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작가다. 시인, 소설가, 극작가, 비평가, 철학가 등등 모든 장르에서 활동하고 어려서부터 이명만 수십 개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당대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심각했던 듯 싶기도 하고, 개인이 혹은 한 무리가 무언가를 위해 애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지혜롭고 용기있고 대단하다고 일단 말하고 싶다. 이명마다 성격, 외모, 프로필, 문체, 심지어 필체(서명)까지 다 달랐다고 한다. ― 당연하리라 ― 난 오늘 페소아를 만났다. 좀 더 오래 만나봐야 어느 정도 잘 알 수 있으리라. 하지만, 오늘 만난 이 기분을 두서없이 메모하고자 한다. 왜 이렇게 나를 흥분시키는가? 물론 김한민, 이라는 훌륭한 젊은 번역가의 번역본이다.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한다. 번역가의 의역이 다소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도 50%만이라도 믿고 페소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면 충분하리라.
난,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민음사, 세계시인선24, 페르난도 페소아 저, 김한민 역의 시집을, 알베르투 카에이루와 리카르두 레이스, 그리고 페르난도 페소아 3명의 이명으로 쓴 시를 빠르게 읽었다. 시는 매우 쉽다. 번역본이라서 정확한 시적 운율이나 기법, 표현을 모르겠지만, 번역된 한글 기준으로만 판단할 때, 시는 매우 산문적이다. 그리고 '체스를 두면서' 등 몇 편을 제외하곤 직설적이고 서술적이어서 매우 쉽게 읽힌다.
아, 더 많은 시편들이고 있고 그의 많은 다른 장르의 작품들이 있다고 하지만, 다수의 이명으로 쓴 여기 시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우선, 아주 오래 전 100여 년 전 시인이다. 모든 위대한 시들이 그러하듯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특히, 시는 더욱 그러하고 옛날이 더 좋다. ― 거짓으로 넘쳐나고 영혼이 메말라 가는 작금보다야 그때가 당연 좋으리라. 작금의 시(문학)을 시(문학)이라고 해야 할까? 요즘 진짜 시인들은 몇 명이나 될까? 뭐, 이런 생각들까지 하게 하니까 ―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에는 진짜 시인들이 많았던 것은 분명하다. 이 한 권의 시집으로 페소아,를 판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좋은 시집이란 의미다. 물론, 다른 시집들도 읽을 것이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사람', '엿장수 - 엿장수 맘대로니까 -', '그때 그때 달라요',라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그리고 무소유, 무(無), 카르페디엠 등이 매우 강하다. 그러면서도 영원은 무한은 없다고 한다. ― 무한이 없다니! 수학 공부 안했나? ― 불교적이면서도 철학적(유물론)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이고, 약간 비상식적이면서 매우 이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읽으면서 아, 맞아, 박수를 치게 하는 시가 다수다. 틀린 것 같지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여 현혹되기 까지 한다. 결국, 다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겠다. 이 시집의 서너 편은 내 경험상 많은 오류가 있다고 판단되는 시 편이 있다. 그것들은 완전 오류다. 읽으면서 왜 이렇게 억지를 부릴까, 그러한 생각을 했다. 혹 번역이 잘못된 걸까? 그래서 '그때 그때 달라요'라고 별명을 붙여 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 본명 페소아의 의미라고 한다. 자식의 이름을 지은 부모의 영향력이 컸을 듯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 좁다란 우주에서 이름 값 제대로 한 시인임엔 틀림없다. 몇 편의 시를 아래 소개한다.
내 인생은 어떤 가치가
내 인생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최후에 (어떤 최후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말한다, 300콘투를 벌었다고,
다른 이는 말한다, 3000일의 영광을 누렸다고,
다른 이는 말한다, 양심적으로 잘 살았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리고 나, 만일 나에게로 와서 뭘 했느냐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나는 사물을 바라보았고 그게 다라고.
그래서 여기 호주머니 속에 우주를 가지고 왔다고.
그리고 만약 신이 내게, 사물 속에서는 뭘 봤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지, 그저 사물들을요...... 당신은 거기에 뭔가 더 넣지 않았잖아요.
그러면, 어쨌든 현명한 신은, 나를 가지고 새로운 종류의 성인을 만들어 내겠지.
(1914년 9월 17일)
봄이 다시 오면
봄이 다시 오면
어쩌면 난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
이 순간 난 봄을 사람으로 여기고 싶어,
그녀가 자기의 유일한 친구를 잃은 걸 보고
우는 모습을 상상하려고.
하지만 봄은 심지어 어떤 것조차 아니지,
그것은 말을 하는 방식일 뿐.
