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랑 단둘이 해외여행이라구요?
결혼 10년차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북유럽 여행기
발단은 사소했다. 평화로운 평일 저녁, 여느 때처럼 텔레비전을 보며 밥을 먹고 있었다. 연초라 때는 겨울이었고, 보일러가 돌아가는 따뜻한 집안은 훈훈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홈쇼핑 채널에선 여행 상품이 소개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보고 있다 문득 남편에게 물었다.
나, 어머님이랑 북유럽 갔다와도 돼?
보통 며느리라면 할 수 없는 생각을 먼저 꺼낸 건 다음과 같은 합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1. 나는 북유럽이 가고 싶다.
2. 남편은 6시간 이상 비행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3. 그렇다고 해서 장기간 여행을 혼자 보내줄 것 같지도 않다.
4. 어머님은 매년 패키지 해외여행을 즐기시는데, 패키지여행을 혼자 신청하면 싱글 차지를 수십만 원 더 물어야 한다.
5. '어머님을 모시고' 가기 때문에 놀러 간다기 보다는 효도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이유의 배경에는 비교적 여유롭고 느긋한 내 성격도 한몫 했지만, 10년차가 다 되어가는 결혼생활 동안 어머님이 잘 해주신 덕택이 컸다. 어머님이 잔소리와 바가지를 시전하셨다면 갔다오라고 돈을 쥐어줘도 마다했을 것이다.
남편은 어머님만 괜찮다고 하시면 얼마든지 갔다오라고 했고, 나는 바로 다음 날 어머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같이 북유럽 가실래요?
혹시 부담스러워 하실까봐 내 경비는 다 내가 부담한다고 했다(정확히는 남편이 내줬다). 어머님이 거절하시면 당분간 북유럽은 꿈도 못 꿀 것 같았다. 어머님은 다행히 좋다고 하셨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남편은 나의 무서운 추진력에 새삼스레 놀라는 모양새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자유여행은 떠나는 게 아니다. 음식이 조금만 입에 안 맞아도, 계획이 조금만 어그러져도 모든 불평과 불만이 내게 쏟아지고 괜히 효도 한 번 해보려고 했다가 서로 마음만 상해서 돌아오기가 일쑤인 탓이다. 게다가 일주일의 시간 동안 북유럽을 알차게 돌아보려면 패키지 선택이 필수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북유럽 패키지 상품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믿을 만한 여행사이면서도 가격이 합리적이고, 일정이 너무 길지 않아야 했다.
최종적으로 고른 것은 C여행사의 7박 8일짜리 상품.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4개국을 돌아보며 핀에어를 이용하는 일정이다.
처음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4월 말로 날짜를 알아봤다. 북유럽행을 결정지은 것이 1월말 즈음이었으니까, 북유럽의 추위를 감안해 정한 날짜였다. 이 얘기를 친정 부모님에게 했더니, 이미 북유럽을 갔다오신 친정 부모님은 북유럽은 최소한 6월은 되어야 한다며 극구(!) 말리셨다.
거기 4월은 아직 겨울이야. 6월도 하순은 돼야 다닐 만하다구.
그래서 다시 폭풍검색을 시작했다. 북유럽의 여행 성수기는 6월부터 8월. 당연한 얘기지만 가장 날씨가 좋은 7, 8월에는 여행상품 가격도 비싸진다. 고민 끝에 6월 중순으로 최종 결정했다. 6월 13일 수요일. 이 모든 걸 완료한 게 2월 말이었다. 석 달 정도 남았다. 북유럽에 가는 날은 그렇게도 요원해 보였다.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고 지고 가로수 나뭇잎이 새파랗게 하늘을 뒤덮었다. 말간 하늘엔 때때로 구름이 흘렀다. 공기는 이제 완연한 여름색깔을 띠었다.
6월 13일은 그렇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