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돼지가 승리하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셋째돼지에게 바치는 응원

by Jay
세 마리 돼지의 집 풍경(Gemini, 2026, prompted by Jay)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일은

우선순위가 꽤 높은 일이다.

대개 놀부처럼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흥부처럼 착한 사람은 상을 받는다고 알려줘야 한다.


원래는 그렇다.

세상이 동화 같다면 말이다.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마녀, 놀부, 마귀대왕 같은

빌런을 좋아한다.

채 네 돌도 안된 아이 눈에도

제멋대로 살아대는 빌런들의 모습이

매력적인가 보다 싶었다.


때로 어떤 동화의 빌런은

빌런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어른이 되고 나니,

갑자기 나타나 온갖 집안살림을 다 부수는 둘리를

인내하며 키워주고 참아낸 고길동 아저씨가

성인군자처럼 느껴지는 맥락과 같으리라.


요즘의 고민은

세상의 모습이 이 동화 속과 같으니

너도 성실하고 착하게 살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가르쳐야 하는지이다.


제법 진지한 고민이다.

아이들이 푹 빠진 아기돼지 삼 형제 책에서는

순식간에 짚으로 집을 짓고 둥가둥가 놀던 첫째 돼지,

대강 그와 비슷한 둘째 돼지,

벽돌로 차곡차곡 땀 흘려 집을 지은 셋째 돼지가 나온다.

엄마 돼지는 셋에게 똑같이

늑대를 대비해 튼튼한 집을 지으라고 했거늘,

첫째 돼지는 짚으로 졸속 건축(?)을 하고

첫째와 둘째의 집에 찾아온 늑대가

후후 불고, 발로 뻥! 차버려서 집을 날려버리면

첫째와 둘째는 열심히 일해서 일궈낸

셋째의 집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달라 청한다.

셋째는 둘을 흔쾌히 숨겨주고,

늑대를 퇴치한 뒤 함께 행복하게 산다.




함께 행복하게 산다...


함께?

행복하게? 뭐야, 누가 행복한 거야?


책을 읽어주다 문득 첫째 돼지 이 놈 봐라?

하는 생각이 든다.

불퉁 심술이 솟아오른다.

회사에서 마주친 무책임한

프리라이더의 얼굴이 스쳐간다.

셋째 돼지가 열심히 만든 집에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는 무슨 자격으로

빈둥대며 눌러앉아 안온한 보호처를 누리는 걸까?

동화가 진정한 정의가 되려면

첫째 돼지 정도는 잡아먹히는 게 순리 아닌가

못된 생각에 혼자 부들부들 떨다가

"셋이 사이좋게 살았대,

그러니 집은 튼튼하게 지어야 해"라는

부질없는 교훈으로 독서를 마무리한다.


아이는 빌런인 늑대에게 꽂혀

후후 불어 모두 날려버리겠다는

멋진 의지를 다니며 집안을 활보한다.


그래, 혼자 땀 흘린 동생의 수고를

날름 삼키기만 한 첫째 둘째 돼지보다는,

힘으로 모조리 날려서 밥(돼지)을

구해먹으려 했을 뿐인 늑대가 멋지고 착한 것 같아...

늑대가 되리라는 아이의 꿈에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한다.


사실 동화 밖의 첫째, 둘째 돼지는

이보다 더 약삭빠르다.

나도 첫째 둘째처럼 살겠다 다짐하지만,

일하다 고개를 들어보면 셋째 돼지가 되어있다.


셋째 돼지에게도 복이 오나?


- 서른다섯, 남매의 엄마, 그리고 직장인.

가끔 느끼는 동화 밖의 위험성을

글로 담아보려 한다.-


첫째 돼지에게 집을

빼앗기고 있는 모든 셋째 돼지들이 힘을 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