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좋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살아가면서 가장 사랑하는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글쓰기와 외국어다.
처음으로 글을 꾸준히 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였다. 꼬박꼬박 일기를 써보자며 친구와 함께 커플 다이어리를 샀었다. 그렇다고 그 시절 내내 책을 내고 싶다거나, 글을 취미로라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마음은 곧 서른을 앞둔 마지막 20대를 보내기 직전에서야 비로소 생겨났다. 그러고 보니 나의 글쓰기는 늘 인생의 큰 변화를 앞둔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그때의 나는 지나온 삶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고 믿었다. 무엇보다 내가 창작한 물성의 무언가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선물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독립 출판물을 만들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내 삶을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립 출판물이란 고로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책의 기획부터 디자인, 유통과 판매까지 모두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이다. 그 한 바퀴의 여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겪고 나니, 평생 혼자서도 책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던 나만의 결과물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경험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마치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과 닮아 있었다. 팔 둘 다리 둘, 입 하나 코 하나씩을 만들어 붙이며 숨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나는 그런 일을 정말로 사랑한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동경하고 존경한다. 뜯고, 오리고, 붙여서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말이다. 요리사는 요리를, 음악가는 음악을 창조한다. 화가는 그림을, 작가는 글을, 감독은 영화를 창조해 낸다. 실을 이어 만든 뜨개질 목도리조차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예술의 목표는 ‘표현’이다. 창작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란 숨통이 트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사처럼 생명을 살리거나, 바삐 돌아가는 공장에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은 아니지만, 예술은 누군가의 내일을 견딜 만한 하루로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나를 표현하는 수많은 도구 중에 ‘외국어’ 역시 예술의 영역에 속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토록 사랑할 리가 없다. 외국어는 분명 예술이다. 발음이다. 음악이다. 리듬이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표현의 기술이다. 외국어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언어는 영어와 중국어다. 특히 중국어는 한 글자에도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어 특유의 시적인 느낌을 준다. 그래서 중국어는 각자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가끔은 슬픔을 슬픔이라 말하지 않고, 빙빙 돌려 비밀스럽게 말하고 싶은 나의 성격과 닮았달까. 슬픔을 그대로 슬프다고 표현하는 것이 때로는 가장 안 슬픈 표현법이라 느껴질 때가 있다. 한편으로 영어는 문장 자체에 박자감이 있어 내게는 음악과도 같다. 한참 음악하던 시절에 내가 따르던 선생님은 ‘영어만 잘해도 노래를 잘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어를 입 밖으로 낼 때 소리의 길이, 입 모양, 호흡, 침묵까지 모두 예술의 영역에 있다. (윗입술이 남들보다 짧아서 유독 앞니가 잘 보이는 사람일수록 영어를 잘한다는 나만의 이론도 있다) 음악과 마찬가지로 외국어 분야에서도 완성이란 없다. 끝없이 몸의 감각을 단련해야 하는 지난하고 지루한 반복의 연속이다. 외국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내가 20대 초반 내내 음악에 푹 빠져 살았던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예술의 가장 큰 매력은 정답이 없다는 점이다. 예술 안에서야말로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로 알려진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일화 중에 특히 기억에 남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녀가 아직 20대 초반이었을 때, <Elk Talk>라는 단편 소설을 써서 유명 소설 잡지사인 Story에 투고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집장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간단히 말해 이야기 자체는 좋았지만,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잡지에 실을 수 없다는 거절의 답장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길버트는 다른 소설을 다른 잡지사에 실으며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았고, 운 좋게 에이전트까지 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녀의 회사에서 <Elk Talk> 원고를 다시 한번 Story에 보내게 되는데, 놀랍게도 똑같은 편집장에게서 이번에는 투고를 받아주겠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소설의 이야기가 완벽했으며 얼른 잡지에 실리기를 바란다고 칭찬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편집장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완벽하게 잊고 있었다. 길버트는 과거에 자신이 투고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소설의 결말까지도 마음에 들었는지 물었고, 편집장은 정말 좋았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결말은 단 한 줄도 바뀌지 않았는데 말이다. 때론 작가가 주는 것과 독자가 받는 것은 다르다. 어쩌면 그것은 취향의 문제이고, 또한 타이밍이다. 결국 각자가 가진 이야기가 가장 큰 무기가 된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사실 한동안 내 안의 예술을 향한 열정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본업으로 모든 진을 빼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뉴욕에 오게 되면서 시간이 여유로워졌고, 예전에 쓰다 멈춘 글을 다시금 시작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큰 변화를 앞두고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여기서 앞으로 어떤 예술을 접하게 될지, 또 어떤 것을 시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타지에서의 생활에 불안과 외로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글쓰기’와 ‘외국어’가 있다. 뉴욕에서의 시간을 집필 기간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혹은 한국에서 한계에 부딪친 외국어를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고 싶기도 하다. 그래, 무엇이든 좋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무엇보다 오늘은 그런 마음이 드는 날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2026년 1월 1일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도 좋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한 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