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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Feb 26. 2024

겉바속촉 와플 먹으러 갈래?

엄마는 덕수궁 돌담길 걸으러 갈게.

 아이들은 걷는 게 싫어서, 갔던 곳을 또 가기 싫어서, 날이 추워서, 날이 더워서 끝도 없는 이유들을 들먹이며 오늘도 서울 나들이를 마다 한다. 그러지 말고 맛집 탐방도 가고, 교보문고 가서 읽고 싶은 책도 한 권씩 골라보고, 이순신 장군님께 인사도 하자며 설득해 봐도 마음을 쉽게 돌릴 거 같지는 않다.

그럴 때 꺼내는 비장의 무기는 바로.


덕수궁 매표소 옆, 돌담길이 시작되는 곳 바로 맞은편의 길게 늘어선 줄이 한눈에 보이는 "리에제 와플"

우리 가족의 최애 와플 맛집이라고 하겠다. 이곳에서 와플을 먹은 이후로는 다른 데서 와플을 사달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 아이들. 어릴 때부터 아빠 회사 근처에 이러저러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맛집 탐방을 다녔던 아이들은 맛집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곳의 와플을 먹기 위해 서울나들이를 나올 정도로, 최고의 와플이라고 칭한다.

이곳은 먼저 주문할 때부터 줄을 서고, 와플을 받을 때까지도 기다렸다 받아야 하는 곳이다 보니 길가에 줄을 서서 번호가 불릴 때까지 기다릴 각오를 하고 가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사람의 많고 적음의 차이만 있을 뿐 웨이팅이 없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내가 간 날들은 그러했다.


첫째 아이 킥보드 탈 때부터 다녔던 맛집. 와플모양 간판이 참 특이하고 귀여웠다.


아무리 맛 좋은 음식들로 배를 채웠어도 간식배, 특히 와플배는 남겨놓는 아이들 덕분에 여러 종류의 와플들을 맛보았다. 플레인와플, 메이플 시럽 와플들을 시작으로 아이스크림 와플, 초콜릿 와플, 블루베리 치즈 와플.

"리에제 와플 더뷰"에서는 무조건 일인 일음료. 커피 안 마시는 남자 셋은 음료수를 세 개나 사야했다.

겉은 살짝 바삭하며 속은 따뜻하고 쫀득쫀득, 촉촉한 갓 구워져 나온 와플은 기다릴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밀가루로 만들어진 빵은 속이 부담스러워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지만, 여기 와플은 따뜻한 커피와 먹어도, 달콤 새콤한 레몬에이드와 먹어도 맛이 있다. 아이들도 자신의 취향껏, 그날의 기분대로 와플을 골라본다. 와플을 두세 개 사 와서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아 쪼롬히 앉아 와플을 먹는다. 아니 흡입한다는 말이 맞겠다. 그러면 아기 참새들이 부스러기가 떨어질까 모이기도 한다. 아이스크림 와플을 먹을 때는 아이들 앞섶이 다 젖는 걸 각오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다닐 때는 보따리상 같은 가방 안에 물티슈와 티슈는 항상 넉넉히 넣어 다니니, 걱정은 없다. 다만 와플을 손에서 놓쳐서 흘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하지만 종종 있다는게 문제!


와플집의 장사가 잘 되면서, 바로 옆으로 돌아가면 "리에제 와플 더뷰"라는 카페형의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가게도 생겨났지만, 개인적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먹었던 와플이 훨씬 더 맛있었다. 눈으로 정경을 담고 입으로는 맛을 담는 그 시간이, 카페에 앉아서 편히 먹는 와플보다 훨씬 더 인상에 남는다고 아이들도 이야기하더라...


그리고 내가 여길 가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시사철 바뀌는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을 걷고 싶어서이다. 남편은 회사가 근처니 모르겠지만, 나에겐 덕수궁 돌담길은 괜한 로망이 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마음 일렁이는 봄날에도, 녹음이 짙은 커다란 나무들이 그림자를 내어주는 한 여름날에도,  색색깔의 단풍이 덕수궁과 어우러져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는 표현이 생각날 정도로  빠져들게 하는 가을날에도,  눈이 오면 또 눈이 오는 대로 멋있는 겨울날의 종로의 풍경들. 마음이 시릴정도로 아름답다는 말이 맞겠다. 그곳을 보기 위해, 눈으로 담기 위해 별 일정이나 약속이 없는 주말에는 와플집으로 향한다.


남편과 처음 봤던 뮤지컬이 광화문연가였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한껏 꽃단장을 하고 설렘을 안고 기다렸던 그 시절의 기억들과 풋풋했던 우리의 모습이 이곳 덕수궁 돌담길을 오면 유난히도 생각이 난다. 열렬히 사랑했고, 보이는 게 그 밖에 없었던 푸릇푸릇했던 20대의 나. 마흔을 앞둔 지금은 그때가 많이 그립고 그립다. 하지만, 그때보다 한결 안정적이고 편안한 지금이 더 좋다고 말하고 싶다. 불안 불안했던 20대의 우리보다 단단하고 편안한 마흔을 앞둔 우리의 모습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와 내가 만나 우리의 분신같은 두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룬 현재의 모습은 어릴적 내가 꿈꿔온 미래이기도 했다. 돌담길을 걸으며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져 끝도 없는 단상에 젖어든다. "엄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하고 첫째아이가 물어오면 그 단상도 잦아든다.


아이들에겐 이 와플집이, 그리고 이 돌담길이 어떻게 기억이 될지 모르겠다. 그냥 맛있는 맛집으로 기억될지, 자신들의 아빠 엄마와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들로 더해질지...

내심은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해서 자신의 이런 행복한 추억들이 자신을 성장시켰음을 알고,  자신들의 아이들에게도 많은 추억들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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