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의 바람 바람 바람
결혼 10년차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북유럽 여행기
아침 다섯 시 반에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호텔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식당은 로비 옆에 자그맣게 위치해 있었다. 빵과 소시지, 달걀, 베이컨, 미트볼, 샐러드, 요거트, 과일처럼 기본적인 것들이 있었다. 시골 동네 호텔이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다 맛있어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빵 사이에 치즈도 끼워먹고 스크램블 에그도 먹고 토마토도 먹었다. 미트볼이 특히 맛있었다. 역시 미트볼의 고장 스웨덴인가? 먹고 더 갖다 먹을까 싶었는데 배부르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만뒀다. 애초에 아침을 잘 먹지도 않고.
버스를 타고 다시 덴마크로 이동했다. 먼저 간 곳은 힐레뢰드에 있는 프레데릭스보르 성.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며 현재 성의 대부분은 역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건물 일부를 보수하고 있었다. 건물을 둘러싼 비계는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정갈해 보였다. 일 때문에 건축 관련 일에 관심이 많은 남편을 위해 열심히 비계 사진을 찍었다.
일정 상 안에 들어가지는 않고 바깥만 돌았다. 성 뒤에는 정원과 호수가 있었다. 호수 옆엔 오리가 매우 많았다. 오리를 잔뜩 찍었다. 오리들은 잔디밭을 유유자적 돌아다녔다. 그 애들은 도망가지도 않았다. 정원은 멀리서 보면 나스카 문양처럼 가꾸어져 있었다. 몇몇 관광객이 정원 안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시는 어머님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셨는데 영 바람이 많이 불었다. 때문에 머리가 자꾸만 바람에 휘날렸다. 헤어스타일을 중요시 여기는 어머님은 머리가 망가진다고 마음에 안 들어하셨다. 처음엔 열과 성을 다해 찍다가도 바람이 멈추질 않으니 점점 지쳐가고 말았다. 자연스러운 사진도 몇 장 찍어드렸는데 사진을 확인하시더니 표정이 별로라고 하셔서 더 안 찍어드리게 됐다. 아 그럼 말구요...
다시 버스를 타고 코펜하겐 뉘하운으로 갔다. 운하 양 옆으로 원색의 예쁜 건물들이 늘어선 예쁜 항구다. 이 가운데는 안데르센이 살았다는 집도 있다. 광장엔 빨간색과 노란색의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수로를 유람하는 페리를 탔는데 페리 가이드인 젊은 남자가 너무 잘 생겨서 깜짝 놀랐다. 북유럽 사람들은 바이킹의 후손이라 우락부락하게 생긴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다. 덴마크부터 이어진 북유럽 미남미녀 퍼레이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이어졌다.
페리 가이드는 영어와 (아마도)덴마크어로 해설을 해줬고, 우리 투어 팀을 위한 현지 가이드는 한국말로 설명을 해주었다. 이어폰을 꽂아쓰는 수신기를 통해 설명을 들었다. 현지 가이드는 희끗한 단발머리가 멋진 한국인 여성 분이었다.
다리가 매우 낮아서 배가 다리 밑을 지날 때 다들 고개를 숙여야 했다. 지나면서 본 다리 밑엔 낙서나 스티커 같은 것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손을 뻗어 스티커를 붙이고 펜을 꺼내들었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 밑으로 지나가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아말리엔보르 궁전 앞 광장에서는 근위병의 교대식을 보았다. 마침 시간이 맞았고 사람도 많지 않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본 그들의 얼굴은 솜털이 보송해 갓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싶었다.
초등학교 때 '군인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쓴 일이 있다. 요즘이야 그러지 않겠지만 당시엔 반 아이들 모두가 교실에 앉아 편지를 썼고, 그 편지는 랜덤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다들 손을 뻗어 손에 집히는 걸 골랐을지도 모르겠다. 답장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때의 그 '군인 아저씨'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의 풋풋한 청년이었을 것이다.
점심은 대만인이 운영하는 ‘Chopstix’라는 식당에서 먹었다. 토마토 스프와 포크 스테이크를 먹었다. 덴마크는 낙농업 뿐만 아니라 양돈업도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돼지고기가 맛있었다. 등심 부위인지 돈까스 고기처럼 지방층이 붙어 있었는데 잡내 하나 없이 부드러웠다. 맥주도 한 잔 마셨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술 드시는 건 싫어하셨는데 아들 딸들에게는 꼭 식사 때마다 술을 권유하신다. 나는 술을 좋아하니까 아무튼 좋다. 나온 것은 칼스버그 생맥주. 이가 시릴 만큼 쨍하게 차갑진 않았지만 적당히 시원하고 맛있었다.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아주 진한 바닐라 맛이었다. 역시 이것도 낙농업의 영향인 걸까? 평범한 동네 식당의 후식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맛있다니.
