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하루한편의 쉬운 시쓰기 #53

by 라일러플


원룸

황현민




불을 끄고 조용히 잠이 들면 늘상 비가 내렸다 밖은 화창하고 근처 계곡이 없으니 물 흐르는 소리가 아닐 터이다 어쩔 땐 물장구치는 소리 같은 것이 웅얼웅얼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다가 천정이 갈라지고 한겨울 폭설에 소나무 부러지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기도 한다 이것은 뭐 이따위의 냉장고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냉장고에 부착된 스티커가 더 가관이다


냉장고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

"웅, 드르륵, 덜컹"은 냉장고가 운전할 때 압축기나 팬이 작동할 때 발생하는 소리고요 "꾸르르륵"은 냉매가 흐르는 소리예요, "뚝뚝, 딱딱"은 온도 변화에 의해 부품들이 수축하고 팽창할 때 나는 소리랍니다 안심하고 사용하세요


도둑놈 들어왔다가 깨금 깨무는 소리에 달아나는 듯 하겠군, 잠들만하면 깨우는 낮도깨비 같은 날벼락이 갑자기 멈춰 버리면 나의 잠은 확 깨어 버리고 만다 윗 층 아가씨 한숨 소리까지 들릴 테니까 아무런 잔소리도 없이 냉장고가 사라질 때 나는 멍해지는데

그제서야 내 방은 스르르 눈을 감곤 했다


이제 곧 추워지면 냉장고는 한동안 말을 못 할 테지만

베란다 두 대의 보일러가 내내 돌아가면서 나에게 수다를 마구 건넬 것이 분명하다


내가 미쳤니?

나 이사할거야 멀리 갈거야 바다 건너 아주 멀리 갈거야 그리고 그리고말야


너희들이 많이 그리울 거야








2016. 9. 5


어제 하루한편의 시를 놓쳐버렸다 오늘 두 편을 올린다

분당에 작년 12월 초에 원룸에 들어왔는데... 베란다에 보일러가 옆방 거까지 두 대나 있었다 미리 발견했더라면 계약을 하지 않았을 터인데... 아무튼 내 방이 돌다 멈추면 옆 방이 돌아가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귓구멍이 커서 소리에 민감한 나는 참으로 어이없어 했었다 어차피 잠이 안 오면 일어나서 시집을 읽던지 시를 쓰던지 하면 되니까 상관치 않았다 피곤하면 골아떨어지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보일러가 점점 조용해지고 여름이 왔다 이번에는 냉장고가 온갖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처음엔 천정이 금이 가는 줄 알았다 벽이 갈라지는 줄 알았다 이 집 무너지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멀쩡한 원룸에 보일러와 냉장고가 두 친구가 유난히 그랬다 그리고는 여름 다 갈 무렵에 나는 한 친구의 온도를 약간 낮추어 보았다 그랬더니 시냇물이 예전보다 잔잔하게 흘렀고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웅웅웅 말은 더 빨라졌다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그 친구 몸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발견했다 정말 있는 그대로 솔직한 친구였다. 브랜드 있는 친구였는데 아무튼 그랬다 너무나 재밌어서 나도 이렇게 있는 그대로 시라고 적어서 올려 본다


참고로 월세가 48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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