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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Oct 08. 2022

"아니, 그 나이 먹고 무슨 할로윈이냐"

노는 것이 어려운 어른들은 어디서 태어났을까


"아니, 그 나이 먹고 무슨 할로윈이냐?"


미국인 남편을 둔 덕분에 나는 거의 10년째 할로윈을 특별 명절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 연애 기간 포함하면 거의 9년을 꼬박, 10월은 주황색 펌킨이 떠오르는 달이 된 것이다.


재작년 만든 펌킨


빈이는 (이하 남편 가명) 손으로 셀 수 있는 명절 중에서도 할로윈을 가장 좋아한다. 10월 초부터 할로윈 영화를 찾아보고, 그 분위기를 가져와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에 심어 넣는다.


30대 중반의, 웃을 때는 사람 좋은 주름이 얼굴에 새겨지는 그이지만, 아직도 어린아이의 분위기와 표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나는 안다.


지난 추석 가족들이 모였을 때, 빈은 어김없이 이번 연도에는 어떠한 코스튬을 할 것인지 5살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으로 나의 부모님에게 설명했다. 한국말이 서툴러 3살 같기도 하고, 즐거워 설명하는 모습이 7살 같기도 해서 좋게 봐주어서 거의 5살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이를 하나 키우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빠는 어김없이 "아니, 그 나이 먹고 무슨 할로윈이냐"라고 반박했다. 다행히 빈은 알아듣지 못했고, 나는 "아빠! 나이 먹고도 이런 것을 즐겨야 하는 거야. 인생은 즐기라고 있는 거잖아!"라고 호기롭게 대꾸했다. 아빠는 내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으셨다. 그 얼굴에 문득 슬픔과 아쉬움이 섞여있는 듯했지만, 역시 내가 옳은 말을 했군!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흘려보냈다.


나는 올해 이집트 여신이 되어보기로 했다. 종종 친한 사람들에게 내 안에 이집트 여신의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고 큰소리 뻥뻥 쳤는데, 막상 옷을 빌리러 가는 날이 되니 괜히 마음이 울적해졌다. 코스튬을 빌리러 가는 날 당일, 옆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 빈을 슬쩍 보니, 5살 같이 들떠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밉게 느껴졌다.


'아니, 그 나이 먹고 무슨 할로윈이야. 철 좀 들어라...' 내 안에서 강하게 올라오는 그 말이 빈이에게 매서운 눈빛으로 나갔다.


빈은 그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You're so grumpy during the Halloween season every year. I don't understad. 왜 또 시작이야. 넌 항상 할로윈 때만 되면 그래."라고 툴툴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아빠에게 큰 소리 뻥뻥 쳤던 것과는 달리 나의 마음에서는 '그 나이 먹고 무슨 핼러윈이야. 철 좀 들어라' 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런데 또 '인생은 즐기라고 있는 거잖아' 하며 큰소리 뻥뻥 쳤던게 있으니 나에게 쪽팔려 무거운 발을 질질 끌고 할로윈 의상을 빌리는 곳으로 향했다. 자꾸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놓여있는 거울로 내 모습을 보니 체한 사람 처럼 얼굴빛이 회색이었다.


얼핏 옆에 있는 빈을 보았다. 엄마한테 그만 놀라고 구박받지만, 그럼에도 계속 노는 것이 좋으니까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입나 온 아이처럼 보였다. 괜히 그 모습을 보니 짠했다.


나는 나에게 반복해서 얘기했다. '놀아도 돼. 유치한 거 아니야'.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옷 대신에 꽤나 마음에 드는 액세서리들을 빌려 할로윈 전에 찾으러 오겠다고 하고 이름을 적고 나왔다.






매일 아침 7시경, 부엌에서는 갓 지은 밥 냄새와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때로는 고소한 감자볶음 향이 났고, 때로는 시원한 김칫국 향이 났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깨어나 졸린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화장실에 들어가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감으면서 생각했다. 아, 또 지겨운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그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머리를 감고 수건을 대충 두른 채 화장실에서 나오면 식탁에는 갓 지은 따뜻한 밥과 정갈한 국과 반찬이 놓여있었다. 아직 졸린 눈으로 국을 한 스푼 떠서 입에 넣으면, 방금 전까지 살기 싫고 지겹다는 마음은 어디 가고 온몸을 가득 데우는 집 밥이 그렇게나 맛있을 수 없었다. 마치 밥이 '너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란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빠와 나는 별말 없이 수저를 들고 밥을 먹었다. 고요한 공간에 그릇 부딪히는 소리, 아빠가 식사를 하며 신문을 펼치는 소리, 따뜻한 된장찌개의 냄새들이 섞여 한곳에 어우러졌다. 엄마는 밥을 먹지 않고 그 모습을 앉아서 지켜보며 우리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그 말은 마치 갓 지은 따뜻한 밥 같았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 무표정으로 어- 아니- 소리만 반복했고, 밥을 빠르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엄마도 우리와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이를 닦고 교복을 챙겨 입고 현관문을 나서면 초겨울 바람같이 차가운 우울감이 몸을 감쌌다. 엘리베이터에 앞에 함께 서있는 아빠에게서는 매번 향긋하고도 차가운 스킨로션 냄새가 났다. 엄마는 꼭 앞치마 차림을 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우리랑 함께 섰다. 마치 차가운 공기를 데워주는 난로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난로 옆에 언제까지나 서있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 죽고 싶어. 사는 게 재미없어"라고 부모님 앞에서 얘기했다. 그 말을 하고 후회했다. 어디서 그런 말을 하냐고 굉장히 혼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오히려 아빠는 나를 힐끗 쳐다보면서 웃었다. 그 웃음에는 어떤 공격성도 없었다. 그 웃음은 마치 "너도 그렇게 느끼니? 하지만 버텨보자. 딸아" 하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 나는 아빠의 출근길에 아빠 차를 얻어타고 학교로 갔다. 아빠와 나는 거의 아무 말 없이 10분 정도를 달렸다. 항상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아빠에게는 언제나 좋은 스킨 향이 났다. 그에게 내가 하는 거의 유일한 두 마디는 "다녀오세요. 다녀오겠습니다"였다.