꽃들도, 초록색 잎사귀들도 돌아오지 않아.
새로운 꽃 새로운 초록색 잎사귀들이 있는 거지.
또 다른 포근한 날들이 오는 거지.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고, 아무것도 반복되지 않아, 모든 것이 진짜니까.
(1915년 11월 7일)
나는 하늘이 좋다
나는 하늘이 좋다 그것이 무한하진 않을테니가.
시작도 끝도 없는 거라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 수 있겠나?
나는 무한을 믿지 않고, 영원도 믿지 않는다.
공간이 어디선가 시작해 어디선가 끝난다고 생각하고
그 아래와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도 어떤 원칙이 있고 끝이 있을 거라고,
그전과 후에는 시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어째서 거짓이겠는가? 거짓은 오히려 무한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그게 뭔지 아는 양, 혹은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아니다. 모든 것은 사물들의 양이다.
모든 것은 유한하고, 모든 것은 한계가 있고, 모든 것은 사물들이다.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 시인이 죽은 날 남긴 말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오른손을 들어, 태양에게 인사한다,
하지만 잘 가라고 말하려고 인사한 건 아니었다.
아직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손짓했고, 그게 다였다.
체스를 두는 사람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옛날에, 페르시아가
이름 모를 어느 전쟁을 치를 적에,
도시 안이 외적의 침입으로 들끓고,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두 명의 기사들이 체스를 두고 있었고
그들의 경기는 계속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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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
.
영광은 풍성한 짐짝처럼 무게가 나가며,
명예는 열별 같고,
사랑은 지치고 진지하게 찾아다니기에
과학은 영영 발견할 수 없고,
삶은 그걸 알기에 지나가고 고통스럽다......
체스 놀이도
온 영혼을 붙들어 둔다, 단, 져도, 무겁지는
않다, 결국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 원치도 않는데 우리를 사랑하는 그림자 아래,
와인이 담긴 잔을 옆에 두고서
이 부질없는 노고
체스 경기에 여념이 없네,
이 경기가 그저 꿈일 뿐이라도
그리고 상대방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 이 이야기 속 페르시아인들을 따라 하자,
그리고, 저 밖에서
혹은 가깝든 멀든 간에, 전쟁과 조국과 삶이
우리를 부를 때, 그들이
우리를 부르는 데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자, 우리 각자
정겨운 그림자 아래 꿈을 꾸면서,
서로 상대방을, 체스는
그 무심함을.
(1916년 6월 1일)
위대해지려면, 전부가 되어라
위대해지려면, 전부가 되어라, 너의 어떤 것도
과장하거나 제외하지 말고.
매사에 모든 것이 되어라. 네 최소한의
행동에도 네 전부를 담아라.
그렇게 모든 호수마다 보름달은
반짝이지, 저 높은 곳에 살아 있으니.
(1933년 2월 14일)
신들에게 유일하게 바라는 건
신들에게 유일하게 바라는 건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나는 자유로울 거야 ―― 행운도 불행도 없이,
삶이라는 바람처럼
아무것도 아닌 공기 중에.
증오와 사랑은 똑같이 우리를 찾지, 양쪽 다,
각자 자기 식으로, 우리를 억누르지.
신이 아무것도 베풀지 않는 자
바로 그에게 자유가 있지.
셀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
셀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 산다,
내가 생각하거나 느낄 때면, 나는 모른다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이 누군지.
나는 그저 느끼거나 생각하는
하나의 장소.
나에게는 하나 이상의 영혼이 있다.
나 자신보다 많은 나들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존재한다
모든 것에 무심한 채.
그들이 입 다물게 해 놓고, 말은 내가 한다.
내가 느끼거나 느끼지 않는
엇갈리는 충동들이
나라는 사람 안에서 다툰다.
나는 그들을 무시한다. 내가 아는 나에게 그들은
아무것도 불러 주지 않지만, 나는 쓴다.
