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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Nov 13. 2024

만 3세 아이와 함께한 강릉 응급실 기록

지방에서 갑자기 아프다는 것

지난주 수요일, 아이가 아파 글을 쓰지 못했다(기다리셨던 독자 여러분들에게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강릉 사투리에 대해 써보고자 했던 기존 계획을 조금 수정해, 아이가 아프면서 뼈저리게 겪었던 ‘강릉에 산다는 것’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일은 수요일 새벽 2시 즈음 일어났다. 딸아이가 울면서 잠에서 깼다(앞으로 글 속에서 딸아이 이름은 태명인 ‘하찌’로 칭하기로 한다). 평소에도 가끔 자다 우는 경우가 있었고, 몇 번 토닥거려 주면 금세 다시 잠이 들었는데 그날따라 도통 울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남매 쌍둥이 둘에 남편과 나, 이렇게 넷으로 모두가 한 방에서 자는데 혹여나 아들(마찬가지로, 태명인 ‘미쯔’로 칭하기로 한다)이 깰까 봐 하찌를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아주 어렸을 때나 심하게 아팠을 때 빼고는 이렇게 밤잠을 자다 데리고 나온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하찌는 자꾸만 배가 아프다고 칭얼댔다. 저녁도 잘 먹었고, 별로 변을 잘 보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날 저녁엔 대변도 시원하게 눴던 터라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대체 이유가 뭘까, 혹시 과도를 깨끗이 씻지 않고 과일을 썰어서 그런 걸까, 유통기한이 임박한 두부로 국을 끓여서일까,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배를 만져주면 좀 괜찮다길래 배를 문질러줬는데 그 배가 매우 딱딱했다. 어렸을 때 체를 많이 했던 터라 그런 나를 닮아서. 급체를 했나 생각하며 배를 계속 만져줬다. 그래도 배가 아프다며 계속 울고 칭얼댔다.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새벽에 43개월, 만 3세 7개월 아이의 급성복통을 봐줄 응급실은 없을 것 같았다.


요즘은 생사가 걸린 일이 아니면 응급실에서 받아주지도 않아요.


어느 날엔가 인터넷에서 봤던 글이 떠올랐다. 같이 잠에서 깬 남편에게 일단 강릉의 종합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두 곳에 전화를 해봤지만 데리고 와도 진료를 봐줄 수가 없다고 했다. 하찌는 계속 울며 보챘다. 아침까지 기다려 강릉에서 가장 큰 소아과를 가기로 했다. 함께 거실로 나온 남편은 좋아하는 티니핑이라도 보여주자고 했고 별 도리없이 텔레비전을 켰다. 하찌는 티니핑에 홀려 텔레비전 화면을 보다가 또 보채고, 보다가 보채기를 반복하다 결국 두 시간여만에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깬 하찌는 여전히 배가 아프다고 했다. 이번에는 만지면 아프니까 아예 만지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 막 울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소아과만 다녀오면 어린이집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미쯔만 어린이집에 보내고 하찌를 데리고 소아과로 향했다. 강릉에서 유일하게 입원병동이 있는 소아과이고 휴일에도 진료를 봐주기 때문에, 속초나 삼척, 동해 등 강릉 인근 지역에서도 많이 찾는 곳이었다. 새벽 6시부터 줄을 선다는 곳이라 긴장하면서 갔지만,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고 제법 쾌적하기까지 했다. 힘이 없는 하찌를 안고 10분 정도 기다려 진료를 봤다. 일단 피검사를 하자고 해서 피를 뽑았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수액걸이를 끌고 오가는 십 대 청소년들을 보았다. 이렇게 큰 아이들도 많이 오는구나 싶어 조금 색다른 기분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1년 반 전에 미쯔가 이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어 옛날 생각도 났다. 어쩌면 하찌도 여기 입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면서 그럴 경우를 대비한 플랜을 마음속으로 짜봤다.


백혈구 수치는 높아져 있는데, 염증 수치는 낮네요.


피검사 결과를 받아 든 의사가 말했다. 장염 초기일 수도 있지만 맹장염일 수도 있으니, 좀 지켜보고 계속 아프다고 하면 큰 병원에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저, 얼마나 더 지켜봐야 할까요?

