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인들

에밀리 디킨슨의 이렇게 아름다운 우표가 있었다니

1971년, Emily Dickinson의 미국 우표를 바라보면서

by 라일러플


이렇게 아름다운 우표가 있었다니

- 1971년 에밀리 디킨스 우표를 바라보면서





페소아에 이어 디킨슨의 시를 읽었다. 짧고 힘있는 문체에 독특한 기법 '―'를 사용했다. 일백 년 전 훨씬 이전, 이렇게 개성 넘치고 고집 쎈 여성 시인이 있었다니― 놀랍다― 아, 이 가로 획(Dash), 이거 중독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시를 발표하지 않고 두문불출하며 평생 시만 지으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가 죽고 난 후, 그것도 반세기가 지난 후,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신들은― 에밀리 디킨슨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셨다. 위대한 여성 시인으로―


이런 면에선 방금 전 집으로 돌아간 페소아와는 사뭇 다르다. 정반대다 ― 페소아는 이명까지 쓰면서 세상에서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 하지만 디킨슨은 여성이다. 그리고 페소아보다 반세기 선배 시인이다. 두 시인 모두 격동기의 세상을 살았다. 페소아는 밖에서 적극적으로 시를 썼다. 반면 디킨슨은 안에서 숨어서 시를 썼고 발표하지 않았다. 그냥 꼭꼭 숨겨두었다. 아마도 페소아가 늘 하던 말과 철학,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이미 선배 시인이 몸소 실천한 것이었다. 페소아와 디킨슨, 두 명 중 시인됨으로서는 당연 디킨슨이 으뜸이리라. 모든 시인의 모범이리라. 그리고 디킨스의 작품의 경우는 매우 짧고 힘차다. 번역자가 꽤 힘들었을 듯 싶다. 또한, 번역에 다소 의문이 드는 문구들도 있었고, 기독교적인 성향이 약간 나타났지만, 죽음, 영혼과 자연 등이 바로 그녀의 시다. 죽음과 허무도 그녀에게는 힘이다. 그녀는 타자들에게는 소극적이고 비관적으로 보일진 몰라도 그녀 자신은 매우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의 Dash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던가!


에밀리 디킨슨의 몇 편의 시를 아래 적어 본다.





소박하게 더듬거리는 말로


소박하게 더듬거리는 말로

인간의 가슴은 듣고 있지

허무에 대해 ――

세계를 새롭게 하는

힘인 '허무' ――





내 죽음 때문에 멈출 수 없기에


내 죽음 때문에 멈출 수 없기에 ――

친절하게도 죽음이 날 위해 멈추었네 ――

수레는 실었네, 우리 자신은 물론 ――

또 영원을.


우린 천천히 나아갔네 ―― 죽음은 서두름을 모르지.

하여 난 죽음을 향한 예의로

내 고통과 안일도 함께

실어 버렸네 ――


거기 ―― 휴식시간에 ―― 둘들게 앉아

아이들이 싸우고 있는 학교를 지나 ――

낟알 가득 바라보는 들을 지나 ――

석양을 지나 ――


아니 그보다 ―― 죽음이 우릴 지나갔지 ――

이슬은 차디차게 떨며 잡아당겼네 ――

이 하찮은 것들, 내 가운 ――

내 목도리 ―― 얇은 망사 베일을 ――


우린 머뭇거렸네 ――

다만 땅이 좀 솟은 듯한 집 앞에서 ――

지붕도 처마 장식도 거의

보이지 않았네 ―― 땅 속에서 ――


그때부터 ―― 수세기는 ―― 시작되었네.

하루보다 짧게 느껴지며

난 첨엔 생각했었지, 말(馬)머리는

영원을 향하고 있다고 ――





그 늙은 산들은 얼마나 황혼으로 쓰러지는가


그 늙은 산들은 얼마나 황혼으로 쓰러지는가

헴록은 얼마나 불타오르며 ――

어두운 풀숲은 얼마나 재에 덮이는가

마법의 태양으로


그 낡은 첨탑들은 얼마나 진홍의 빛을 붙안는가.

지구가 가득 찰 때까지 ――

내 플라밍고의 부리라도 가졌다면

감히 말해 볼까?


또 불꽃은 얼마나 파도처럼 밀려 나가는지 ――

마치 공작부인이 지나가기라도 하듯

모든 풀들을 쓰다듬으며

떠나가는 ―― 청옥(靑玉)의 ―― 모습 ――


자그마한 땅거미는 얼마나 살금살금 마을 위로 기어가는가

집들이 어둠에 잠길 때까지

그리곤 이상한 촛불, 하지만 아무도

거리까지 비출 수는 없는 것을 ――


둥우리와 굴 속 ―― 얼마나 깊은 밤인가 ――

숲은 과연 어디 있었던가 ――

다만 혼돈의 지붕만이 홀로

흔들리고 있을 뿐 ――


이들은 귀도를 스친 환상들 ――

티치아노는 아무 말도 못했네 ――

도메니치노는 연필을 떨어뜨리고 말았지 ――

황금빛에, 마비되어 ――





난 결코 황야를 본 적이 없어요


난 결코 황야를 본 적이 없어요.

바다도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알고 있는 걸. 히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파도란 어떤 건지도.


난 결코 하느님과도 얘기해 본 적이 없어요.

하늘나라에 가 본 일도 없어요.

하지만 그 위치는 확신하고 있는 걸.

이미 그려져 있는 도표처럼.





가슴은 우선 즐겁기를


가슴은 우선 즐겁기를 바라지 ――

그리곤 ―― 고통의 회피를 ――

그리곤 기껏 ―― 아픔을 마비시키는

몇 알 진통제들을 ――


그리곤 ―― 잠드는 것을 ――

그리곤 ―― 심판관의 뜻이라면

죽을 자유를 ――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

그 크기는

그 파멸의 무덤에 들어가서 재는 대로

추측할 뿐 ――


고독의 가장 무서운 경종은

스스로 보고는 ――

스스로 앞에서 멸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 ――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는 동안 ――


공포는 결코 보이지 않은 채 ――

어둠에 쌓여 있다 ――

끊어진 의식으로 ――

하여 굳게 잠가진 존재 ――


이야말로 내가 두려워하는 ―― 고독 ――

영혼의 창조자

고독의 동굴, 고독의 회랑은

밝고도 ―― 캄캄하다 ――





저 하찮은 돌메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행복할까 저 하찮은 돌멩이들은

길 위에 홀로 뒹구는,

성공을 걱정하지도 않으며

위기를 결코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

그의 코트는 자연의 갈색,

우주가 지나가며 걸쳐 준 것

태양처럼 자유로이

결합하고 또는 홀로 빛나며,

절대적인 신의 섭리를 지키며

덧없이 꾸밈없이 ――









-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에밀리 디킨슨, 강은교 옮김, 세계시인선11, 민음사










*










죽어서 빛나는

여기 새하얀 처녀와 시인


살아서

시 한 편도 몸 하나도 하루 한 시간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자신도 아닌

오로지 시 하나를 위해

결혼도 않고 친구도 없이 완전한 혼자가 되어

집 안에서 자연 속에서

영혼과 데이트하면서 평생 시를 쓰다가


죽어서도 반세기가 지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었다네


페소아와 정반대인

그녀,

페소아 보다 더 진짜 시인을 만나서 밤을 지샌다네


선배 시인의 양 발에 키스를 하고

페소아는 빗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네


――

고요히 속삭였네 ――

난 그냥 ―― 신나게 살거야 ――


그녀가 나를 ―― 바라보았네 ―― 손끝으로 허공을 휙 그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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