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모차르트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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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신동의 그림자, 그리고 계몽주의 시대의 음악가라는 직업
1762년, 세상에 기적을 보여주고자 했던 한 아버지와 두 아이가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뮌헨을 거쳐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으로 향하는 모차르트 일가의 여정은 단순한 가족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하프시코드에 능숙했던 누나 나네를의 재능도 훌륭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바로 동생 볼프강이었습니다. 입스에서 몰래 오르간을 연주해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을 매혹시키고, 린츠에서 팔피 백작을 열광시킨 이 소년의 명성은 빈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수도를 들썩이게 만들었습니다.
빈에서의 일화들은 마치 동화 같습니다. 쇤브룬 궁으로 초대를 받은 꼬마 볼프강은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무릎에 뛰어올라 키스를 퍼부었고, 천으로 건반을 가린 채 피아노를 연주하여 좌중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또한 궁전 바닥에서 넘어졌을 때 자신을 일으켜 준 한 소녀에게 "커서 당신과 결혼하겠다"라고 당돌하게 말하기도 했는데, 그 소녀가 훗날 프랑스의 왕비가 되는 마리 앙투아네트였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아이러니를 자아냅니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명성은 거품처럼 빠르게 꺼졌습니다. 무리한 일정으로 볼프강은 병석에 누웠고, 변덕스러운 빈의 청중들은 신동이라는 구경거리에 금방 싫증을 느꼈습니다. 결국 황후가 하사한 궁정복 두 벌만을 남긴 채 가족은 1763년 1월, 잘츠부르크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 시기 음악가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낭만적인 예술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7년 전쟁이 끝난 1763년, 아버지 레오폴트는 궁정 부악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정작 악장 자리는 요제프 하이든의 동생인 미하엘 하이든에게 돌아가 있었습니다. 당시 음악가는 일정한 보수 없이 군주의 관대함에 생계를 의존해야 하는 불안한 직업이었습니다. 귀족들이 대가로 주던 화려한 시계나 담배 상자는 당장 빵을 살 돈으로 바꾸기 어려운 애물단지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레오폴트는 3년이나 지속될 대순회여행을 계획하게 됩니다.
1763년 6월 시작된 대순회여행은 고난과 영광이 교차하는 드라마였습니다. 마차 바퀴 고장으로 바서부르크에 발이 묶였을 때, 볼프강은 배운 적도 없는 페달 오르간을 연주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습니다. 뮌헨의 막시밀리안 3세는 후한 사례비를 주었지만, 반대로 루트비히스부르크의 카를 뷔르템은 이탈리아 음악가만을 고집하며 문전박대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슈베친겐에서는 만하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기회를 얻었고, 프랑크푸르트에서는 훗날 대문호가 될 젊은 괴테가 '가발을 쓰고 긴 칼을 찬 꼬마' 볼프강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여행은 벨기에를 거쳐 파리로 이어졌습니다. 아헨에서 만난 프리드리히 대왕의 누이 아멜리아 공주는 돈 대신 키스만을 선물해 주었지만, 파리에는 든든한 조력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백과전서파의 친구이자 폰 그림 남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술을 통해 잘츠부르크의 남매를 파리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시켰습니다. 비록 베르사유 궁의 퐁파두르 부인은 냉담했을지라도, 1764년 새해 첫날 왕가의 연회에 초대받음으로써 모차르트는 유럽 음악계의 중심부에 그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이처럼 모차르트의 유년기는 천재성이라는 빛과 계몽주의 시대 예술가의 고단함이라는 그림자가 공존하는 시기였습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지역이 표시된 지도
당시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들과 비교한 타임라인
인물 및 세력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 서양 고전 음악을 대표하는 거장입니다. 글에 묘사된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명성을 떨쳤습니다. 짧은 생애 동안 교향곡, 오페라(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등), 협주곡 등 600여 곡의 작품을 남겼으며, 하이든, 베토벤과 함께 빈 고전파의 주축을 이룹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Maria Theresia)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오스트리아의 여대공입니다. 글에서는 어린 모차르트가 무릎에 뛰어오른 인물로 묘사됩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40년간 재위하며 오스트리아의 근대화를 이끌었고, 의무 교육 제도를 도입하는 등 계몽 전제 군주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오스트리아의 공주이자 훗날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가 되는 인물입니다. 글에서는 모차르트가 청혼한 소녀로 등장합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사치와 낭비의 상징으로 여겨져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비운의 왕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퐁파두르 부인 (Madame de Pompadour)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Mistress)이자 정치적 조언자였습니다. 글에서는 모차르트에게 냉담했던 인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당시 프랑스 예술과 문화를 후원한 막강한 권력자였습니다. 로코코 양식의 유행을 선도했으며 백과전서 편찬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요제프 하이든 (Joseph Haydn)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입니다. 글에서는 동생 미하엘 하이든과 함께 언급됩니다. 모차르트와는 서로 깊은 존경심을 가진 친구이자 음악적 동료였으며, 고전파 양식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기타 용어
7년 전쟁 (Seven Years' War)
1756년부터 1763년까지 유럽의 주요 열강들이 참여한 대규모 전쟁입니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대립을 중심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경쟁이 얽혀 있어, 윈스턴 처칠은 이를 제1차 세계 대전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로 프랑스는 북미 식민지를 잃었고, 영국이 해상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글에서는 이 전쟁이 끝난 직후 모차르트 가족이 여행을 떠났음을 언급합니다.
계몽주의 (Enlightenment)
17~18세기 유럽을 지배한 지적, 문화적 운동입니다. 글의 제목과 배경에 등장하며, 낡은 관습과 미신 타파, 이성(Reason)과 과학의 중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모차르트가 파리에서 만난 백과전서파들이 바로 이 계몽주의를 이끈 핵심 지식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