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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사색_02

02. 개념을 적용하여 문제를 푼다는 것

by 리나

나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 수학을 외워서 풀 수 밖에 없었다. 이건 공부를 조금 잘 한다고 소문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수학문제를 워낙 어렵게 내야 말이지.


그런데 그렇게 외워서 풀면 왜 안 되는 것일까. 그렇게 풀면 우리 내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지금부터 그 과정을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아래의 그림을 보도록 하자. 이 그림에서 <개념> 이라고 쓰여있는 투명한 원은 공부하는 학생의 머릿속 어딘가에 있을 개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교과서를 읽거나, 선생님에게 설명을 들으면, 누구나 이렇게 자기의 머릿속 안에 관련된 개념뭉치가 생길 것이다. 공부하는 학생의 이해력에 따라 이 원이 더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생긴다. 아무 것도 안 생긴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수학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어영역의 문제이니 책을 조금 더 열심히 읽도록 하자.


그리고 밑에 있는 작은 파란 원들은 이 개념을 갖고 앞으로 풀어야 할 각각의 문제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개념을 처음 공부했을 때 이 개념과 각각의 문제들은 서로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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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개념을 공부했으니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자.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토로하듯이, 개념 배우고 바로 문제에 적용시키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없을 거다. 조금 고민하다가 안 되면, 바로 모범답안을 참고하거나, 선생님에게 물어보거나, 뭐 인강을 들으면 되겠지. 그렇게 해서 문제들을 한시간 동안 열심히 풀었다고 하자. 이런 방법으로 많은 문제들을 풀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될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분홍색 선은 각각의 문제의 풀이에 대한 학생들의 기억력을 의미한다. 이제야 비로소 개념과 문제들이 관계지어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분홍색 선이 각 문제와 개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고, 그 굵기도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미약하다는 부분이다. 결코 내가 손이 떨려서, 그림을 못 그려서 저 모양이 된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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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선은 각각의 문제의 해법에 대한 여러분의 미약한 기억력을 의미하는데, 여러분은 수학문제를 머리를 써서 스스로의 힘으로 푼 것이 아니라 많은 모범답안들을 외워왔기 때문에, 문제와 개념을 연결하는 분홍색 선은 그 굵기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이 아주 미약합니다.


앞에서도 얘기한 바와 같이 수학을 바탕부터 쌓아오지 않고 처음 공부할 때에는 이렇게 문제에 대한 유형별 해법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정해진 시간에 더 많은 문제를 경험할 수 있고, 중학교 수준의 평범한 난이도라면 시간대비 효율이 매우 좋기 때문에 열심히만 따라간다면 공부 안 했던 아이들조차 기본 바탕이 좋으면 급격한 성적향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조차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러한 방법을 사용해서 단기간에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중학생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주입식 교육의 학원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중학교 수학은 문제 유형이 많지 않고, 문제의 수준도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이해를 하던 못 하던 간에,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노력만 있다면 수학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고등학교 수학부터이다. 고등학교 수학에서는 문제유형도 많을 뿐 아니라 문제의 난이도 또한 중학교와 비교할 수 없다. 개념에 대한 이해를 묻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묻는 문제들, 즉 특별한 발상이 요구되는 문제들은 풀이법을 찾는데 며칠 혹은 몇달이 걸릴 수도 있을 정도인데, 이러한 문제들을 딸랑 5분 고민해 보고 풀려고 한다는 건 글쎄, 조금 과한 욕심이 아닐까. 예전에 연재되었던 정글고라는 웹툰에 나오는 이사장님이 말씀하신 걸 인용해 보고자 한다.


천재, 물론 있죠. 하지만 넌 아니에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학문제를 푸는 과정은,


딸랑 5분 정도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안 되면 적당히 문제 틀려주고,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오답노트 좀 예쁘게 만들어서 문제를 외우는 것


이라서 문제인 거다. 이와 같은 방법을 계속 사용하게 된다면, 오답노트처럼 눈에 보이는 공부의 결과물 덕분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자기만족감은 충족될지언정, 결국 그 문제에 대한 해법들을 다 기억하지 못 하는 시기가 찾아오게 되니까. 위 그림에서 보자면, 각 문제들과 개념을 연결해 주는 분홍색 기억력이 점점 얇아져서 결국 끊어지게 되는 거다.


