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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Nov 27. 2024

바다라고 다 같은 바다가 아닌 것을

들여다보면 다 다른 강릉 바다

강릉에는 많은 해변이 있지만 ’강릉 바다‘라 하면 으레 경포대를 떠올린다. 나도 그랬다. 여름휴가철이면 뉴스에 꼭 등장하는 경포대 해수욕장의 모습, 서울 OO동에서 온 사람의 인터뷰 장면. ‘경포대해수욕장’, ‘경포대해변’이 잘못된 표현이란 걸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경포대’는 경포호를 내려다보는 누각의 이름으로, 경포에 위치해 있어 ‘경포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냥 경포호 주변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는 마주칠 수 없고, 굳이 언덕길을 올라가야 비로소 볼 수 있다. 수고스러운 만큼 경치는 좋다. 만약 가본 적이 없다면 한 번쯤 방문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탁 트인 누각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포호 전경도 좋지만, 초여름에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여름 바람의 상쾌함은 마음까지 깨끗하게 해주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 오르막길을 오른 후라 조금 힘은 들어도, 경포대 지붕 밑에 앉아 있으면 평소에 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도 절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과연 조상님들이 여기서 시구를 읊고 글을 썼던 것이 이해가 된다. 공원이라기엔 민망하지만 자그마한 잔디밭도 있어서 나름 미니 피크닉도 즐길 수 있다.  


‘경포대해수욕장’으로 자주 잘못 불리는 이 해변의 이름은 ‘경포해수욕장‘이다. 경포대가 워낙 유명하고 동네가 같아 종종 오해받는 모양새다.

바다가 많은 강릉에서도 경포해변의 특징을 꼽자면, 우선 크다. 길이도 길고 육지에서 바다까지의 모래사장 너비도 넓다. 경포해변 진입로라 할 수 있는 만남의 광장에서 남쪽으로 강문해변까지는 호텔과 횟집, 편의점, 포차 등이 꽉꽉 들어차 있다. 친구와 연인부터 가족까지, 다양한 구성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터라 언제 찾아도 큰 부담 없이 갈 수 있다. 한여름 밤에는 짝을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젊은이들이 해변을 가득 메운다. ‘나 같은 게 가서 괜히 물 흐리는 거 아닌가’ 걱정할 필요 없이 가서 돗자리 깔아놓고 있어도 상관없다. 그들은 알아서 바지런히 자신에게 어울리는 짝을 찾아 나서니까.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사람으로서는 더없이 좋은 구경거리다. 밤이 깊어가며 인기 없던 일행에게도 구애의 손길이 뻗치는 걸 보면 재미있다.

그들의 몸짓이 단 하룻밤 여흥에 지나지 않든, 장기적인 관계의 시발점이 되든 그런 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젊음을 낭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애도 만남도 하지 않고 있는 20대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 안타깝다. 젊음은 한때인데, 가장 예쁜 시절을 방구석에서 함부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드넓은 경포해변은 여름 성수기가 아니더라도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다만 이곳의 모래는 다소 알이 굵은 편이라, 고운 모래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 남쪽보다는 그래도 북쪽 해변이 조금 더 모래가 곱기 때문에, 만남의 광장에서 왼쪽, 라카이 샌드파인이 위치한 앞쪽 해변에서 모래놀이를 하기를 추천한다(애엄마의 시선).


이제 경포해변의 남쪽으로 내려가보자.

경포해변에 바로 인접해 강문해변이 위치해 있다. 솔바람다리도 있고 나무데크 길도 있어 산책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강문해변 앞에는 카페가 많아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내다보기에도 좋다. 다만 이곳은 가게들과 해변 사이에 주차장이 있어 기대했던 풍경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강릉의 해변들 중에선 드물게 주차요금을 받는 곳이라, 그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강문해변에서 남쪽으로, 송정해변이 있다. 이곳은 카이트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해변과 인접한 상점가가 없다. 유일하게 해변에서 도로를 건너지 않고 갈 수 있는 가게는 광장에 위치한 매점이다. 나무데크로 꾸민 광장에서는 자주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데, 어르신들의 색소폰 연주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그런지 광장 벤치에 어르신들이 많은 편.

해변 바로 앞에 솔숲이 길게 조성돼 있어 호젓한 분위기의 피크닉이나 산책을 원한다면 송정해변이 답이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 돗자리나 캠핑의자를 펼쳐놓고 바람을 쐬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가슴 설레는 봄이나 나무 그늘 필요한 여름이면 송정해변이 생각난다.

