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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Sep 10. 2024

당신은 지금 소맥이 당긴다

소맥 마스터가 타 드립니다



술을 좋아하시나요?


전 좋아해요.


술을 잘 마시냐고요?


그건… 노코멘트하겠습니다. (남편은 어디 가서 술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해요. 술 좋아한다고 해놓고 그렇게 마시면 욕먹는다고.  - ㅁ - ;;)





그런데, 꼭 술을 잘 마셔야지 좋아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림을 좋아하지만 잘 못 그리는 사람도 있고(네, 접니다) 오페라와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 누가 그래요? 노래 듣는 걸 좋아하지만 음치일 수도 있고(저는 아닙니다) 음악이 나오면 도저히 가만있지 못하고 몸이 들썩여지지만 내 것이 분명한 팔과 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이건 정말 저 아닙니다. 바이킹은 잘 못 타도 리듬은 좀 타거든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항상 등호가 성립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어떤 술을 좋아하세요?

삼겹살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아주 그만인 소주,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치킨과 함께 맥주, 왠지 좀 멋져 보이는 위스키, 분위기 내고 싶은 날엔 와인, 축하할 일이 있을 때엔 샴페인, 비 오는 날 전과 함께 막걸리, 이름마저 섹시한 여러 종류의 칵테일





많은 술들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건 맥주예요. 치맥(치킨과 맥주), 피맥(피자와 맥주), 수맥(수육과 맥주), 족맥(족발과 맥주), 파맥(파전과 맥주), 소맥(소고기와 맥주), 막맥(막창과 맥주)… 안 어울리는 안주가 없습니다. 어떤 음식과 함께여도 안주의 맛을 해치지 않고 주인공을 빛내주며 적당히 기분이 좋아지고 배도 부르거든요. 가끔 와인이나 샴페인도 좋고요, 아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막걸리입니다.


남편은 소주를 좋아합니다.

가끔 시원한 맥주를 찾기도 하지만 조금 마시고 나면 결국 소주를 데려오지요.


“소주 한 번 마셔봐. 이 안주는 소주랑 먹어야지. 맥주랑은 아니야. "

“맥주랑도 잘 어울리는데?"

"소주랑 먹어야 더 맛있다니까~ 따악 한 모금만 마셔봐.”

"싫은데?"

"따악 한 모금만."

"알았어 알았어, 딱 한 모금만 마셔볼게. 윽… 너무 써.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게 달지 어떻게 써? 내가 너무 곱게 키웠어. 인생의 쓴맛을 아는 사람만이 소주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가 있는 건데.”

"치… 그래 그래, 곱게 키워줘서 고마워~~."





저녁이 다가오면 안주인지 반찬인지 헷갈리는 그날의 메뉴를 준비합니다. 날씨나 기분에 따라 음식을 고르고 그에 어울리는 술을 준비하지요.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거의 소주, 맥주, 막걸리가 돌아가면서 식탁을 빛내지만 저녁 메뉴를 고르는 일은 언제나 설레고 특별한 일인걸요. 수육처럼 시간이 걸리고 소주도 막걸리도 모두 잘 어울리는 메뉴일 경우에는 강수량에 따라 주종이 정해집니다. 온종일 직장에서 힘들었을 남편은 집에 돌아와 술 한 잔을 기울이며 또 다른 아침에 일어날 힘을 내겠지요.


퇴근하는 길에 걸려오는 남편의 전화 속 목소리는 어떤 날엔 힘이 가득 차있고 또 어떤 날엔 기운이 없습니다. 유독 기운이 없어 보이는 날엔 전화를 끊고 아들에게 말해요.


“이든아, 오늘 아빠가 회사에서 많이 속상한 일이 있었나 봐. 우리 아빠 들어올 때 아빠 좀 힘나게 해 줄까?”

“그래? 아빠 목소리에 힘이 없어? 좋아!”

삐삐삐삐삐삐, 철컥, 출입문이 열렸습니다!





“아빠, 다녀오셨습니까!! 아빠 오늘 힘들었지~“(현관으로 달려 나가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자기, 왔어? 오늘도 고생했쪄~”(문 앞으로 가서 안아주며)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남편을 맞이하고 엉덩이를 두드려줍니다. 물론 항상 이렇게 맞아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버린 것 같은 날, 기운이 하나도 없는 날에는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꼬옥 안아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잖아요. 함께 저녁을 먹으며 넘기는 소주 한 모금에 남편의 속상한 마음도 모두 넘어가버리면 좋겠다 싶은 그런 날이요.


“첫 잔은 소맥?”

“좋지!”


황금비율로 소맥을 타고(소맥은 탄다고 해야 느낌이 사는 거 아시지요?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는 “만다”가 있지만 아직 그 경지까지 다다르지는 못했으니 탄다고 하겠습니다.) 잔을 부딪힙니다. 남편은 손목 스냅으로도 잘 섞던데 전 쇠젓가락 하나를 잔 깊숙이 넣고 나머지 젓가락으로 탁 쳐서 거품이 나는 게 좋아요. 뭔가 퍼포먼스도 있고 전문가같이 멋지잖아요. 그렇게 한두 잔 소맥을 마시고는 남편은 소주를 저는 맥주를 조금 더 마십니다. 아들은 물이나 주스로 함께 건배를 하지요. 그날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고 재미있는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먹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흐르고 아들의 숙제를 봐주고 거실로 돌아오면 남편은 어떤 날엔 소파에서 또 어떤 날엔 안방 침대에 누워 잠이 들어있어요. 씻고 자라고 깨울 때가 대부분이지만 어느 날엔 그 모습이 짠하고 애처로워 보일 때도 있더라고요.





몇 년 전 사진을 봤습니다. 아들의 귀여운 모습에 감탄을 하다 보면 젊고 풋풋했던 남편과 나의 모습이 보여요.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통통 튀던 피부도 머리카락의 윤기도 사라지고 주름 생긴 내 얼굴에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남편이 보이더라고요.


남편의 모습에 살이 너무 많이 쪘다고 놀리기만 했던 내 입을 때리고 싶었어요. 미안했어요. 남편의 젊음도 이리 반짝이고 멋졌는데 왜 내 모습에만 안타까워했을까. 부인과 아들을 먹여 살리느라 자기도 정말 고생했구나.





살이 찐 게 아니라 힘들어서 부은 거구나…


여보, 놀려서 미안해.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까 살이 찐 게 맞는 거 같아. 내일은 운동하러 가자!



나의 운동 메이트 씨, 소주가 쓴 거 자기 덕분이야.


사…

사…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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