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스콧, 영웅이 된 패배자

by 리나


[피험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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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스콧, 영웅이 된 패배자


영국의 스콧은 남극 정복과 과학 탐사라는 낭만적인 명분을 가지고 대규모 원정대를 꾸렸습니다. 반면, 북극을 노리던 노르웨이의 아문센은 피어리의 북극 정복 소식에 목표를 비밀리에 남극으로 수정합니다. "남극으로 가겠다"는 아문센의 기습적인 전보는 스콧을 격분시켰고, 지구 최남단을 향한 숨 막히는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승패는 출발 전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스콧은 모터 썰매와 조랑말 등 복잡한 장비를 챙겼지만, 남극의 혹한을 견디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반면 아문센은 오직 속도와 생존에 집중했습니다. 개 썰매 전문가와 스키 챔피언으로 구성된 그의 팀은 100마리가 넘는 개들과 함께 거침없이 빙원을 돌파해 나갔습니다.


아문센의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크레바스의 위험을 뚫고 1911년 12월 14일, 그는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합니다. 철저한 프로였던 아문센은 3일간 태양 고도를 측정해 완벽한 증거를 남겼고, 경쟁자 스콧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남기는 여유를 보이며 전원 생존 귀환이라는 위업을 달성합니다.


한 달 늦게 도착한 스콧을 맞이한 건 펄럭이는 노르웨이 국기였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2등이라는 잔인한 현실 앞에 스콧은 무너졌습니다. 조랑말은 모두 죽고 대원들이 직접 썰매를 끌며 사투를 벌였지만, 그들에게 남은 건 지독한 패배감과 다시 돌아가야 할 1,100km의 멀고 험한 눈길뿐이었습니다.


귀환 길은 처절했습니다. 굶주림과 동상 속에 대원들은 하나둘 쓰러졌습니다. 오츠 대원은 동료들의 짐을 덜기 위해 "잠시 밖에 나갔다 오겠다"며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지만, 남은 대원들 역시 식량 저장고를 불과 18km 남겨두고 텐트 안에서 숨을 거둡니다. 훗날 발견된 그들의 일기는 인류 탐험사에서 가장 슬픈 기록이 되었습니다.




주요 용어 설명


스콧 (Robert F. Scott)

영국의 탐험가이자 해군 대령. 남극점 정복을 노렸으나 아문센에게 패배하고, 귀환 도중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실패는 철저하지 못한 준비 탓이었으나, 그의 일기와 죽음은 영웅적 비극으로 남아 영국인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아문센 (Roald Amundsen)

노르웨이의 탐험가로 인류 최초 남극점 정복자. 철저한 사전 조사, 개 썰매 운용, 스키 기술, 냉철한 판단력으로 탐험은 모험이 아니라 준비된 실행임을 증명했습니다. 전원 생존 귀환이라는 완벽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피어리 (Robert Peary)

미국의 탐험가로 인류 최초 북극점 도달을 주장한 인물. 그의 북극 정복 소식은 북극을 노리던 아문센이 목표를 남극으로 급선회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츠 (Lawrence Oates)

스콧 원정대의 일원. 귀환 중 심각한 동상으로 걷기 힘들어지자,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잠시 밖에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눈보라 속으로 걸어 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희생의 아이콘입니다.


크레바스 (Crevasse)

빙하가 갈라져 생긴 깊은 틈. 눈으로 덮여 있어(스노 브리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밟으면 수십 미터 아래로 추락하는 치명적인 함정입니다. 남극 탐험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자연지물 중 하나입니다.


남극점 (South Pole)

지구의 자전축이 남쪽 지표면과 만나는 지점(위도 90도). 모든 방향이 북쪽이 되는 기이한 공간이며, 아문센과 스콧이 목숨을 걸고 도달하고자 했던 지구 최남단의 좌표입니다.


태양 고도 측정법

GPS가 없던 시절, 육분의를 이용해 태양의 높이(고도)를 측정하여 위치를 파악한 방법. 남극점에서는 태양이 지지 않고 하루 종일 지평선과 거의 평행하게 돌기 때문에, 고도가 24시간 동안 일정하게 유지되는지를 확인하여 남극점임을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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