학교는 7시 30분인가에 시작했고 나는 항상 피곤하고 졸렸다. 나의 오전은 좋아하는 수업 시간만 빼면 거의 꾸벅꾸벅 졸면서 흘러갔고, 내가 졸 때 옆을 쳐다보면 몇몇 친구들을 빼고는 거의 다 억지로 깨있는 졸린 병아리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점심시간 되기 30분 전부터 우리 모두는 살아났다. 그 1시간은 나에게 유일하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우르르 모여 밥을 먹고 교내 안을 몇 번이고 돌며 산책했다. 가끔씩 옆 전문고를 쳐다보며, 공부 못하는 애들이라며 무시하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멋진 친구들이다. 어릴 적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한다는 것이)


학교는 야자 때문에 밤 10시까지 지속됐다. 야자 시간은 가끔씩 재미있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좋아하는 음악을 주야장천 들으면서 의자에 앉아있었다. 종이에 깨작깨작 어떤 문장들을 쓰기도 했다.


가끔씩 선생님들은 야자 시간 전에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영상을 큰 TV로 틀어주셨고 우리는 거기에 열광했다. 그러다가 원더걸스가 나올 때는 충격적이었다. 우리보다 어린애가 있어! 중학생이래! 호들갑을 떨다가도 저렇게 어린애도 잘 살아가는 데 나는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면 뭔가 되겠지, 하면서 또 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물론 매일이 죽을만큼 우울하지는 않았다. 가끔씩은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몰래 야자를 째기도 하고, 굴러가는 낙엽에 배를 잡고 웃는 하루들도 있었다. 한 학년 위의 눈이 크고 훤칠한 오빠를 복도에서 마주치면 설레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말없이 손톱만 뜯으며 흘러가는 시계를 바라보는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그리고 나의 친구들은 그냥 이것이 우리가 응당 버텨내야만 하는 삶인 줄만 알았다.






"그 나이 먹고 무슨 할로윈이냐" 하는 말은 내 안에서 들려왔다.


가끔씩 빈을 보면 너무 얄밉고 한심하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아니, 저렇게 즐겁게 산다고? 대체 미국은 어떤 나라인 거냐?


종종 빈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으면 마치 하이틴 영화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아, 정말 미국은 그렇게나 자유로운 나라이구나! 물론 빈도 그 와중에 자신만의 아픔과 불만들이 있다.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은,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은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하지 않았다며, 자신은 한참을 방황하고 나서야 자기가 결정해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그리고 그 대학 생활은 정말 재미있었다고 1시간이고 떠든다.


나는 가끔씩 빈에게 물어본다 "인간은 왜 태어난 거 같아?" 그때마다 빈은 이렇게 대답한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 그리고 이 사람은 항상 그것을 몸소 실천한다. 일을 열심히 하고 나면 꼭 자신에게 보상의 시간을 준다. 가끔씩 보면 일을 별로 한 거 같지 않은데도 한 여름 태양빛을 쬐는 베짱이처럼 휴식하는 데에 죄책감이 별로 없다.


그런 모습을 보며 참 한심하구나- 속으로 무시하는 날이 지나가면, 빈은 나를 놀랠 만한 엄청난 일들을 벌인다. 굉장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던가, 자기가 목표한 바는 꼭 이룬다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그런 것들을 보면 "야, 너나 잘해. 이 놀 줄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아"라고 나는 나를 공격한다.



이번 할로윈 때는 조금 더 신경을 써보기로 한다. 놀고 싶은데, 놀면 안 된다고 하는 나의 무자비한 마음을 따르는 것 대신에, 이번엔 정말로 제대로 놀아보기로 나에게 얘기한다. 오늘은 저녁 수업을 가기 전에 가끔 들르던 빈티지 숍에 가서 여신 느낌의 하얀색 드레스를 마음껏 보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리다. 내 눈앞에 고등학생 시절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향기롭고 차가운 스킨 냄새가 나는 아빠에게 다가간다. 그는 아주 멀끔히 차려 입었지만, 어딘가 생기가 없다. 나는 그의 옆에 서서 아주 작게 속삭인다.


"아빠. 아빠의 삶을 버텨주어서 고마워요."


무거웠던 어깨의 짐을 조금씩 내려놓는 듯 그의 굳어있던 몸과 얼굴이 약간 풀어진다.


나는 매일을 새벽같이 일어나 자신은 일찍 먹지도 않는 아침상을 차리는 엄마에게도 다가간다.


"엄마. 엄마의 삶을 버텨주어서 고마워요."


그녀의 걱정 서린 얼굴과 몸이 조금씩 녹아 소녀의 맑은 웃음을 띈다.


곧이어 이들의 얼굴이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모습으로,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청춘의 모습으로, 가족을 꾸려야하는 책임감에 짓눌린 모습으로, 편안한 노년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 모든 얼굴들을 거쳐 다시 인자한 중년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사랑하는 딸아. 그렇게 삶을 버텨내면서 살지 않아도 된단다. 즐겁게 살으렴"


아빠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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