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신나는 노래를 들어요
’강릉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적다 보니 먹을거리나 관광지 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쓰다 보면 어느새 에디터를 하던 버릇이 나와 소개글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오늘은 어쩐지 ’강릉 가이드북‘에서 벗어나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겪었던 것에 대해 쓰고자 한다. 사실, 이번 글을 쓰면서 고민이 아주 많았다.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과연 한가로운 강릉살이에 대한 에세이나 쓰는 것이 맞는 걸까? 내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전에 겪어보지 못한 사회, 인구는 절벽 수준으로 줄어들고 사회 인프라는 유지되지 않고, 디스토피아가 가까워져있지 않은가? 나 홀로 유유자적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 지난한 괴로움 끝에 어제는 연재일이었지만 글을 업로드하지 못했다. 하루가 지난 오늘, 다시 일어서는 기분으로 키보드를 마주했다. 누군가는 내 글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만의 글을 쓰기로 몇 번이나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되뇌며. 그렇게 완성한 이번 원고의 주제는 ‘외로움’이다.
예전부터 이방인으로 사는 것이 좋았다. 좋아하는 책은 카뮈의 <이방인>. 사실 카뮈의 작품 중에서는 다른 걸 더 좋아하지만, <이방인>도 좋아한다. 이사를 가서 새로운 집에 적응하는 것도 벽에 걸 액자를 고르는 것도 신이 났다. 베란다에 인조잔디를 깔고 캠핑의자를 놓고, 이케아 양초 랜턴을 놓고 야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방문을 파란색 페인트로 직접 칠하기도 했다.
외국에 가서 지내는 건 더 좋았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동차 없이 시골길을 걸어 다녀 시내버스를 타고 다녀도 재미있었다. 미국과 호주 두 나라에서 지냈는데, 두 곳 모두 동양인이 버스를 타면 모두가 쳐다보는 그런 동네였어서(지금은 어디든 동양인이 많아졌을 것 같다)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또 짜릿하기도 했다.
잡지사 에디터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가 다시 회사에 들어가게 됐을 때도, 새로운 환경이 낯설어서 힘든 적은 없었다. 낯을 가리는 타입이지만 새로운 것은 늘 재미있었다. 자기소개서의 내 장점엔 ‘도전정신’이 항상 적혀 있었다.
강릉에 이사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바다가 보이는 (집은 아니지만) 도시에서의 삶이라니, 상상만 해도 멋졌다. 남들은 휴일에 줄을 서야 갈 수 있는 맛집을, 평일에 아무렇지 않게 웨이팅 없이 들를 수 있었다.
몇 달 지나니까 좀 외로워졌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지만 밖으로 돌아다녀야 에너지가 생기는 타입이라,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수업도 듣고 문화예술 모임도 나갔다. 그런데 나는 사실 관계를 따지고 논리가 중요한 대문자 ‘T’라서(게다가 논쟁을 좋아하는 ENTP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아 네 그래요’가 도저히 되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 의견을 피력해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모임은 나가지 않게 됐다.
어쩌다 보니 극단을 하게 되어 어영부영 유지하고 있는데, 친목 모임이 아니라 공연을 하러 다녀야 하다 보니 새로운 단원이 왔다가는 떠나가고, 또 왔다가는 떠나가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인간관계라는 것에도 많이 무뎌졌다. 그래도 적을 두고 있는 곳이 있다 보니, 사람들도 만나고 집 밖에도 나가고 있다. 덕분에 외로움은 많이 느끼지 않는다. 아이들이 있어서 외로워할 겨를이 없어지기도 했고.
타지생활의 외로움을 아이돌로 달래기도 했는데, 지금도 어느 정도는 기대고 있지만 역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교감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니까.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아마 농경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에는 더 그랬을 것이다. 농사란 땅에 묶여있는 일이니까.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 읽었던 어린이 소설책에는 수몰지구를 떠난 사람들이 고향 마을을 그리워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댐이 만들어지며 마을이 물에 잠기는 수몰지구. 물속 마을이라니 어쩐지 낭만적이기도 하고, 가고 싶어도 다시는 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애틋하고. 그건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의 그리움과도 비슷했다. 아마 ‘우리의 소원은 통일’ 같은 동요를 부르며 자랐던 세대라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고향에 대해 그 정도로 강력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태어난 동네를 생각하면 그리움보다는 권태로움이 먼저 찾아든다) 삶의 터전을 떠나 정착해 있는 이곳이 아직까지는 마음에 든다.
강릉은 재미있는 곳이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외지인도 많고, 그래서인지 텃세도 느끼기 힘들다. 우리 극단도 강릉의 지역 전통문화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정작 강릉 토박이는 작년에 들어온 단원 한 명뿐이다. 이곳을 떠나면 좀처럼 들어보기 힘든 사투리도 재미있다.
관광지에서 살며 언제나 여행자들을 마주한다. 들뜬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여행온 기분이다. 그렇게 항상 여행 왔다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어차피 인생은 한 편의 여행이 아니던가? 그저 죽어서 좋은 여행이었다,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