(1935년 11월 13일)
*
혼자서 혹은 일부 소수의 무리와 함께 단체를 만들고 문예지를 발간한다. 그러니까 이명이 더욱 더 수월하고 가능했으리라. 혼자서 다수의 이명으로 시 코너를, 이명으로 수필 코너를, 이명으로 소설 코너를, 이명으로 비평 코너를, 이명으로 어떤 자유 코너를, 이명으로, ... 그리고 이명으로 이명에게 답시를, 이명으로 이명에게 편지를, 이명과 이명끼리 토론을, 이명과 이명끼리 치고 박고 싸우기를, ... 아, 이것은 다중인격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이명을 써야 했던 까닭이고 이명을 활용하여 무언가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이명이 안식처이고 무기였을까? 물론, 스스로 그 많은 이명을 사용하면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리라. 그로인한 스트레스를 받을 순 있겠지만, 그의 카르페디엠과 천재적인 두뇌라면 쉽게 즐겁게 극복해 나갔으리라. 아마도 신나게 살았으리라.신나게 살기위해 일부러 이명을 사용하였던 것은 아닐까? ― 읽진 않았지만, 불안의 서,란 책도 작가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또 하나의 창구이었을 듯 싶다 ― 아무튼, 페소아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대로 신나게 살았던 인물일 듯 싶다. 혼자서 혹은 일부 소수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한 나라와 한 시대의 문학을 주물렀을 듯 싶다. 결코 올바르지만은 않을 듯 싶지만, 이 방법이 과히 나쁘지만은 않은 듯 싶기도 하다. 이명과 유사한 것은 오히려 동양에서 더 많이 사용했다. 그 중 '호'라는 것이 있는데 김정희는 '추사' 외에도 '호'가 500여 개나 있다고 전한다. 그 만큼 작품이 많고 다양하고 작품 활동이 많고 여러 곳을 두루 다녔을 것이 분명하다. '이명'이나 '호'는 옛날에 많이 사용한 듯 싶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에는 사람을 부를 때, 그 이름을 하나로만 딱 정하지는 않은 듯 싶다. 그만큼 언어에 대해서 보다 자유분방했음이 분명하다. ― 문자가 생긴 이래로 옛날이 훨씬 많은 단어들이 있다. 오늘날 단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을 뿐이다. 옛날에는 모든 분야마다 구체적인 언어들이 다 구사되어 있었다. 심마니나 보부상 조직의 언어만 해도 몇 만 단어가 될 거라 한다. 세부적인 케이스별로 모든 언어(명사 뿐만 아니라 술어까지)를 만들어 사용했다. 선조들은 정말 지혜로왔다. 언어의 존재 이유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신 듯 하다. 요즘 언어가 점점 줄고 있는 단어마저 약식화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정신 수준이 점점 퇴보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이름도 하나에 국한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으리라.
당연, 이명(혹은 필명)이 많을수록 창작은 더욱 활성화되리라. 이명(혹은 필명)을 많이 사용할 수록 훨씬 더 자유로우리라. 오늘날, 아무도 모르게 다수의 필명으로 창작 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을 듯 하다. 우선 폰이 많아야 한다. 여기엔 돈이 많이 필요하다. 필명마다 다른 폰들을 가방에 넣고 들고 다녀야 할 테니까
또한,
시라는 것은 노래처럼 배우기 쉽고 누구나 쓸 수 있다. 단지 그 완성된 작품이 사람마다 차원이 다를 뿐 아니겠는가?
*
한편,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동서양 100여 년 전 시와 시인들과 작금의 시와 시인들 차이가 없는 듯 싶다. 그러니까 초등학생이 글자를 익히는데 1년 안팎이니까 시의 형식이나 기법을 익히는데 불과 몇 일이면 될 듯 하고 ㅡ노래를 가르칠 필요가 있나 그냥 다 아는 것 아닌가ㅡ 그러니까 그런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
오히려 옛날이 더 좋았다는 것 ㅡ그땐 영혼이 훨씬 강하고 순수했으니까ㅡ
페소아 등 필명을 많이 쓴 것도 동서양 비슷하고 오늘날과 좀 다르다. 필명이 많다는 건 그만큼 작품을 많이 썼다는 것이고 ㅡ전업 작가가 많았던 시절ㅡ 여러가지 이유로 자신을 감춰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 게다. ㅡ그만큼 소신 발언이나 기고, 비판적 주장을 많이 했으리라ㅡ 오늘 날은 먹고살기 바빠서 전업 작가는 드물고 다작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 예나 지금이나 다작은 전업작가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처음엔 설마 했는데, 내 경험 상 따져봐도 한 시인이 평생 삼천 편을 능히 쓸 수 있겠더라. 시가 안 써질 땐 한 편도 짓지 못하다가 잘 써질 땐 하루 서너 편도 지을 수 있더라. ㅡ시만 짓겠는가,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여행도 하고 사랑도 하고 술도 마시고... 