확실히 쿠키나 아이스크림, 빵 같은 서양 음식은 서양 것이 맛있다. 미국에서 먹었던 쫀득한 브라우니, 호주에서 먹었던 클로티드 크림에 잼을 듬뿍 얹은 뻑뻑한 스콘과 진한 바닐라 아이스크림, 쥐가 출몰하던 파리의 지저분한 카페테리아에서 먹었던 크로크무슈 같은 것들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맛으로 기억될 것이다.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간 것도 아닌 동네의 가게에서 ‘인생 맛’을 찾는 것처럼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까.
어머님은 먹는 걸 별로 즐기지 않으신다. 1일 1식을 하시는데 딱히 건강을 위해서나 다이어트 때문이 아니다. 아침은 늘 사과와 데친 브로콜리, 정체모를 잼을 바른 식빵 한 쪽, 믹스 커피를 드시며 점심은 밥을 해드신다는데 가스 불은 거의 쓰지 않으신다. 집 안에 음식 냄새가 나는 게 싫어서라고 하신다. 먹는 걸 좋아하고 요리에도 관심이 많은 나는 냉동실의 음식을 몇 번이나 녹였다 얼렸다 하고 이틀 후면 삶을 생닭을 굳이 냉동실에 통째로 얼리시는 걸 이해하지 못해서 어머님의 주방에는 웬만하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랬다간 내가 잔소리를 할 것 같아서이다. 그건 수년 간의 결혼생활 동안 얻은 일종의 룰 같은 것이다. 서로의 영역과 생활방식에 최대한 간섭하지 않는 것. 그건 물론 어머님도 마찬가지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단둘이 여행 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식사 후 시청사를 구경했다. 시청사는 꼭 대성당 같았다. 높은 천장의 널찍한 로비와 고풍스러운 내부. 1892년 공사를 시작해 1905년 완공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시계탑은 시내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하지만 올라가보지는 않았다. 고풍스러운 건물 안에서 사진을 후다닥 찍고 광장을 구경했다.
광장은 시청사 건물보다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일회용 카메라에 빠져 있어서 구석구석 사진을 찍고 싶었던 나는 어머님 독사진을 빠르게 찍어드린 후 주변은 얼른 돌아보고 오겠다고 했다.
길 건너편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집합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서 사진을 찍었다.
왜인지 외국에 나가면 이런 지저분한 것도 멋스럽게 보인다.
헐레벌떡 광장으로 돌아왔더니 어머님이 누군가와 아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아, 여기는 서초 사는 분. 여기는 우리 며느리.
어, 안녕하세요. 여기서 아시는 분 만나신 거예요? 신기하다.
아니 오늘 처음 만났어~
네?
알고보니 어머님과 아주 즐겁게 대화를 하시던 분은 다른 여행사의 패키지로 이곳을 찾은 관광객으로, 오늘 처음 본 사이였다. 알고보니 사는 동네도 비슷하고 나이대도 비슷해서 마치 오랜 친구처럼 얘기를 나누게 된 것. 어머님의 놀라운 친화력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이어 찾아간 곳은 시타델 부근. 게피온 분수대 광장에 내려 작은 인어상을 보는 일정이었다. 흐렸던 하늘이 어느 새 맑게 개어 새파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게피온 분수대는 1908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덴마크 선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게피온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신화에 따르면 스웨덴 왕이 질랜드 섬(코펜하겐이 위치한 곳)을 경작할 수 있도록 여신 게피온에게 부탁했는데, 여신은 그녀의 네 아들을 황소로 변하게 해 땅을 파서 스웨덴과 덴마크 핀 섬 사이를 흐르는 바다에 던져 질랜드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게피온 분수에 조각된 여신은 황소 4마리를 힘차게 몰고 가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분수대를 지나 모두가 가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랑겔리니의 해안 바위에 설치된 작은 인어상이 등장한다.운하를 관통하는 페리를 타면서 이미 멀리서 봤지만, 이곳에 오면 가까이 인증샷을 찍을 수 있다. 1913년 조각가 에드바르드 에릭센이 제작한 이 동상은 칼스버스 회장의 의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코펜하겐이 낳은 작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는데, 과연 그 유명세만큼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이 카메라를 들고 모여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 만큼은 아니지만. 그 때는 정말 슈퍼스타의 기자회견장에 온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인어상을 보고 실망한다고 한다. 명성에 비해 크기가 너무 작아서 그렇단다. 내 경우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바닷가라 여기서도 거센 바람이 어찌할 수 없었다. 어머님은 몇 번이나 사진을 새로 찍어달라 하셨다. 내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져갔다. 이렇게 몹쓸 며느리가 되어간다.
그렇게 랑겔리니를 구경하고 크루즈에 탑승했다. 노르웨이로 가는 배다. 이렇게 커다란 크루즈를 타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어머님도 이렇게 큰 배는 처음이라며 들뜬 모습이셨다.
꼭 타이타닉 같다.
타이타닉은 침몰한 배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배가 아니던가. 어쩐지 소름이 쭉 끼쳤지만 하하 웃어 넘겼다. 근데 몇 번이나 그 얘기를 하시는 데 아무래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 타이타닉은 침몰했잖아요. 불길한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마침내 어머님은 더 이상 타이타닉 얘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좀 너무했나 싶었지만 배를 지키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정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둘째 날부터 몹쓸 며느리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