글쎄요. 그건 아이 상태에 따라 다르지요.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황한 아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질문은 그것밖에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약국에서 처방받은 진경제와 정장제를 샀다. 아이는 간헐적으로 칭얼댔고 힘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죽도, 주스도 먹지 않아 힘없이 축 늘어진 아이를 소파에 눕히고 우선 맹장염에 대해 검색했다. 흔히 우리가 맹장염이라고 부르는 병은 ‘충수염’으로, 맹장의 끝부분에 있는 충수돌기에 생기는 염증이라고 한다. 대개 급성 충수염으로 수술을 하게 되는데, 발병한 지 72시간 이내에 수술을 하지 않으면 복막염 등 더 큰 염증으로 번질 수 있으니 증상 발생 시에 빠른 수술이 필요하다. 남편도 나도 맹장염 경험은 없어서, 어느 정도로 아픈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소아 맹장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 강릉의 병원들은 43개월 아이의 맹장 수술은 힘들다고 대답했다. 맘카페에 원주의료원에서 수술했다는 사람이 있어, 전화해 봤더니 거기도 어렵다고 했다. 강원도에서 제일 크다는 원주세브란스병원에는 소아 맹장 수술이 가능한 전문의가 1명 있는데, 외래진료로 봐주기는 어렵고 맹장 수술은 무조건 응급으로 들어와서 해야 한다고 했다.

원주는 강릉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거리니, 혼자서도 아이를 데리고 다녀올 만했다. 원주에 갔다 와야겠어.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내놓고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백팩에 세면도구와 충전기 등을 챙기고 있는데,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강릉아산병원에서 수술은 힘들어도 검사는 가능하다니까, 일단 검사부터 받아보고 가자.


아직 맹장염이라고 확진받은 건 아니고, 배가 아프다고 한 시점부터 8시간 정도 지난 상황이었으니까 시간적 여유도 있어 보였다. 게다가 강릉아산병원은 집에서 30분 거리다. 싸둔 짐을 챙겨 들고 응급실로 향했다.


강릉아산병원 응급실은 벌써 두 번째다. 하찌가 집안을 뛰어다니다 넘어져 냉장고 모서리에 이마를 찧는 바람에 허겁지겁 응급실에 왔었다. 꿰매야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테이핑만 해도 된다며 반창고로 마무리했다. 돌도 안 됐을 때였다.


검사는 가능한데 수술이나 다른 진료는 어렵다는 설명을 듣고 접수했다. 응급실에 들어가 간단한 문진을 보고 잠시 기다렸다. 11시 30분을 넘은 시각이라 점심시간이 임박해 좀 오래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래도 두 시간 가까이 걸려 원주를 가는 것보단 나았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응급실 베드가 와서 거기 누워서 갔다. 정맥주삿바늘을 꽂는데 싫다며 울어서 그게 조금 힘들었다.


생각보다 검사는 빨리 진행됐다. CT를 찍는데 하찌가 혼자 베드에 눕는 걸 무서워했다. 다행히 검사하는 분들이 무섭지 않게 잘 달래주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찍었다. 엄마도 안 찍어본 걸 찍어보네, 저기 빨간 선 봐, 하찌 빨간색 좋아하지? 옆에서 계속 말도 걸어주고 손도 잡아줬더니 마지막엔 웃기까지 했다.

복부만 촬영하는 거라 CT도 금방 끝났다. 잠깐 기다려 엑스레이를 찍었다. 이번엔 보호자도 없이 검사실에 들어갔다. 엄마 없이 잘할 수 있지? 하면서 데려가는데, 뭔가 어영부영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밖에서 기다렸다. 다행히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 찍고 나오는데 하찌가 좀 울었다. 엑스레이는 잘 찍고, 나가려는데 울었어요. 그 말에 약간 안도했다.

조그만 손에 꽂힌 바늘이 안타까웠다. 하찌는 자꾸만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응급실은 어느새 베드로 가득 차 있었다. 원래 있던 자리에 억지로 베드를 들이밀고, 보호자 앉을자리는 없어서 하염없이 서서 기다렸다. 하찌는 배도 고프지 않고 물도 싫다고 했다. 칭얼거리며 집에 가고 싶다길래 스마트폰으로 하찌가 좋아하는 미니어처 케이크 만드는 영상을 틀어줬다. 이따금 배가 아프다고 했다.

손에서 스마트폰이 사라지니 더욱 시간이 가지 않았다. 하찌가 누운 베드 위에 걸터앉아 응급실 사람들을 구경했다. 환자로 온 사람들은 대부분 엄마 또래의 어르신들이었다. 굉장히 다급한 상황은 없는지 그들의 보호자들은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찌 보호자님.


나를 부르는 소리에 베드에서 일어났다. 전문의 자수가 놓인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다가왔다.


일단 CT 상으로 맹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니 복부 초음파도 보시겠어요? 근데 초음파는 세 시 넘어서 가능해서, 좀 오래 기다리셔야 돼요.

네, 기다릴게요.


시계를 보니 2시 10분 즈음이었다. 한 시간 앉아서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충전된 보조배터리만 있다면야.


다시 기다림이 시작됐다. 다행히 응급실에서도 좀 넓은 구역으로 이동해 마침내 간이의자를 놓고 앉을 수 있게 됐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다. 가방 안에서 뽀로로 비타민 사탕을 꺼내 먹었다. 아이들 때문에 언제나 구비하고 다니는 마이쮸도 두 개 까먹었다. 그나마 검사 때까지는 금식이라 하찌가 물도 찾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어른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다만 도파민 중독의 현대인으로서 무료함만큼은 참기 어려웠는데, 챙겨 온 메모지와 펜이 있어 거기에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간밤에 잠을 설쳐 졸기도 했다.


