphy 그리고 사탕공장에 다니는 B가 구성원인 이 아담한 집은 1층에 리빙룸과 부엌이 있고 1.5층엔 B의 방 그리고 2층엔 Jean이 개인적으로 쓰는 공부방 그리고 커플의 침실이 있었다. 나는 Jean의 개인 공간에 짐을 풀고 가져간 선물들을 꺼내 주었다. Jean에겐 무엇을 사다 주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아마 한국음식이었을 것이다.) K에겐 면세점에서 전통 술을 사다 주었다. 그 무거운 병을 유럽여행 한 달 내내 가지고 다니느라 고생했지만 K가 술을 안 마신다고 해서 뭔가 김이 빠졌던 기억이 난다. Jean의 집엔 내가 영국에서 잔뜩 사서 보낸 쇼핑 짐이 담긴 소포가 도착해있었다. 이제 그것들을 가지고 한국으로 가야 할 것이다. 이것들을 어떻게 이고 지고 가나 생각하다가 오랜 긴장이 풀려버린 나는 스르르 곯아떨어졌다.


Jean이 학교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레이우아르던에서 보냈던 날들 거의 모두 함께 있었다. 첫날은 같이 자전거를 타고 레이우아르던을 돌았다. 작은 소도시라 많은 것을 보았음에도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들은 많지 않지만 기억에 유일하게 남는 것은 섹스숍이다. 지금이야 개방적인 섹스숍이 한국에도 많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이렇게 노골적인 섹스숍은 정말 문화 충격이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만큼 쇼핑하는 재미는 있었다. 어머 어머 하면서도 볼 건 다 보고 Jean과 킥킥댔던 기억이 난다. 섹스숍을 나와 마트로 갔다. 장을 봐서 저녁으로 닭갈비를 만들어 먹었다. Jean의 부엌에 있는 밥솥의 존재에 또 한 번 놀랐지만 반갑기도 했다. Jean이 아껴 쓰던 한국음식재료를 듬뿍 넣어 만든 닭갈비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저녁을 먹고 드라마인가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아마 그레이 아나토미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영화까지 보고 알찬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IMG_2709.jpg 아이폰 4로 찍었던 닭갈비 사진. 배고파서 그랬는지 화질이 매우 엉망.


둘째 날은 Jean, K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레이우아르던의 들판으로 나갔다. Jean이 꺼내 준, 그녀의 엄마에게 받았다는 보라색 파카를 입었다. Jean의 말을 듣기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정말 후회했을, 너무 추운 날씨였다. 들판에 자전거를 타러 간다길래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예상과 달리 그곳은 참 낭만적이었다. 어딜 돌아보나 산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산이 보이지 않고 드넓게 펼쳐진 들판을 본 것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흙길을 달리는 것은 익숙지 않았으나 생전 처음 해보는 경험에 나는 감상적이 되어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름 순탄하게 살아왔다 생각했으나 아버지의 돌연한 사망과 1년의 휴학 끝에 돌아가야 할 학교에 대한 걱정 등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오면서 눈물이 살짝 차올랐지만 Jean과 K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간신히 참았다. 계속해서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다가 멈추니 동화 속에 나올법한 집들이 들판 한가운데 띄엄띄엄 서있었다. 집엔 아무도 없었지만 커튼을 걷어놓은 집안을 들여다보니 소박하면서도 여유로운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오며 끝없는 부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왜 이렇게 살지 못할까, 나도 이렇게 조용히 여유롭게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그곳의 풍경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뭔가 안정적인 것을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되었다. 라이딩을 마친 뒤 나를 데리고 이곳에 와준 Jean과 K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고마움을 표하자 Jean은 마치 내가 만족할 줄 알았다는 듯이 "그렇지? 여기 진짜 좋지? 내 말 듣기 잘했지?" 하면서 찡긋 웃어주었다.

IMG_2723.jpg 라이딩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인지 들판으로 가던 길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보라색 패딩이 정말 강렬하다. 솔직히 따듯하긴 했다.

들판에서의 자전거 드라이브를 끝내고 저녁엔 Jean의 룸메이트 모두와 저녁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들이 좋아한다는 피자 레스토랑에 가게 되었고 아마 나는 매운맛의 피자를 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맙게도 나의 피자는 K가 대접하고 싶다면서 사주었다. K는 정말 착하고 키가 매우 크며 착한 백곰 같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다. 지금은 살이 많이 빠져서 조금 샤프해졌지만 여전히 착해 보이는 사람이다. 그때의 나는 뭔가 외국인을 만나면 수줍음도 많고 영어도 정말 못했어서 K와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아쉬운 기억이다. B와는 딱히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그저 그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건 그가 내가 좋아하는 빌헬미나 민트 사탕을 만드는 공장에 다니고 있다는 것뿐.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K는 나에게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졸업전시회를 준비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근데 K가 계속 내 발음을 못 알아듣는 거다. 알고 보니 전시회를 뜻하는 "Exhibition"의 발음은 "익스비션"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익스하이비션"이라고 발음을 하니 당연히 못 알아들을 수밖에. 보다 못한 Jean이 조심스럽게 발음을 고쳐주었다. 그때는 부끄러운 기억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상황 자체가 정말 귀엽게 느껴진다. 틀린 발음을 계속하는 나와, 예의 있게 계속 다시 물어보던 K 그리고 조심스레 발음을 고쳐주던 Jean. 이 모두 정말 사랑스러운 기억들이다.

IMG_2725.jpg 왼쪽부터 K, B, Jean. 프라이버시상 사진은 블러 처리.
IMG_2726.jpg 피자 맛은 기억나지 않음.


다음날 새벽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B의 차로 K와 Jean이 나를 기차역에 바래다주었다. 스키폴 공항으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기 전, Jean은 물론 K와도 얼싸안고 작별의 인사를 했다. 고작 3일을 함께했고, 또 언제 다시 만날지 아님 못 만날지 모르는 친구의 남자 친구이었지만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기회가 있다면 꼭 만나고 싶었다.

스키폴행 기차가 출발하자 나는 뭔가 모를 섭섭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가 이 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어떤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돌아가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불안감이 물밀듯이 밀려와 공항에 가지 않고 싶었지만 나는 티 내지 않고 스키폴에서 N언니와 만나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에 씩씩하게 올라탔다. 하지만 인생이란 정말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땐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이 나라에 무려 3번이나 더 오게 되리라고는.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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