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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Oct 23. 2020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경력보다는 '경험'을 스펙보다는 '스토리'를 원하는 언론 지망생들에게

취재현장을 가기 전에는 항상 긴장했다.


오디오맨 일을 시작한 지 수개월이 지나도 속이 울렁거리는 건 변함없었다. 특히 타 방송사 취재진들이 북적거리는 일정이면 긴장감 배가 됐다. 나는 현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 그가며 긴장을 풀었다. 


오디오맨의 주 업무는 영상기자의 취재를 원활하게 도울 수 있게 준비해놓는 것이다. 영상이란 게 화면과 소리의 결합체이기 때문에 이를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위치 선정이 중요했다.


현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영상기자의 지시하에 트라이포드로 자리를 잡다.


간혹 늦게 도착했을 때 빼곡히 밀집된 트라이포드와 게다스(취재용 사다리)를 보면 숨이 턱 막혔다. 그래도 어떻게든 비집어 들어다. 트라이포드만 제대로 둬도 긴장의 반은 해소됐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땅콩회항 사건. 한 겨울에 덜덜 떨면서 뻗치기 했다.

트라이포드를 세운 뒤에는 와이어리스(무선마이크)를 둘  위치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이 단계에서 느끼는 부담감이 다. 취재원의 말 한마디가 뉴스가 되는 시대에서 소리 없는 화면은 가치 없는 정보 뿐이다. 어떻게든 현장의 소리를 담아야 했다.


일 무난한 곳은 '단상 위' 다. 하지만 규모가 큰 브리핑이나 기자회견의 경우 단상 위에는 수많은 언론사들의 와이어리스가 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단상 위에 놓으려고 애를 썼다. 만약 이 또한 불가능할 때는 외부 스피커를 찾아 그 위에 올려놨다. 트라이포드 세우기 못지않게 오디오맨들의 와이어리스 자리싸움은 치열했다.

특히 자리싸움에 동참하기 전 와이어리스 배터리  체크는 중요다.

브리핑 단상 위 와이어리스. 사건이 클수록 수많은 매체 마이크가 놓여있게 된다. 출처: (좌) 뉴시스, (우) 머니투데이

배터리 체크를 대충  시 취재 도중 전원이 꺼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이때는 수습할 방법이 없다. 브리퍼가 한창 브리핑인 상황에 단상 위에 놓인 무선마이크를 꺼내올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피의자 소환 현장에서는 각 방송사의 와이어리스를 모아 전기테이프로 꽁꽁 감아버린다. 사전에 확인 못하고 뒷북쳤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뿐이다.


"항상 카메라에 P2카드가 있는지 확인해줘"


Y선배는 메모리 카드 중요하게 생각했다.

과거 급하게 브리핑 현장에 갔을 때 오디오맨이 P2카드를 깜빡하는 바람에 곤혹을 치를뻔했다는 경험을 전하면서 카드 장착 유무 꼭 체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메모리카드를 다루는 빈도 영상기자 보다 오디오맨이 높다.


회사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보관함에서 카드를 찾고 포맷하는 일이었. 현장에서는 영상기자가 취재를 하는 동안 앞서 촬영한 영상이 담긴 P2카드를 받고 중계차 또는 MNG를 통해 송출하는 일도 빈번했다. 회사에 돌아오면 취재 내용이 기록된 인덱스 용지를 P2카드 케이스에 붙여 인제스트실로 전달했다. 오디오맨의 손에는 ENG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가 들려있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항상 출발 전에 P2카드가 꽂혀 있는지 확인했다. 취재를 이어가면서도 틈나는 대로 가방 안에 카드 여분이 잘 있는지 살폈다. 특히 풀단에 들어가서 타 방송사 중계차량을 통해 영상을 송출할 때는 타사의 메모리카드와 섞이거나 분실되지 않게 유심히 지켜봤다.


이 작은 직사각형 물체에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점 또한 카드 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하는 이유로 작용했다.


"파견직 경력이 인정될까요?"

"계약직으로 일하면 도움될까요?"


언론인을 준비하는 카페에서 보이는 질문이다. 최근 공채를 실시하는 언론사가 감소하면서 이 같은 질문을 자주 접한다. 댓글은 "경력 인정 안 돼요" "하지 마세요" "잡일만 합니다"가 주를 이룬다.


맞는 말이다. 

경력으로 인정받기에는 업무의 전문성이 없고, 스펙이라고 자신하기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토익이나 한국어 점수를 올리는 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나는 정량화된 스펙을 얻지는 못했지만 업무를 처리하는 '일 머리'는 이때 향상됐다. 트라이포드와 와이어리스 자리 확보를 위한 눈치싸움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을 키웠다. 매번 메모리 카드가 장착됐는지 확인하던 습관은 '꼼꼼함'을 만들었다. 또한 취재 현장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언론계가 어떤 곳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오디오맨 경험으로 자기소개서에 녹일 스토리가 다양해졌고, 현직자들에게 언론사 공채에 대한 조언을 구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낮은 스펙에도 불구하고 서류 통과율은 높았다. 한 지역 방송사 공채에는 최종 합격해 잠깐 다녔던 적도 있다.


경력이 아닌 경험을 쌓기 위한 일이라면 용형태가 어떻든 시작하는 걸 추천한다. 

언론사의 규모는 클수록 좋다. 다양한 이슈 현장 갈 수 있다는 점과 업계 흐름을 파악하기 용이하다.

게다가 언론고시라는 공채를 경험한 사람들들과 일을 할 수 있기에 많은 조언을 구할 수 있다. 주말 수당과 출장비도 제대로 챙겨준다.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이 경험을 통해 어떤 성과를 얻고 싶다면 그만큼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열정을 강요하며 '노오력 하라' 고 말하는 부류는 질색이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서 '가치'를 찾으려면 자기가 발 벗고 뛰어다녀야 한다. 고스펙이 난무하는 시대에 차별화된 스토리를 원한다면 한 번쯤은 시작해도 괜찮은 경험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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