이 밖에도 산문도 소설도 동시도 동화도 희곡도 시나리오도 더불어 누구나 쓸 수 있단다ㅡ 전업 시인이라면 평생 시 만 편은 써야 하리!! 그만큼 문학에 시에 미쳐야만 시인이겠다. 쓰고 싶은 말들이 무궁무진하지 않던가, 줄을 서서 시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던가, 일기장, 메모한 수첩들, 넷북과 노트북들, PC, 블로그와 SNS의 글들, 메일 등등 쌓여 있지 않던가, 그분은 늘 곁에 있지 않던가, 소실적에야 곁에 있어도 몰랐지만 이젠 늘 곁에 있음을 잘 알지 않던가, 일기를 써도 절로 내 님은 오시지 않던가, 고요해지기만해도 그녀는 나를 어루만지지 않던가, 언제 어디서나 늘 곁에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많이 지으려 욕심 부리지도 말자. 그냥 그대로 내 님과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그녀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아름답고 고요하고 충분하지 않던가 ㅡ고요, 이것만으로 시요 해탈이니까ㅡ
시인들마다 개성이 넘친다. 옛 시인들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유명했던 시인들이 주로 후세에 전해진다. 고로 자본과 권력, 인맥, 인기 등이 있었으리라. 물론 고흐처럼 정반대의 시인도 분명 후세에 알려줬으리라. ㅡ늦게라도 알려진 시인과 작가와 예술가에게는 신들의 축복이 함께 했던 것이다ㅡ 예나 지금이나 작품의 내용이나 표현이나 차이가 없다. ㅡ옛 한시를 제외하곤 동서양 근대 이후 모두가 자유시다. 시적 표현과 기법은 누구라도 금방 흉내낼 수 있고 새로운 기법은 서체처럼 금방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시적 내용은 시인에게 달렸다. 좋은 시인은 좋은 시를 낳는다. 좋은 시는 시대를 초월하여 읽힌다. 시적 내용, 작품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과거가 훨 낫다. 현실보다는 영적 차원이 높았으니까 사색 보다는 상상을 많이 했으니까
사람이 한 생애를 살면 모든 걸 ㅡ태초와 끝ㅡ 다 살고 다 아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의 목숨이 물리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하루살이에게는 하루를 인간에게는 백년 안팎을 말이다. 그리고 단 하루를 살아도 우주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이미 다 알고 있으며 모두가 연결되어 있으니까 ㅡ모두가 하나다,라는 인식은 일단 오류다. 사용하지 말자ㅡ 고로 예나 지금이나 시인이나 시가 다를 것이란 선입견은 오류다. 그러한 사고는 가장 한심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오히려 과거가 현재 이 세계보다는 훨씬 살기좋고 휠씬 문학하고 창작하기 좋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루만에 이 우주를 깨우치고 떠나는 하루살이야말로 우주에서 가장 천재일 것이다. 하루나 백년이나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시 삼천 편이나 시 열 편이나 시 일만 편이나 시 일백 편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단지 지금 이순간 시를 짓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시를 짓는 것이 중요하다. 사색이 아닌 상상을 지어야 한다.
내 머리로 부터 생겨나는 것은 시가 아니다. 좋은 시로 만들어 지지 않는다. 재창조, 이런 거 하지 말자! 시는 시다워야 한다. 좋은 시는 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내 안에서 내 밖에서 와야 한다. 깊을수록 고요할수록 높을수록 낮을수록 넓을수록 클수록 작을수록 멀수록 기까울수록 더 좋다. 내 마음과 영혼, 온몸과 내 밖의 타자들과 내 밖의 에너지들로부터 와야 시다. 그래야 시로 지을 수 있고 좋은 시가 창작될 수 있다. 그럴 때 시를 짓기 시작하라. 그냥 있는 그대로 늘 창조하라!
"내가 시에게 가려하지 말고 시가 내게로 올 때가 바로 시가 된다. 내가 시에게 가려 하는 것이 바로 머리다."
늘 경계하고 경계하도록!!
"그렇다고 기다리지는 말라! 시는 늘 곁에 와 있으니까"
그분, 내님, 그녀는 늘 곁에 있음을 잊지마라. 이미 와 있다. 이미 와 있는 것을 만나면 된다. 얼른 인사라도 건네라!!!
*
좋은 시는 차원에서 차원으로 나아간다. 한마디로 무한 차원을 넘나들어야 한다. ㅡ여기서 '차원'이란 과학적 차원이 아니라 창작의 차원이다. 한단계씩 한단계씩 더욱 더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들은 이미 차원을 다 알고 있다.ㅡ 그것이 바로 상상이고 창작이니까
그리고 늘 신나게 살아야 한다. 물론, 힘들고 고독하고 가난하다. 시인이라고 해서 힘들고 고독해야만 할 이유도 없다. 좋은 시를 짓는다는 것은 시인에게 분명 신나는 일이다. 고로, 늘 신나게 살자. 늘 신나게 살아야 한다고 상상하자. 늘 시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