왕복 2차선 도로를 건너면 식당이나 카페 등 가게들이 제법 있기 때문에 한적하면서도 어느 정도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강릉에서 가장 좋아하는 막국수집인 영동막국수도 이쪽에 있는데, 올 때 늘 막국수만 먹어서 해변까지 즐겨본 적은 없지만 관광객이라면 송정해변 송림 산책까지 곁들여서 좋은 관광 코스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송정해변에서 솔숲길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 걸어가면 그 유명한 안목해변이 나온다. 카페가 즐비한 이 해변은 카페에 자리가 없어도 큰 걱정이 없다.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데크 난간에 걸터앉아 마시면 되기 때문이다. 해변 한켠의 주차장에서는 SUV차량의 트렁크를 열고 차박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안목해변을 가장 좋아한다. 손쉽게 따뜻한(때로는 아주 차가운)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다양한 연령층의 관광객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집에서도 가까운 점이 매우 이상적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모래놀이도 많이 한다. 모래성을 쌓기엔 고운 모래가 더 좋지만, 너무 고운 모래는 수영복에 콕콕 박혀 빨아도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 손바닥을 툭툭 털어도 털리지 않고 끈덕지게 붙어있다. 주부에게는 아주 곤란한 존재다. 때문에 적당히 크기가 있는 안목해변의 모래를 좋아한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항진해변이 있다. 안목해변에서 걸으면 금방이다. 망치매운탕이 맛있는 식당이 있고, 유명 막국수집의 분점이 있는, 안목보다는 좀 더 식사에 집중된 곳이다. 여름철 모래놀이를 하고 싶으면 이곳을 간다. 안목보다는 덜 붐비고 주차할 곳도 많다. 성수기에는 이곳도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지만, 나름 현지인으로서 터득한 비법이다.


이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튼튼한 두 다리와 체력과 시간만 있다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이어진 해변이었다면 이제는 차를 타고 산을 넘어가야 한다.


남항진의 남쪽에 염전해변과 안인해변이 있다. 개인적으론 거의 가지 않는 편이지만 이곳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쪽 해변은 수심이 얕고 조개껍데기가 아니라 진짜 조개를 주울 수도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하기 좋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가보지 않았다.


더 내려가면 등명해변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해변은 그만큼 호젓함이 매력적이다. 이 해변의 가장 큰 특징은 기찻길을 건너야 갈 수 있다는 점인데, 조금 위험해 보이지만 그래서 운치가 있다. 옛날엔 그냥 기찻길을 건너 다녔는데 사실 함부로 철길에 진입하는 것은 불법으로, 요즘은 따로 진입로가 생긴 것 같다. 이곳도 상당히 매력이 있으니 한적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다만 주변에 뭐가 많이 없어서, 텀블러에 커피 정도는 담아 오는 것이 좋다.


등명해변 아래로 정동진이 있다. 조선시대에 광화문의 정동쪽이라서 정동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2월 31일이면 해돋이를 보러 온 사람들로 좁은 도로가 꽉 막힌다. 그래서 해돋이는 집에서 본다. 겨울의 해돋이는 꽤 늦어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해돋이를 볼 수 있다. 사실 이 정도로 내려가면 ‘강릉 바다’라고 하지는 않고, 정동진은 그냥 정동진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 삼척해변도 참 좋지만, 이 시리즈는 <강릉에 살아보니>이므로 강릉 바다만 얘기할 생각이다. 이제 방향을 이제 경포 위쪽으로 올라가 보자.


경포해변 위로 사근진, 순긋, 순포해변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별로 유명하진 않았는데 경포해변 옆이면서도 여유로워 한가로운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 카페에서 바구니, 돗자리, 파라솔 등이 포함된 피크닉 세트를 대여해 이곳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사근진해변에는 해중공원 전망대도 있는데,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모래사장에 위치한 전망대라 탁 트인 바다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사천해변은 드넓은 솔밭과 마찬가지로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곳이다. 여름밤 이곳에 돗자리를 펼쳐놓고 드러누우면 까만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밤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아주 오랫동안 가보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이 생겼으니 아이들과 함께 가볼까 싶은데 아이들은 5분도 누워있지 못하겠지…


여기서 다리를 하나 건너가야 하는 사천진해변은 사천 물회마을에 인접해 있다. 모래사장은 좁지만 또 좁은 나름대로 놀기 편한 곳이다. 여름철엔 이곳에서 뭔가를 채집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작은 꽃게나 성게 같은 것을 주로 줍는다. 해안선을 따라 제법 길게 상점가가 조성돼 카페며 음식점, 서핑샵이 늘어서 있어 제법 휴양지 마을 분위기가 나는 곳이다. 사천진 바다도 푸르고 예뻐서 자주 찾는다.


더 위로 올라가면 솔향기캠핑장으로 유명한 연곡해수욕장, 영진해변, 주문진이 나온다. 주문진에서는 걷는 재미가 있는 자그마한 향호와 이어진 향호해변을 좋아한다.


강릉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강릉 바다는 다 비슷비슷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에 지내며 다니다 보니 가까운 바다라도 다 다르다. 바다색도 조금씩 다르고, 모래도 다르고, 분위기도 많이 다르다.


오늘 아침엔 눈이 내렸다. 눈 쌓인 해변도 참 매력적이다. 무릎까지 오는 눈밭을 푹푹 밟으며 가다 고개를 들어 뒤를 돌면,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그대로 보인다. 고개를 돌리면 아직도 밟을 눈이 많다. 올 겨울엔 눈이 많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눈이 아주아주 많이 쌓이면, 그때는, 강아지 같은 아이들과 하얀 눈밭을 뛰어다니고 싶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조용한 곳을 찾으려면 사실 이름없는 해변을 찾는 편이 좋다. 안목해변과 송정해변 사이(좌측), 여름이지만 늦은 오후의 안목해변(우측).
눈 쌓인 경포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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