3시가 조금 넘어 초음파실로 이동했다. 어둑한 초음파실이 무서운지 하찌는 베드에 눕지 않겠다고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 계속 안기려고 해서 결국 비좁은 초음파실 베드 위에 같이 누웠다. 초음파를 보는 분은 나이 지긋한 남자분이었는데, 가운도 입지 않고 니트 조끼를 입은 모습이 꼭 온화한 학교 선생님 같은 인상이었다. 그분은 실제로 아주 다정하고 친절하게 아이의 복부 초음파를 봐주며 하찌가 초음파 기계를 무서워하지 않도록 해주셨다. 그동안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초음파를 봐왔지만 그렇게 친절한 사람은 처음이어서 약간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이게 자궁이고요, 이게 난소예요. 아이가 너무 어려서 아이한테 설명은 못해주겠네요.


조그만 아이의 몸속에도 착실히 여성기관이 모두 자리 잡고 있는 게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여기가 충수돌기인데, 보시면 크기도 괜찮고요. 그렇게 배를 꾹꾹 눌러가며 제법 오랫동안 초음파를 봤지만 특별한 이상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응급실로 돌아와 있으려니 소아과 외래진료를 잡아줬다며 수납을 하고 소아과에 가보라고 했다. 응급실 진료비가 올랐다고는 하지만 소아에다 조산아 외래진료비 경감까지 받고 있어 실제로 낸 돈은 5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의료보험 만세다.


4시 20분 외래진료를 봐야 해서 서둘러 옆 건물 소아과로 향했다. 어느새 4시가 넘어 있었다.


더 이상 베드에 눕는 걸 거부해서 촉진도 제대로 못하고 청진만 겨우 했지만 맹장염 등 다른 이상은 없어 보인다고 해 정장제와 장운동 조절제를 처방받았다. 음식도 별다른 조절 없이 그냥 평상시대로 먹으면 된다고 했다.


소아과를 나와 병원 내 카페에서 달달한 아이스 캐러멜 마키아토와 초코머핀을 샀다. 하찌는 입주위에 까만 빵가루를 묻혀가며 초코머핀을 먹었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는 먹다만 머핀을 꼭 쥐고 잠이 들었다. 집에 와서는 가끔 배가 아프다는 소리를 했지만 더 이상 지난 새벽처럼 엉엉 울지는 않았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갑작스레 아이가 아프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자연을 만끽하며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강릉이 좋아 이곳에서 아이를 계속 키우기로 결심했지만,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시나마 들었다. 희귀병도 아니고, 맹장염이라는 흔한 질병에 대한 수술조차 두 시간 가까이 떨어진 병원에 가야 하는 현실이 착잡했다.


그동안 강릉에 살면서 ‘그래도 영동 지역에서는 가장 인프라가 잘 돼있는 곳’이라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속초도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그곳엔 출산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어 그곳의 임신부들은 강릉까지 와서 아이를 낳는다. 영동지역에 유일한 3차 병원 역시 강릉에 있고, 소아과 대란이라지만 강릉에는 생각보다 소아과 의원이 많은 편이다. 그럴 때면 ‘그런 데는 정말 살기 힘들겠다’ 생각했었다. 근데 막상 아이가 아프고 보니 강릉도 모든 게 가능한 곳은 아니었다.


어린아이를 받아주는 응급실을 찾지 못해 뺑뺑이를 돌았다는 뉴스가 남일 같지 않았다. 의학 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 의사가 없어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이미 출산율은 0.7명으로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이니, 나중에는 의사도 소방관도 경찰도, 모든 것이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누렸던 모든 것들이, 미래에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될 것 같았다. 그 불안감 앞에 나는 너무도 무력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가슴만 답답해졌다.


그래서, 아이의 병명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어린이집 가기 싫어 병’이었던 것 같다. 수요일에 그 사단을 치르고(그래서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이는 목, 금 이틀을 집에서 쉬었다. 하찌는 엄마를 아주 좋아해서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잠을 못 잔 피로와 응급실 피로 등이 누적되어 일주일 넘게 목감기에 시달렸지만, 그 후로 하찌는 어린이집에 다시 잘 다니고 있다. 주위 얘기를 들어보면 가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잘 다니다가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는 일이 있는데, 아마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여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지금도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있으니, 정말로 ‘어린이집 가기 싫어 병’이었으리라고,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강릉에 살아보니’의 결론. ‘아이가 갑자기 심하게 아프면 원주세브란스로 가되,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가기 전에 강릉아산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도록 하자’. 이상 강릉살이에 꼭 필요한 꿀팁이었다.

이틀 동안 엄마와 단둘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하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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