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 사람사이
비혼 출산은 출산율 반등을 위한 파격일까, 아니면 새로운 사회 선언일까?
한국 사회가 비혼 출산을 제도화하겠다고 말한 것은 단순히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숫자 맞추기 정책일까? 아니면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꺼낸 것일까?
정부는 말했다.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
이 글은 그 파격의 뒷면에 놓인 사회적 전환의 의미, 현실적 과제, 그리고 한국이 어떤 길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비교적 시선을 함께 짚어보려 한다.
결혼은 원하지 않지만 아이는 갖고 싶은 사람들.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동안 제도 밖에 놓여 있던 이들의 삶을 이제야 정책이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번 제도화 시도는 단순히 아이를 낳는 방식의 다양화가 아니라, 삶의 선택지를 되돌려주는 선언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 안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 변화는 사회가 개인에게 묻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비혼 출산은 단일한 여성 집단의 이야기가 아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말 뒤에는 수많은 삶의 층위가 있다.
예를 들어,
출산은 원하지만 결혼은 선택하고 싶지 않은 여성
동성 커플이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성
경제적으로 자립한 1인가구 여성
이혼이나 이별 후 독립적으로 아이를 낳고 싶은 여성
미래 출산을 대비해 생식세포 보관을 원하는 20~30대 여성
이처럼 각기 다른 동기와 조건, 제도적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한 줄짜리 ‘비혼 여성’이 아니라, 복수의 존재 방식으로 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
이 관점 없이는 제도는 공허하고, 보호는 닿지 못한다.
법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비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OECD 평균 비혼 출산율이 40%를 넘는 데 비해, 한국은 불과 4.7%에 머물고 있다.
이 제도가 효과를 가지려면, 가장 먼저 아이의 행복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다.
비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낙인 없이, 차별 없이 자랄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양육비, 주거, 보육, 법적 보호 등 실질적인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모든 아이는 환영받을 권리가 있다. 누구의 아이든, 어떤 형태의 가정이든.
우리는 이제 물어야 한다.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든다는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그 질문에 선명하게 답을 보여주는 나라들이 있다.
먼저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혼외 출생 자녀에 대한 법적 차별을 없앤 나라 중 하나다.
2002년 이후, 부모가 결혼했든 하지 않았든 아이에 대한 권리와 양육 책임은 동일하게 부과되며,
출생 신고, 성씨, 상속,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녀가 법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그 결과 프랑스는 전체 출생아 중 약 65%가 비혼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사회가 되었고, 출산율은 1.79로 유럽 내에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민법 (Code civil)
Article 310
"Tous les enfants dont la filiation est légalement établie ont les mêmes droits et les mêmes devoirs dans leurs rapports avec leur père et mère. Cette égalité s'étend à leurs rapports avec les familles respectives de ceux-ci."
→ “법적으로 인지된 모든 자녀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이 평등은 양쪽 가족과의 관계까지 확장된다.”
Article 334
"L’enfant naturel a, de plein droit, les mêmes droits et les mêmes devoirs que l’enfant légitime dans ses rapports avec ses père et mère."
→ “혼외 자녀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혼인 중 자녀와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스웨덴 역시 대표적인 ‘다양한 가족 인정 국가’다.
이곳에서는 동거하거나 사실혼 관계인 비혼 부모도 지방자치단체의 절차를 통해 공동 양육권을 공식 인정받을 수 있다. 스웨덴의 법은 가족의 형태보다 아이의 권리를 우선시하며, 총 480일의 육아휴직과 유연한 부모 보호 시스템을 통해 누가 부모이든, 어떻게 태어났든 아이가 평등하게 보호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스웨덴의 비혼 출산율은 약 57%에 달한다.
스웨덴 부모법 (Föräldrabalken)
Kapitel 6, §3 (Föräldrabalken)
"Om föräldrarna inte är gifta med varandra vid barnets födelse har modern ensam vårdnad om barnet. Föräldrarna kan dock anmäla gemensam vårdnad till Skatteverket."
→ “아이의 출생 시 부모가 혼인 관계가 아니라면 어머니가 단독으로 양육권을 갖는다. 그러나 부모는 스웨덴 세무청(Skatteverket)에 공동 양육권을 신고할 수 있다.”
Kapitel 6, §5 (Gemensam vårdnad)
"Gemensam vårdnad kan också beslutas av socialnämnden om föräldrarna är överens."
→ “부모가 합의하는 경우 사회복지위원회(Socialnämnden)가 공동 양육권을 결정할 수 있다.”
노르웨이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이 나라는 2020년부터 비혼 부모에게도 공동 양육권을 자동 인정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어머니에게만 양육권이 주어졌지만, 지금은 부부가 아니더라도 함께 자녀를 돌보는 법적 책임과 권리를 공유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꿨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혼, 동거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도 아이가 사회의 보호 대상임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작용했고, 노르웨이 역시 출산율은 1.48, 비혼 출산율은 56%에 이른다.
노르웨이 아동법 (Barnelova – Lov om barn og foreldre)
§35 (Foreldreansvar når foreldra ikkje er gifte)
"Foreldra har foreldreansvaret saman når dei bur saman når barnet vert fødd."
→ “아이의 출생 시 부모가 동거 중이라면, 두 사람은 공동으로 양육권을 갖는다.”
Endring fra 1. januar 2020:
"Frå 1. januar 2020 fekk ugifte foreldre automatisk delt foreldreansvar, dersom dei budde saman ved fødselen."
→ “2020년 1월 1일부터는, 출생 시 동거 중인 비혼 부모는 자동으로 공동 양육권을 갖는다.”
이들 국가는 단지 법만 바꾼 것이 아니다.
제도, 문화, 인식이 동시에 움직였기 때문에, 비혼 출산도, 다양한 가족도 사회 안에서 평범한 일이 될 수 있었다.
비혼 출산 제도가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되어도, 그 제도가 보호하려는 ‘아이와 부모’를 낙인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인식이 없다면 법은 종이 위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정상가족’이라는 틀 안에 있었다. ‘아빠-엄마-아이’의 3단 구도가 깨지면, 그 가족은 ‘결핍되었거나 불완전한 구조’로 여겨지곤 했다.
부모의 혼인 여부가 아이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가?
교실에서, 놀이터에서, 병원에서… 그 아이가 평등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제도만으로 되지 않는다. 그건 교육이고, 언어이고, 무엇보다 우리 안의 상식을 다시 쓰는 과정이다.
법은 빠르게 바뀔 수 있지만, 인식은 사회가 천천히 바꿔야 할 몫이다.
비혼 출산 제도는 단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정상가족 신화를 내려놓고, 삶의 다양성과 아이의 권리를 함께 고민하는 새로운 출발선이다.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만큼 사회가 용기를 내야 한다. 정책보다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인식이다.
법은 선언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평등하게 자라려면, 사회가 그 선언을 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