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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콩 May 30. 2019

뉴욕에서 1층에 산다는 것 -4-

시끌벅적한 대도시의 아파트 1층에서 살아남기

2. 행인


도로 소음만큼이나 1층 집은 행인 소음에도 당연히 취약하다. 우리 아파트는 다행히도 거리보다 살짝 위에 있어 행인들이 정면으로 집 안을 들여다볼 일은 없지만 그래도 종종 창 밖을 보고 있자면 위를 보는 행인과 눈이 마주쳐 서로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한 번은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 집 거실 창문 밖에서 집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잠깐 동안 저 사람 뭐지, 경찰을 불러야 하나 싶어서 조용히 지켜보다가 금세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분은 건물 안 다른 집을 보러 온 것이었고, 중개인을 기다리던 중 호기심에 집들이 어떻게 생겼나 밖에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가정집을 그렇게 들여다보는 건 좀...)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하지만 소음문제는 1층 아파트가 지닌 고질적인 문제다. 게다가 우리 집은 안방이 아파트 건물 출입구 바로 옆이다. 출입구에서 차를 기다리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 전화통화를 하러 잠깐(?) 밖에 나온 사람들, 건물 앞 보도에서 노는 아이들 등 더운 여름밤 우리 집 안방 창문 앞에서 소음을 유발하는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에게도 아파트 현관에서, 또는 건물 앞 보도에서 그럴 자유가 있으니 조용히 하라고 우리가 윽박지를 순 없지 않은가.


작년 여름 한 번은 건물 출입구 앞 계단에서 10대 소녀 넷이서 밤늦도록 수다를 떠는 일이 있었다.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깔깔깔깔 웃으며 밤 열한 시가 넘도록 신나게 떠드는 것이었다. 소녀들의 즐거운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저러다 가겠지~란 마음으로 인내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잠들 시간까지도 멈추질 않는 것이다.


참을 만큼 참은 남편이 나가서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저기요, 우리 침실 창문이 바로 이 옆으로 나 있어서 소리가 다 들리는데,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 주실 순 없을까요?”


“그래요? 저희 곧 갈 거예요.”


미안하단 말은 안 한다. 그렇지, 자기들이 못 떠들 곳에서 떠든 것도 아니고 당당히 아파트 현관에서 놀았을 뿐이니까.


그리고 그 “곧” 갈 거란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우리는 여학생들의 수다 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지 않는 잠을 청해야 했다.


어디 소음뿐이랴...


행인들이 걸어가면서 흡연이라도 할라 치면 그 연기는 고스란히 집으로 들어온다. 꼭 우리 창밖에 와서 대마초를 피우던 사람이 있어 몇 번 다소 강하게 요청(?)을 하고 금연 싸인을 창 곳곳에 붙여놓기도 했다. 옆 건물 공사장 인부들도 휴식시간에 이 옆으로 와서 줄담배를 핀다. 그렇지만 뉴욕에는 일반 보도나 가정집 앞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법도 없고, 그들도 양심은 있어서 우리 창문 바로 밑 또는 앞이 아니고 한 5미터는 떨어져서 피운다. 그러나 연기는 막을 수가 없으니 아기가 있는 우리는 여전히 담배연기와의 전쟁 중이다.


한 번은 한밤중에 번쩍번쩍하는 불빛 때문에 잠에서 깼다. 날씨가 좋아 번개 일리는 없는데 이건 뭐지 하고 내다보니, 웬걸... 두 시가 넘은 야밤에 우리 집 창문 바로 밖에서 창문 아래 벽돌벽을 배경으로 사진작가와 모델이 전문 촬영을 하고 있다. 헐... 전문 플래시를 써서 잠에서 깰 정도로 밝았던 것이다. 제가 창문을 두드리면서 손으로 깜박깜박하는 제스처를 하자 (플래시 때문에 불편하다는 의미였다) 그제야 미안하다며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행인들로 인한 소음, 담배연기, 기타 다른 불편함은 날씨가 좋은 봄부터 가을까지 특히 심하다. 날이 따뜻해서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더 많거니와, 우리도 아침저녁으론 에어컨 대신 창문을 열어놓는 일이 많아서이다. 겨우내 창문을 거의 닫고 지내는 동안 잊고 있다가 최근 5월 들어 날이 좋아지면서 부쩍 행인들이 늘자 다시 작년 여름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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