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호스텔 투숙기

독방, 음주 운전, Piña colada

by 노마드

22.12.17: Day 2,


첫 여행의 첫 밤을 위해 내가 선택한 방은 4층짜리 호스텔의 옥탑방이었다.


기온이 30도에 육박해 푹푹 찌는 날씨에, 발 하나 제대로 딛기 힘든 작고 미끄러운 나선형 계단을 캐리어를 이고 올라가자니 욕이 저절로 나왔다.


2박에 150달러. 혼자 해외로 떠나 맞이하는 첫 밤을 도미토리 베드에서 보낼 용기도, 설령 용기가 있다 한들, 불안해하실 부모님을 달랠 마땅한 핑곗거리가 없었던 내가 치른 방삯이었다.


막상 체크인 후 확인해 보니 옥상은 공용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 Nomada Urban Beach Hostel >


바다로부터 어정쩡한 위치에 있어 해변이 보이지도, 그렇다고 띄엄띄엄 건물들이 늘어선 반대편에 뭐가 있지도 않았지만, 산장에서 볼 법한 목재 테이블 두 개, 저만치 떨어진 소파 몇 개와 재떨이가 놓인 콘크리트 테이블, 그리고 광이 나는 높은 의자들로 꾸며진 공용 공간은 정겨웠다.


1층에는 성인 네댓은 충분히 올라가 쉴 수 있을 크기의 대형 해먹이 걸려 있었고 , 벽면의 액자에는 각국의 화폐가 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곳곳에 화분이 놓여있었고, 바람이 불 때면 풍경소리가 아득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흠이었다.


둘째 날, 일어나 샤워를 하며 물의 차가움에 한 번 깨고, 그 후 샤워헤드 위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도마뱀의 존재에 두 번 깼다.


< 식겁했다 >


샤워 후 다시금 방에 돌아가 9시 30분에 예정된 투어를 기다렸다. 학교에서의 일과가 이미 몸에 새겨진 듯, 여행 내내 늦어도 7시 30분이면 눈이 떠졌다.


다시 침대에 몸을 파묻은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군인 수십 명이 군홧발로 밟아대고 있기라도 한 듯 천장이 울려댔고, 문을 열고 나가보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엘 운케 삼림 투어가 당일 오전에 취소되었다. 60달러를 아꼈으나 경험 측면에서 보자면 너무나도 아까운 시간이었다. 비는 세차게도 내렸고, 잠시 아침을 먹으러 나갔을 뿐,오전 시간 동안 나는 해먹에 늘어져 휴대폰을 봤다.




오후 2시쯤 되니 비가 오기라도 했냐는 듯 해가 떴고, 망연자실한 마음을 애써 달랜 채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야구장이 있다는 것 말고는 특이할 것이 없는 공원이었고, 그 옆의 해변 역시 야자수 몇 그루가 서 있는 평범한 카리브해의 해변이었다.


굳이 꼽자면 공간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운 한국과 다르게 해변과 마주 보고 있는 주거 구역 전체가 펜스로 둘러져 있어 외부 차량의 접근을 불허한다는 점 정도가 달랐다.


해변 입구를 찾아 펜스를 따라 걸으며, 매우 위험해 보이는 장면도 하나 목격했다.


반대편 도로에서 아저씨 셋이 ATV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분명 운전석에 앉은 아저씨가 한 손에 맥주병을 쥐고 운전대 비스무리한 것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운전석이 한국과 달리 우측에 있나 싶어 왼쪽을 바라봤지만,그 아저씨 역시 맥주병을 손에 들고 있었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음주운전을 하는 문화가 무척이나 공포스럽게 다가왔고, 대번에 펜스의 목적을 이해하게 된 것은 덤이었다.


호스텔에 돌아가 물어보니, 단속 자체가 거의 전무한 까닭에 특히 밤 시간대에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하기에 보행자가 조심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두어 시간 정도 걷다 숙소로 돌아왔고, 우산을 챙긴 후 털레털레 식당으로 향했다.


새우볶음밥에 피나 콜라다 한 잔을 걸치니 4만 원이 계산서에 찍혔다. 가격은 비쌌지만, 원조는 다른 것인지 맛은 나무랄 데 없었다.


<볶음밥, 피나 콜라다, 바 느낌의 식당, 입맛을 다시던 고양이>


먼저 파인애플 특유의 신맛이 치고 들어와 혀와 입천장 곳곳을 시원하게 찔러댔고 이내 그 달짝지근함이 자극받은 부위들을 보듬으며 입안을 감싸왔다. 그 후 코코넛의 풍미가 부드럽게 여백을 채웠으며, 아쉬움을 남긴 채 순식간에 목을 타고 내려갔다.


그간 내가 가졌던 피나 콜라다에 대한 인상: 당도는 애매하거나 과도하고, 꼭 다 마셨다 싶을 즈음에 파인애플의 씁쓸한 맛과 산업용 알코올이 엉성하게 치고 들어오며, 파인애플, 코코넛, 알코올이 뒤섞이지 못한 채 따로 노는 칵테일 아닌 칵테일. 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사알짝 알딸딸한 상태로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간만의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실질적인 여행의 첫날이 허무하게 가버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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