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해외로

23살, 첫 혼자 해외여행

by 노마드

22.12.15: 종강, Day 0


원치 않게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된 미국에서의 첫 학기였다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며, 본디 가진 공부머리의 끝을 확인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어렴풋이 느꼈던 한계를 직접 마주했다.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3년 간의 고등학교 생활 동안 접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룸메 녀석이 지나가듯 던진 "그리 딱 앉아 노력하는 것도 재능이다."라는 말이었고, 비 내린 성적표를 덮어두었다가도 기어코 다시 한번 보고야 마는 학생처럼 노력에 대해 내가 가진 재능이 양적으로는 봐줄 만하지만 질적으로는 쓸데없는 수준이라는 점을 씁쓸히 확인하게 된 학기였다.




저 멀리 시골 촌자락은 아니더라도 교육의 중심에서는 분명 벗어나 있는 항구도시의 끝자락에서 중학교 때까지 열심히도 살았지만,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나는 저만치 뒤처져 있었다.


같은 경기를 뛰고 있다면 추월을 시도해 보겠지만, 이미 결승선을 통과해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 뒤에 처진 후발주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묵묵히 트랙을 도는 일뿐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음은 분명했으며, 다만 그 위치가,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이 불가피할 따름이었다.


내가 풀밭을 헤집으며 메뚜기를 잡으러 다닐 때, 해가 바다 너머로 지기까지 도서관에 박혀서 책을 읽을 때, 다른 친구들은 불철주야 학원에서 굴러다니고 있었을 것이고, 시간의 농도가 옅었던 것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그 누구에게도 돌릴 수 없었다.


너 정도면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그만하면 대단한 거다라는 말들은 쉽사리 위로가 되지 못했고, 만족하며 살라는 말에는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다. 모두가 만족했다면, 아니 안주했다면, 내 인생도 그만큼 편해지지 않았겠는가 하는 얄팍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내며, 나도 모르는 새에 패배주의에, 타성에 젖어갔다.


<오른쪽 끝에서 더벅머리를 하고 웃고 있다. 힘든 와중에도 즐겁긴 무지하게도 즐거웠다.>


옅었던 내 시간들의 대가는 만족스럽지 못한 대입 결과라는 이름의 현실로 돌아왔다. 어찌 됐든, 나는 다른 친구들이 둥근 트랙을 달리고 있을 때, 넘어지고 엎어지며, 때로는 뒤로 갔다가 허들에 치여 구르기도 하며, 살아남는 법을 체득하고 있었다.


그 친구들마저 경쟁사회에 종속돼 열심히 달음박질을 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은 나중의 일이었고, 고등학교 생활은 그저 물 안에서 발을 열심히 휘젓든 아니면 그냥 둥둥 떠다니든 백조는 백조라는 사실을 뇌리에 새겨 넣는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다.




졸업을 하고, 군대도 다녀오며, 하릴없이 2년을 보냈다. 술도 진탕 마시고, 여행도 다니고, 야구, 테니스도 배우고, 이것저것 깔짝대며 보낸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로 대학에 내던져졌다. 아무 준비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나만 아귀지옥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묘한 동질감에 기대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인간관계를 단절한 채, 종일 도서관에서 사는 생활은 외향인에게 더없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다.


버티는 것이 특기인지라 어떻게 버텨내기는 했으나 처음 과제를 해치울 때 느꼈던 성취감은 온 데 간데없고, 분루를 삼키며 지겹게도 강의실, 기숙사, 자습실, 식당만을 왕복하는, 끔찍한 인생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직업적 성공과 경력에 대한 확신과는 별개로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했다. 다만, 동시에 깨달은 것은 역설적으로 어떻게 한 학기씩 잘라서 버티면 4년이 가기는 가겠다는 점이었다.


만성적인 두피염이 두피를 벌겋게 물들이고 모발마저 갉아먹기 시작하자, 어디든 떠나야겠다는 희망 섞인 열망은 구체적인 목표가 되어 나타났고, 그렇게 10월부터 티켓을 끊어대고 숙소를 예약했다. 시간은 정말 빨리 갔고, 몇 프로 했다 혹은 얼마 남았다는 말이 자주 들려오기 시작할 때쯤, 나는 손에 비행기 티켓을 쥐고 있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 가장 낮은 성적을 받은 화학. 내 길이 아니라는 것 하나만은 확실히 배웠다.>


학업에 대한 후회가 전혀 남지 않은 학기였다. 더했으면 분명 무너졌을 것이기에, 번아웃이 오기 직전까지 자신을 굴려댔다. 학업에 열중하니, 연애, 축제, 파티 등 대학 생활의 묘미는 뒷전은커녕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학업을 제외하고는 후회만 남은 학기기도 했다.


실제로 경험한 미국 물가는 살인적으로 비쌌고, 살기 위해 학식을 먹으며, 내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 미식을 완전히 포기했다. 매일 짬을 내 간간이 해오던 독서가 아니었으면, 무너져도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의무를 내던진 채 비행기에 오를 날이 찾아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