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으로 차별하는 공항 Wifi

푸에르토리코 SJU 공항에서

by 노마드

22.12.16: Day 1,


새벽임에도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공부만 하던 지난 한 학기보다 공항을 돌아다니던 두어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더 인간에 대해 많이 배웠다.


마스크에 코를 풀고 캐리어를 걷어차며 지나가던 인도인, 집에 돌아갈 생각에 들뜬 유학생들,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가며 대화하는 서반아 부부, 군인에게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며 감사를 표하는 미국인들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비행기가 15분 후 출발할 예정임에도 버거를 꼭 챙겨가려던 아저씨까지.


좁았던 학교를 벗어나니 참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었다.


<사진에는 없지만 땅콩향이 배어있는 감자튀김도 일품이다>


나 또한 파이브 가이즈 버거를 손에 쥐고 탑승을 기다렸다. 불맛을 입힌 패티가 육즙과 더불어 입에 녹아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 손으로 쥐고 먹기에는, 입과 손 주변에 소스를 묻히지 않고 먹기에는 어렵다는 점에서 버거 종주국의 기본에 충실한 햄버거였다.


감겨오는 눈을 비비며, 기다리기를 40분, 게이트가 열렸고, 비행기에 탔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나 쉬운 일인데, 이런저런 핑계들로 자신을 옭아맸던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아쉬움도 잠시, 100일 만에 맛보는 여유에 뒤로 몸을 뉘었다. 적게는 5개 많게는 15개의 To Do로 나를 괴롭혔던 Canvas 앱은 바탕화면에서 지워버렸고, 비행기 티켓과 숙소 예약 확인증만 가득한 메일함 역시 만족스러웠다.


혼자 떠나는 첫 해외여행.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여행이었기에 더 특별했을지도 모른다. 왁자지껄하게 귓가를 때려대는 스페인어 대화들이 어느새 멎어갔고, 나 또한 간만의 안온함에 스르르 눈을 감았다.




운해를 바라보며 책을 읽다 일어나 보니, 푸에르토리코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밀림 지대, 납딱 엎드린 주거 지역들과 하얀 해변을 따라 늘어선 마천루들, 뚝뚝 끊겨있는 땅들을 잇는 가는 교각들, 그리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바다까지. 생경했다.


그렇게 비행기는 산후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게이트가 양쪽으로 일렬로 도열한 작은 공항이었다. 과연 나는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여러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무의미한 질문들이었다.


<여행에 익숙해지는 것은 비행기 연착에 익숙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1시간 정도면 용서해 줄 필요도 없다. 받아들일 뿐>


인터넷에 따르면, 분명 연결돼야 할 데이터가 당최 연결되지를 않았다. 법적으로 미국령이기에 안심하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내 실수였다.


현실이 치고 들어오니 이상만큼 무용한 것도 없었고, 분명 같은 미국인데도 신호만 잡힐 뿐 터지지 않는 데이터에 속이 타들어 갔다. 이미 비행기가 연착돼 하루의 계획이 어느 정도 꼬여버린 상황에서 발만 동동 구를 뿐,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답답함에 이름을 한글로도 넣어보고 스페인어 성조도 찾아보고 별의별 짓을 다 했지만 No Internet Connection 표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뾰족한 수가 없어, 오프라인 지도 앱인 Maps.me를 열어 지도라도 확인할까 했지만, 멍청한 간밤의 나는 지도 다운로드를 깜빡한 모양이었고, 그렇다고 이미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 횅한 공항에 덩그러니 남겨져 스페인어로 질문을 던질 용기는 더더욱 없는 상황에서 시간만 흘러갔다.


다시금 천천히 에러 메시지를 읽었고, 구글 번역기 어플을 사용해 보니 성을 잘못 입력했다는 투의 해석이 나왔다. LIM이 잘못됐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성 칸에 이름도 넣어보고, 이메일도 넣어봤지만, 휴대폰 내의 붉은 주의 글씨는 사라지지를 않았다.




같은 짓을 하릴없이 반복하기를 몇 분, 실수로 성을 LLIM으로 입력한 채 로그인을 진행했다.


잠시 간의 기다림 후 우측 상단에 와이파이 연결 표시가 떴다 .


그렇다. 간판만 국제공항인 산후안 루이스 마린 국제공항은 세 글자로 이뤄진 성을 취급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분명 모든 정보가 정확하게 입력되었음에도 로그인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너무나도 단순한 원인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당연히 정보만 입력하면 되겠거니 예단한 내 판단력과 사람의 성이라면 본디 네 글자 이상임은 돼야 한다고 믿어버린 관계자의 방만함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래도 속도 빠른 공짜 Wifi가 터지는 게 어딘가 하고 자신을 위로하며, 이번에는 잊지 않고 지도를 다운로드한 후 짐을 챙겼다.


공항을 나서자 후끈한 열기가 나를 감싸왔고, 이름에 충실하게 공항 안에서만 터지는 Airport Wifi로 인해 우버 대신 택시를 잡고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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