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를 표현할 수가 없어서 경상도 사투리처럼 보이네요
강릉에 왔을 때 가장 충격받았던 것이 바로 사투리였다. 부동산 아저씨를 만났는데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국말을 하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청이 심한 사람들이 이런 기분일까? 굉장한 혼란을 겪으며 그 자리에 서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강릉 사투리’라고 하면 으레 강원도 사투리로 자주 거론되는 ‘~드래요’가 떠오른다. 강릉에 오기 전까지,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에서 만난 강원도 출신 선후배와 동기들도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는 편이었다. 먼저 나서서 강원도에서 왔다고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였으니까. 그중에서도 강릉에서 온 선배가 한 명 있었는데, 억양이나 어미에 가끔 사투리가 나올 때가 있었지만 그땐 그걸 강릉 사투리라고 생각지 못했었다.
강릉 사투리는 흔히 ‘영동 방언’으로 대표되는데, 대관령을 중심으로 서쪽을 영서, 동쪽을 영동이라고 부른다. 서울 살던 시절엔 집 근처에 ‘영동시장’이 있었는데 그건 영등포의 동쪽이라 영동시장이었던 것이고, 강원도의 영동은 대관령을 기준으로 한다. 기준이이야 어찌 됐든 조금 신기한 인연이긴 하다.
고속도로도 고속전철도 없던 옛날 옛적엔 대관령을 넘기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라, 교류는 남북으로 활발해 경상도 지역과 왕래가 많았다고 한다. 강릉 사람들은 김유신 장군을 대관령 산신으로 모시는데, 처음에 강릉에 와서 이를 배우곤 ‘굳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를테면 중국의 관우처럼, ‘관우는 짱 힘세고 짱 유명하니까 우리 지역에서도 모시고 받들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되짚어보면 강릉은 신라의 국경지대로 외적의 침입을 막아주는 고장으로. 전투가 빈번하였기 때문에 나라의 이름난 장군을 산신으로 모시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이었다. 신라의 왕위 계승전에서 밀려난 김주원이 강릉에 와서 눌러앉아 후에 ‘명주군왕’으로 불리기도 했으니,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강릉은 경상도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참고로 이 김주원은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방탄소년단의 RM도 강릉 김씨다.
역사가 그러하니 말에도 그게 드러난다. 강릉 사투리라고 하면 이북 사투리와 닮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경상도 사투리도 좀 섞여 있는 느낌이다. 제주도에 ’혼저옵서예‘가 있는 것처럼 강릉에는 ’마카모예‘가 있다. 같은 뜻은 아니지만 행사나 축제의 현수막에 자주 걸리곤 하는 말로 강릉의 유명관광지에서도 종종 이 말을 볼 수 있는데, ’마카‘는 ’모두‘, ’모예‘는 모여, 즉 ’마카모예‘는 ’모두 모여‘라는 뜻이다.
부모님 모두 경상도 분이시고 어린 시절을 경상도에서 보낸 나는 ’마카모예’에서 경상도의 향기를 맡는다.
마카다 치아라!
‘모두 다 치워라’, ‘전부 다 치워라’ 정도의 표준어로 번역해 쓸 수 있는 이 문장은 바로 경상도 사투리로, 강릉 사투리의 ‘마카’와 뜻도 발음도 꼭 같다. 아마 서쪽보다는 물리적인 거리가 멀더라도 길이 평탄했던 경상도와의 교류가 언어에도 이런 흔적을 낳을 것일 게다. 언어학자가 아니라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지만,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 서울을 거쳐 강릉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강릉 사투리와 경상도, 특히 경북 사투리는 닮았다고.
그래서인지 전라도로 놀러 가는 일은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지금이야 고속도로도 잘 닦여 있고 대한민국 어디든 하루면 가 닿지만, 만 세 살의 쌍둥이 아이 둘을 데리고 대여섯 시간씩 차를 달리는 건 생각만 해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시간에서 최소 한두 시간은 더해야 한다. 강릉 집에서 전주한옥마을을 간다고 가정했을 때 주행거리는 362킬로미터, 예상 소요시간은 4시간 22분(이상 티맵의 안내)이지만 휴게소에 들러 식사하는 시간 1시간,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기 두 번은 휴게소에 들러야 하기 때문에 한 번은 간식과 화장실만 해결한다고 하면 거기에 30분을 더해 휴게시간 1시간 30분, 갑자기 아이들이 화장실을 요구하는 피치 못한 경우에 대비한 30분을 더하면 넉넉히 6시간 반을 잡아야 마음 편히 길을 떠날 수 있다. 오가는 데만도 13시간이 소요되는 긴 여정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전국 일주를 떠나고 싶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어디서든 표준어를 접하기 쉬워지며 지역별 사투리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투리의 향기가 남아있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싶다. 해외여행도 좋지만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은 많으니까.
아이들과 다닌 여행을 기록하고 싶어 커다란 한국지도 포스터도 장만했다. 다녀온 곳을 색칠할 수 있게 시군별로 구획이 나뉘어져 있다. 아이들과 함께 다녀온 곳을 색칠하고 스티커도 붙이며 여행을 추억하고 싶다.
어쩐지 사투리로 시작해 여행 이야기로 빠졌지만, 아무튼 강릉 사투리는 특유의 성조가 아주 인상적이다. 무언가를 물을 때 ‘~나?’로 끝나는 건 경상도 사투리와 또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게 경상도의 용법과는 또 다르고 성조도 전혀 다르다.
경상도에서는 ‘밥 먹었나?’처럼 O, X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만 ‘~나?’를 붙이고, ‘뭐 먹었노?’처럼 주관식으로 답변할 수 있는 질문에는 ‘~노?’를 붙인다.
하지만 강릉 사투리는 다르다. 답변이 주관식이든 객관식이든 다 ‘~나?’를 붙일 수 있다. 경상도에서는 ‘니 차 언제 바꿨노?’라고 할 수 있는 질문을, 강릉에서는 ‘니 차 언제 바꿨나?’라고 한다. 그러면서 ‘마카’처럼 어휘는 비슷한 것들이 눈에 띈다. 여러모로 재미있다.
북한 말 같기도 한데 또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북한 사투리와는 전혀 다르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온 강원도 사투리도 온갖 강원도 지역 사투리를 다 섞어놔서 현실성이 없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강원도는 산골짜기도 많고 북한과도 맞닿아있고 38선에서 휴전선으로 바뀌며 수복된 지역도 있고 이래저래 사정이 많으니 비교적 통일된 특징을 갖춘 말투가 자리 잡기 힘들지 않았을까 짐작만 해본다.
이제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좀 해야겠다. 오래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글을 쓰고 있었더니 고뱅이가 아프다.
(*고뱅이: ‘무릎’의 강릉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