그렇게 되면 공부하는 사람은 다시,


또 오답노트를 찾아보고,
아 이거 예전에 풀어봤던 문제인데 왜 못 풀었을까.
정성이 부족한 거야. 다시 외우도록 하자.


라는 자기비하의 수준으로 흘러가게 된다. 아, 예전 고등학교 시절 쓰라린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


그런데 이 과정이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3년이 되면 공부하는 사람의 머릿속의 개념은 점점 작아져서 결국 아주 눈꼽만큼 남아 사라지고, 각 문제들에 대한 해법만 남아있게 된다. 해법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어디냐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설사 자기가 엄청나게 수학을 많이 공부해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나오는 족족 다 외웠다 할지라도 수학문제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가 나오면 끊임없이 외워야 한다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 이걸 겪어본 사람은 그렇게 쉽게 얘기하지 못 한다. 내가 고등학교 때 해봐서 안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뭐, 답은 뻔하다.


공부한 개념을 어떻게든 문제에 적용한다.


이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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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으로 표시된 문제를 보니 그나마 만만해서 개념을 적용해서 풀려고 노력했는데, 하다보니까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려서 1시간 걸려서 겨우 풀었다고 치자. 뭐 못 풀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얼래? 친구들은 1시간에 20~30문제를 풀었고, 나는 1시간 동안 1문제도 제대로 못 풀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니까, 개념을 문제에 적용해서 고민 많이 해서 푸는 방법이 정말 비효율적으로 보이긴 한다.


다른 애들은 20문제 풀 때 겨우 난 한 문제 밖에 못 풀다니 난 정말 수학에 재능이 없나봐


라고 자괴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은 이 한문제를 푼 사람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념이라는 것의 속성은 문제에 적용시키려고 하다보면, 그 문제의 풀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개념이라고 하는 원 자체가 커지게 되니까 나중에 비슷한 유형들은 그냥 하나처럼 보이게 된다.


기억력으로 문제의 해법을 외우려고 하다보면, 개념을 쓸 일이 없어서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그에 대한 연결고리에 대한 기억조차 사라지는 것에 비해, 개념이라는 원 자체가 커지면 비슷한 유형의 많은 문제들이 더 커진 원에 포함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 푼 것은 한문제 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같은 개념을 묻는 다양한 변형문제들을 더 쉽게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설명해 주고 잊어버리라고 말하는 편이다. 그리고 오답노트는 커녕 필기도 하지 말라고 한다. 누군가의 방법을 따라하거나 외우려고 하면, 스스로 생각을 안 하는 버릇을 들이게 되니까. 문제를 틀렸을 때 풀이를 보고 문제를 분석하는 것도 유효한 공부방법의 한가지이긴 한데, 그 방법이 수학에서는 독과 같다.


왜냐하면 답지의 풀이를 아무리 분석해 봐야, 그 풀이를 정리한 사람의 최초 사고과정은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풀이는 문제를 완전히 풀고 깔끔하게 정리한 마지막 사고과정이지, 문제를 처음 볼 때의 최초의 사고과정이 아니다. 그래서 그렇게 공부한 사람들은 시험을 볼 때,


어, 이거 풀었던 문제인데,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


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문제를 외우더라도 최초의 사고과정이 있어야 마지막 사고과정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인데, 처음에 어떻게 했는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마지막만 알고 있으면, 실제로 문제를 풀 때 써먹을 수 없다. 항상 나중에 답을 보고,


아 맞다 이렇게 풀었지.


하고 뒷북만 치게 된다.


물론 개념을 적용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다보면 초기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래도 되나 하고 걱정할 수 있겠지만, 이것도 자꾸 하다보면 풀이를 기억 안 하려고 해도 문제의 유형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외워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문제를 읽으면서 대충 문제의 유형이 분석되고, 풀이방법도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온다. 그래서 나중에는 계산도 안 하고 눈으로만 훑고 지나가게 될 정도로 빨라지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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