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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야매 Feb 02. 2019

그대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이유

이 날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사람을 바라보며

출처: pixabay

한국인은 커피를 참 좋아한다. 사시사철 커피를 들고 다니는 길거리의 사람들로부터 그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 받는 커피는 단연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아메리카노에 또 다시 얼음을 탄 바로 그 커피를 한국인은 가장 좋아한다. 차가운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는다. 1년 내내 얼음들은 플라스틱 컵 속안에서 달그락댄다. 


커피 문화가 발달해 있는 유럽에서는 정작 아이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 향을 온전히 즐기는 것을 얼음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커피를 마시는 목적은 휴식에 있다.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고 홀짝이며 향을 즐긴다. 커피잔이 비워질 때까지 마음을 정비하고 책장을 넘기며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커피가 차(茶)로서 본연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다.


반면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커피를 마시는 주 목적은 피로 회복에 있다. 한국인에게 커피는 차의 일종이라기 보다는 카페인을 잔뜩 함유한 에너지 드링크로써 존재한다. 그런 이유로 한국인들은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고 홀짝일 시간이 없다. 향을 즐기는 것 보다는 잽싸게 커피를 삼키고 카페인을 체내 곳곳으로 침투시키는 것이 최고 목표다. 그 과정을 돕기 위해 얼음이 투입된다. 차가워진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동력을 얻어내야 한다. 그래서 한강이 어는 차디찬 한 겨울 속에서도 사람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수 밖에 없다. 이제 플라스틱 컵 속에서 달그락거리던 얼음 소리가 어지러운 말발굽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컵 속 얼음의 각이 녹아 미처 뭉그러지기도 전에 커피를 모조리 다 빨아내고, 원형 그대로의 얼음 마저 씹어 먹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볼 때 잃어버린 여유에 대해 생각한다. 커피 한잔의 향을 온전히 즐길 여유도 갖지 못하는 그들이 안타깝다가도, 뜨거운 커피가 식는 그 잠깐을 못 기다리고 혓바닥을 온통 데이고 마는 나 역시 한국인이었음을 깨닫는다. 한국인들에게는 소위 ‘빨리빨리 정신’이 내재되어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컵라면이 익는 3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뚜껑을 열고, 삼겹살이 구워지는 잠깐을 견디지 못해 핏기만 가시면 입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기에 ‘빨리빨리 정신’은, 기형적으로 뜨겁고 쉼 없는 한국 사회를 너무나도 잘 담아내는 단어다. 때때로 혹자는 이런 신속성이 한국인의 강점이자 기적적인 경제 발전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한국인의 성격이 경제발전에 도움에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사도 아니기에 논외로 하고자 한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빨리빨리 정신’은 여전히 한국인의 뇌리 깊숙이 자리하며,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끝없는 경쟁과 치열하게 바쁜 일상 속에서 어느새 우리는 남들보다 더 먼저, 더 빨리라는 가치를 내재화 해왔다. 그래서 나는 너보다 더 빨리 가기 위해 커피에 얼음을 타고 단숨에 들이켰다. 네가 쉬지 않는 데 나만 쉬어갈 수는 없다. 뒤쳐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계속 되는 경쟁에서 우리 모두는 쉼표를 찍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쉼표 없는 글은, 아무리 좋은 글일지라도 읽기 버겁다. 삶이라는 긴 책을 써내려 가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쉼표를 적재적소에 찍어야만 한다. ‘너’ 와의 비교는 잠시 잊고 쉬어가는 여유가 필요하다. 누구인지 명확하지도 않은 ‘너’라는 상대에 집중하기 보다는, 나에게 누구보다 중요한 존재인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플라스틱 컵 속에서 다그닥대는 얼음 말을 잠깐 멈춰 세우고 나를 돌아보자.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심 성의껏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다. 커피 향을 맘껏 즐겨보는 것인지, 침대에서 늘어지게 늦잠을 자보는 것인지, 그 소리의 내용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오래된 광고 카피처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당신에게는 열심히 일한 만큼 열심히 쉬어갈 권리가 있다. 


쉼 없이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 사회는, 한겨울 영하의 칼 바람으로도 식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과열되었다. 이에 나는 우리의 커피에서 얼음을 빼고 주문해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한다. 그 빼낸 얼음을 모아 경쟁으로 뜨거워진 한국을 식혀보는 것이다. 그리고 대신, 그것을 지켜보며, 얼음 없는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며 홀짝이자. 이제는 커피 향을 온전히 즐기며 부담 없는 한 잔의 여유를 가져볼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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