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일러플 Sep 06. 2016

원룸

하루한편의 쉬운 시쓰기 #53


원룸

황현민




   불을 끄고 조용히 잠이 들면 늘상 비가 내렸다 밖은 화창하고 근처 계곡이 없으니 물 흐르는 소리가 아닐 터이다 어쩔 땐 물장구치는 소리 같은 것이 웅얼웅얼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다가 천정이 갈라지고 한겨울 폭설에 소나무 부러지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기도 한다 이것은 뭐 이따위의 냉장고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냉장고에 부착된 스티커가 더 가관이다


   냉장고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

   "웅, 드르륵, 덜컹"은 냉장고가 운전할 때 압축기나 팬이 작동할 때 발생하는 소리고요 "꾸르르륵"은 냉매가 흐르는 소리예요, "뚝뚝, 딱딱"은 온도 변화에 의해 부품들이 수축하고 팽창할 때 나는 소리랍니다 안심하고 사용하세요


   도둑놈 들어왔다가 깨금 깨무는 소리에 달아나는 듯 하겠군, 잠들만하면 깨우는 낮도깨비 같은 날벼락이 갑자기 멈춰 버리면 나의 잠은 확 깨어 버리고 만다 윗 층 아가씨 한숨 소리까지 들릴 테니까 아무런 잔소리도 없이 냉장고가 사라질 때 나는 멍해지는데

   그제서야 내 방은 스르르 눈을 감곤 했다


   이제 곧 추워지면 냉장고는 한동안 말을 못 할 테지만

   베란다 두 대의 보일러가 내내 돌아가면서 나에게 수다를 마구 건넬 것이 분명하다


   내가 미쳤니?

   나 이사할거야 멀리 갈거야 바다 건너 아주 멀리 갈거야 그리고 그리고말야


   너희들이 많이 그리울 거야








2016. 9. 5


   어제 하루한편의 시를 놓쳐버렸다 오늘 두 편을 올린다

   분당에 작년 12월 초에 원룸에 들어왔는데... 베란다에 보일러가 옆방 거까지 두 대나 있었다 미리 발견했더라면 계약을 하지 않았을 터인데... 아무튼 내 방이 돌다 멈추면 옆 방이 돌아가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귓구멍이 커서 소리에 민감한 나는 참으로 어이없어 했었다 어차피 잠이 안 오면 일어나서 시집을 읽던지 시를 쓰던지 하면 되니까 상관치 않았다 피곤하면 골아떨어지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보일러가 점점 조용해지고 여름이 왔다 이번에는 냉장고가 온갖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처음엔 천정이 금이 가는 줄 알았다 벽이 갈라지는 줄 알았다 이 집 무너지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멀쩡한 원룸에 보일러와 냉장고가 두 친구가 유난히 그랬다 그리고는 여름 다 갈 무렵에 나는 한 친구의 온도를 약간 낮추어 보았다 그랬더니 시냇물이 예전보다 잔잔하게 흘렀고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웅웅웅 말은 더 빨라졌다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그 친구 몸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발견했다 정말 있는 그대로 솔직한 친구였다. 브랜드 있는 친구였는데 아무튼 그랬다 너무나 재밌어서 나도 이렇게 있는 그대로 시라고 적어서 올려 본다


   참고로 월세가 48만원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린 몽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