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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Apr 18. 2023

아들이 축구경기에서 대패한 날


10대 0? 11대 0?

응원하는 부모들 중 아무도 점수를 세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아들이 뛰고 있는 팀이, 엄청난 점수차로 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3라운드, 션이는 골키퍼가 되었다.


쉬는 시간 후 션이에게 키퍼 장갑을 건네는 감독님, 멀리서 간절히 응원하던 내 눈에, 불안해하는 아이의 눈빛이 들어왔다.


우리 신랑은 급히 골대 뒤로 가서, 션이에게 무언가 열심히 말해주고 있었다. 아마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는 중일 것이다.


'이미 10대 0인데, 션이가 골키퍼라니..'


불안한 마음, 마지막 3라운드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고 나는 촬영하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박수를 치며 우리 아이들을 응원했다.




"작년 주니어 축구대회 3등 팀이랑 연습경기가 잡혔대! 전원 2학년 선수들 이래!"


연습경기가 잡힌 날, 션이는 잔뜩 들떠있었다. 그전 연습경기에서 상대팀을 5대 0으로 이겼었고, 그때 최전방 공격수로 나서 2골이나 넣었던 션이는 자신감 충만했었다.


우리 팀은 1학년 선수들이고 2학년 형들은 단 두 명이 있다. 아이들 훈련받는 거 구경하러 가면, 역시 2학년 형들은 드리블부터 다르다며 감탄하곤 했는데, 상대팀 전원은 모두 형들이라니!


경기 시작 전부터 우리 아이들은 상대팀 형들 덩치에 잔뜩 얼은 모습이었다. 시합 전 몸 푸는 모습을 흘깃거리며 상대가 정말 강한 것 같다고 잔뜩 쫄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 시작하자마자 맥없이 4골인가 5골을 내리 먹혔고, 아이들은 무력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상대팀 진영으로 단 한 번도 볼을 몰고 가지 못한 채 끝난 1라운드. 최전방 공격수인 션이는 이렇다 할 활약은커녕, 볼도 몇 번 터치해보지 못했다.


우리 팀이 계속 골을 먹히자 부모들은 모두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다.


"괜찮아!"

"너무 잘하고 있다!"

"완전 나이스 수비였어!"


아빠들도 난리가 났다.


"그냥 덤벼! 덤벼도 돼! 달려들어!"


보통 체면상 한마디 하지 않는 우리 신랑도 "션! 뛰어! 빈 공간으로 가야지!" 라며 개별적으로 지시를 하기도 했다.



헉 헉 헉...


아이들은 얼굴이 빨개진 채 뛰었다. 2라운드가 되며 감을 찾은 아이들은 상대팀 형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냈고 아이들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그라운드 밖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볼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집념, 그 표정, 그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안쓰러운 경기였다.


"헬시! 한골만 넣자!"


우리 부모들은 약속이나 한 듯, 딱 한골만 넣으면 된다고 아이들에게 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렇게 3라운드가 되었고, 9대 0인지 10대 0인지 모를 점수차로 지고 있는 우리 팀의 골키퍼는 션이가 되었다.


불안했다. 두려웠다. 골을 많이 먹혀 아이가 무너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션이는 근성이 있는 편이 아닌데 목숨 걸고 막을 수 있을까 불안함에 심장이 요동쳤다.


상대팀은 우리 골문을 자꾸 두드렸다. 나는 수비수들을 애타게 찾았다.


"제발! 수비 수비!"


우리 팀 수비수가 상대의 공격을 막아줄 때는 너무나도 감사함을 느꼈다.


우리 팀이 골에 실패하고 갑자기 들이닥친 상대의 찬스! 션이는 달려드는 공격수에게 뛰어들어 볼을 잡아냈다. 잘못하면 상대 발에 얼굴이 차일 수도 있었다. 심장이 철렁했지만 그래도 막아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퍼세이브 션! 최고다 골키퍼!"


볼을 뻥 차는 순간까지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션이는 내 걱정과는 달리 멋지게 키퍼역할을 잘 해냈다.


우리 팀은 결국 심판의 재량(?)으로 페널티킥 찬스를 얻어냈고, 그 슛은 완벽하게 멋진 골로 이어졌다. 모두가 환호했고, 그라운드 위 모든 선수들은 골키퍼인 션이에게 달려와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그렇게 좋을까. 아이들의 함박웃음이 이렇게 예쁘다니. 한 골! 제발 딱 한 골만 이라는 바람, 희망이 커다란 기쁨이 되었다!


그렇게 경기가 끝났다. 우리는 대략 10대 1로 패배했다.



돌아오는 차 안, 션이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멋지게 골키퍼 역할을 잘 해냈는지에 대해 뿌듯함을 쉴새없이 표현했다. 절대 막을 수 없는 각도로 들어와 허용한 두 골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은 듯했다. (요리스도 못 막을 각이었다고 했다.)


션이는 자기들이 먹힌 10여 골보다, 페널티킥 찬스를 얻어 성공시킨 그 한골을 이야기했다.


경기가 끝나고도 수십 분을 그라운드에서 공을 또 차고 논 아이들에게 패배는 이미 머릿속에 없었다.



"션, 골키퍼 하게 되었을 때 마음이 어땠어?"


"무서웠어."


"왜?"


"골 많이 먹힐까 봐."



불쑥 털어놓은 솔직한 답변, 그 중압감을 이겨낸 아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일하는 엄마로 살며 가장 행복하게 돈 쓰는 순간은 아들 학원비 낼 때였다. 내 아이가 무언가를 배우며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었다.


다섯 살 때부터 축구를 하며, 지금 선수반에서 뛰기까지.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생의 경지는 벗은 듯 빠르게 달렸고 전력을 다했고 순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뼈아픈 패배에 좌절하기보단, 잘한 것을 기억하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강하구나!


강한 상대를 만났고 두려워했지만, 또 극복해 낸 우리 선수들. 어제보다 한 뼘 더 성장한 모습이다.


다음에 훈련 구경 갈 때는 아이스크림 잔뜩 사가서 응원해 줘야겠다. 우리 팀! 최고였다!




10대 1, 1 이라는 숫자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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