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원으로 생명을 지킨다고요?

정책과 사람사이사이

by Lilla


실소가 터진 나라, 죽음을 다루는 국가의 자세


정부는 자살 시도 청년에게 연 100만 원의 치료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정책은 죽음을 다루는 철학이 빠진, 안일한 면피성 응답일 뿐이다. 생명을 위한 정책이라면 숫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시작해야 한다.



화면 캡처 2025-05-19 080715.jpg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자살 시도 청년에게 치료비 100만 원을 지원한다는 기사를 보고 난 후 내 반응이었다.
그것이 마치 생명의 값처럼 제시되는 순간,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곧 씁쓸한 분노로 바뀌었다.


자살률 1위 국가의 가벼운 대답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그 중에서도 청년 자살률은 가장 극단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 위기 앞에서 정부는 “청년 자살 시도자에게 연 100만 원의 치료비를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정신과 치료, 상담, 약물비 등에 사용하라는 취지라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따뜻한 정책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다.

100만 원이면, 정말 충분한가?
그 액수는 진료 몇 번, 약값 며칠이면 사라지는 금액이다. 게다가 지원을 받기 위한 행정 절차와 서류 벽도 결코 낮지 않다.


100만 원이 아니라, 100번 물어야 할 질문


이 정책은 본질적인 질문을 생략한다.
"왜 그 청년은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 선택 뒤에는 무엇이 있었고, 되돌아온 이후 그를 지탱해줄 구조는 있는가. 정부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 대신 “치료비가 부담될 테니, 우리가 조금 내줄게”라고 한다. 정작 죽음의 원인은 묻지도, 돌보지도 않는다. 결국 이 100만 원은 ‘복지’가 아니라, 정책적 면피에 가깝다. 제도의 손길을 받기 위해선, 먼저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 한다는 것.

이건 구조가 아니라 조건이다.


보여주기 정책의 전형


이런 정책은 늘 그렇다.
숫자만으로 따뜻해 보이는 언어를 만들고, 성과지표로 포장된다. 그러나 사람의 죽음을 막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치료비 지원’은 해결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자살 시도 이후의 회복, 재도전, 그리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의 정책은 단지 “우리도 뭔가 했다”는 선언일 뿐이다. 실질적인 ‘살릴 권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죽음을 다루는 철학이 없는 사회


이 정책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자살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죽음을 어떻게 해석하고 사회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철학 부재다. 정신질환은 여전히 낙인이고, 상담은 숨겨야 할 일이고, 자살은 개인의 감정적 선택으로 치부된다.

그 결과, 죽음을 부르는 구조는 계속되고, 그 구조를 방치한 채, 국가는 100만 원을 내밀고 돌아선다.


마포대교에 서 있는 손


서울 마포대교에는 ‘자살 예방 동상’이 있다.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 내민 손의 형상이다. 그러나 그 손은 구조물이었고, 그 손을 붙잡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구조도 연결되지 않았다. 진짜 필요한 건 손 모양의 동상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제도와 연결망이다. 100만 원으로는 그 손 하나조차 만들 수 없다.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야 한다


정책은 숫자로 출발해도,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에 도달해야 한다.

지금 이 정책은 사람의 삶을 설득하지 못한다. 죽음을 ‘문제’로 보되, ‘책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국가는 정말,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그 존엄은, 과연 100만 원짜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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