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강릉단오제 이야기
여러분은 ‘강릉단오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나는 과거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무렵, 중국에서 자기네 명절을 왜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만드냐며 역정을 내고 있다는 뉴스를 봤던 게 기억에 남는다. 중국이 뭐라든 강릉단오제는 그 가치가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정확히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것인데, 그렇게 말하면 뭔가 와닿지 않는지 대충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 부르고 있다)에 등재되었는데, 그게 2008년의 일이었다. 그러고 ‘강릉단오제’라는 건 잊고 살았다. 단옷날이 음력으로 몇 월 몇 일인지도 몰랐고, 정확히 뭘 하는 날인지도 관심이 없었다. 강릉에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강릉에 와서 깜짝 놀랐던 점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고, 하나는 밤이 되면 주유소가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살아서 24시간 주유소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주유소란 편의점처럼 24시간 영업하는 게 당연한 건 줄로만 알았다. 지금이야 편의점도 24시간 영업하지 않는 곳도 생겨났지만, 외딴 산골짜기도 아니고 아파트와 학교가 있는 주거지 근처에 위치한 주유소가 저녁 8시 이전에 불을 끈다는 사실이 너무도 생소했다.
집 근처 하나로마트는 걸어서 10분 거리지만 차를 타고 간다. 장을 보면 짐이 무거워진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은 등하교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걸어 다니는 학생들 뿐이다. 널찍한 도로 주변으로 옥수수밭과 공사장, 작은 동산이 있다 보니 유동인구가 생길 여지가 없다.
그런 길거리에도 늦은 밤까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진귀한 광경을 볼 수 있는 때가 일 년에 딱 한 번 있다. 바로 단오 때다.
강릉의 단오제는 흔한 지방 축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강릉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남대천변에 제사와 굿을 지내는 단오제단이 마련되고, 그 주변으로 길게 장이 서는데 그 규모가 상당하다. 단오 때가 되면 강릉 온 시내가 축제 분위기로 들뜬다. 벌건 대낮에도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없는데, 단오 때면 깜깜한 밤에도 길거리에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그것도 꼭 어른들만 그런 것도 아니고, 아이들 손 잡고 가족 단위로 나서는 사람들도 많다.
보통 단오제는 단옷날을 끼고 일주일 가량 열리는데, 단옷날이 음력으로 5월 5일이다 보니 매년 날짜가 바뀌어 현충일이나 석가탄신일이 단오제 기간에 끼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면 공휴일이 포함돼서 단오제도 더 길어진다.
단오제를 준비하며 남대천변에 천막을 설치하고 장이 서면, 단오제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그 전날 이미 단오장은 불야성을 이룬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다들 이곳에 모여 밤을 불태우는 것이다.
단오제 때는 각종 행사와 공연, 씨름대회나 사투리대회 같은 경연이 열리고 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 주차할 곳이 없다. 게다가 단오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감자전과 막걸리다 보니 아예 차를 가져오지 않고 걸어 다니는 사람도 많다. 평소엔 걸어서 5분 거리도 걷지 않던 사람들이, 단오 때만큼은 40분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닌다.
그렇다고 해서 강남대로 애프터클럽 앞 마냥 아침까지 술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진 않는다. 단오장 가게들은 밤 10시면 문을 닫고, 아쉬운 사람들은 중앙시장으로 넘어가는 굴다리를 지나 나오는 가게들에 앉아 술잔을 더 나누지만 그마저도 다수는 아니다. 대부분은 꽤나 이른 시간에 집에 간다. 다음 날도 단오제를 즐기러 나오기 때문일까?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단오제 기간만 되면 감자전과 아무 상관이 없는 가게에서도 죄다 감자전과 막걸리를 판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카페에서도 감자전을 내놓으니 말 다했다. 이 시기만큼은 남대천 근처 가게들이 하나가 되어 치킨집에서도, 호프집에서도, 고깃집에서도 감자전을 부친다. 막걸리는 다른 종류가 준비되기도 하지만 보통 ‘단오주’다. 매년 나오는 단오주는 주로 강릉 지역의 막걸리 회사인 ‘사임당막걸리’에서 주조한다. 막걸리 특성상 매년 맛이 다른 탓에 ‘올해는 좀 달구만’, ‘어느 해가 참 맛있었는데’ 하면서 단오주력(?)을 뽐낼 수 있다.
돈을 주면 얼마든지 사 마실 수 있는 단오주와는 달리 ’신주‘는 돈 주고도 사 마실 수 없는 귀한 술이다. 강릉단오제는 ‘신주’를 빚는 것으로 시작한다. 단오가 시작되기 한 달 반쯤 전부터 단오제를 주관하는 위원회 사무실 앞에는 작은 사이즈의 쌀 가마니가 쌓인다. 단오 때 맞이하는 신을 위해 준비하는 신주를 빚기 위함이다. 이 쌀은 강릉 시민들에게 기부받은 것이다. 그렇게 모은 쌀로 다 같이 술을 빚는다. 술이 완성되는 데는 한 달 정도 걸리기 때문에 미리 해둔다. 이 신주는 단오제단에 바치는데, 당연히 신이 벌컥벌컥 들이켜고 가시지는 않으니 모두가 나누어 마신다. 쌀을 기부한 사람에게는 신주 교환권을 하나씩 주는데, 단오제 때 이 교환권을 내고 신주를 한 병씩 받아갈 수 있다. 미리 쌀을 기부할 수 없었다면 단오장에 마련된 부스에서 신주와 수리취떡을 맛볼 수 있다. 줄을 서서 종이컵 반 잔씩 받아먹을 수 있다. 여러 번 받아먹어도 되지만,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로우니 자제합시다. 일단 나부터.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신주지만, 신주도 역시 매 해 맛이 다르다. 그래서 지금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마실 만큼만 받아와 먹는다.
단오제는 보통 일주일 정도 지속된다. 그동안 원 없이 감자전과 막걸리를 마셔서, 1년 동안은 감자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다음 해 단오가 돌아오면 다시 감자전을 찾는다. 그런 사이클이 반복된다.
술 얘기만 하다 만 것 같지만 어른들의 단오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아무래도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즐기는 감자전과 막걸리 한 잔이다. 단오제가 되면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도 만나고, 동창들도 만나며 온 마을에 내려앉은 축제 분위기를 만끽한다.
아이들은 단오장에서 동춘서커스(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춘서커스를 봤다)나 바이킹, 미니기차, 미니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를 즐기며 어려서부터 단오를 즐길 줄 아는 강릉시민으로 거듭난다.
강릉에 와서 이렇게 재미있는 강릉단오제를 알게 되어 기쁘다. 여러분도 ‘그까이꺼 지방축제 다 거기서 거기지 뭐’라고 생각했다면, 내년 단오제에 꼭 와보시라.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실제로 서울에 사는 지인들과 친구들은 단오제에 와보고 그 규모와 흥겨움에 놀라 몇 번이나 다시 오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별 게 없을 수도 있다. 감자전이나 도토리묵을 파는 먹거리 상점들, 이불이나 양말, 옷, 자질구레한 생활용품과 건강기능식품을 파는 가게들, 커피나 디저트를 파는 부스 등이 대부분이고 약간의 단오체험과 각종 대회가 열리긴 하지만 시간 맞춰서 그걸 다 관람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국엔 먹을 거나 사서 단오장을 슥 둘러보는 게 끝이다.
그래도 온 거리가 축제에 들썩이는 그 공기만큼은 진짜다. 그러니까, 내년 봄에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단오제에 한 번 와보시길 추천합니다. 참고로 내년은 5월 31일이 단옷날, 윤달 때문에 조금 이르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