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가 나를 불렀다 9화

정보라

by 노마드

이제 '누칼협*'은 필요악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질주하다 저성장이라는 암초에 부딪히자 국가적 경쟁의 칼날이 개인을 겨누기 시작했다. 파이가 영원히 커질 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그러나, 국가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어 파이가 줄어든다면, 경쟁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영역으로 확대된다.


최고와 최악의 국가는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사회다. 바꿀 필요가 없거나 더 이상 바꿀 수 없거나. 국가가 뒤로 처지는 상황에 현생에만 집중해도 버거운 판에, 1000만 전과자와 부동시라 안목 따윈 없는 사람들이 윗대가리를 자처하고 있다. 분류하는 기준마다 분열이고, 언론 역시 누리끼리해 매일 분열의 언어를 내뱉는다.


OECD 최고 수준의 대학 교육 이수율에도 불구하고 청년 실업률이 높은 현실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 앞에서 개인의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어 인력을 갈아 넣어 성장했던 이 나라는, 성장의 동력이 멈추자, 역설적으로 인적 자원의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한 명이라도 들러붙고 물어뜯어야, 한 명이라도 기를 쓰고 떨궈내야 내가 올라갈 자리가 비지 않겠는가. 올라갈 정당성이 마련되지 않겠는가.


구조적 문제 앞에 선 개인의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체념적 수용. 혹은 운이 좋아도 도피뿐. '누칼협'이라는 냉소적 외침은 이제 개인의 이기심과 방어기제를 넘어, 저성장 시대의 불안감과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창조한 괴물 같은 생존전략으로 거듭났다. 누칼협이라며, '노오력'을 안 했다며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들조차, 실은 가장 불안한 존재들이다. 노력이 아니라 시대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모든 것이 그렇게 될 예정이었음을, 그 외에는 다른 길 하나 없었음을 확인해, '운명'적으로 가혹한 결과에 내몰린 개인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역경과 고난에 일어서지만 희망의 부재에 완전히 무너진다. 더 이상 칠전팔기 끝에 넘어져 재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육전오기, 오전사기를 넘어 사전삼기로 나아간다.


소인배적 국가의 관점에서, 학교 영어 교육에서 회화와 작문을 소홀히 하는 게 참으로 영리한 선택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인재를 가둬야,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고 안에서 갈려나갈 것 아닌가. 사회는 여럿이지만 개인은 하나라, 운 좋게 영어를 배운 '절이 싫었던 중'은 한국을 떠났다. 그럼에도 가끔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는 고향의 소식을 접할 때면, 코로나 시대의 장애인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문한다. 정말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분명 예전의 사다리는 이보다 튼튼했고 간격이 촘촘했는데. 먼저 올라가 따스한 손 내미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발판 사이의 간격은 멀어져만 간다. 이제 그 누구도 칼을 들고 협박하지 않는다. 사회가 칼이다. 떨어지는 칼. 사다리 오를 손 피칠갑하지 않고서야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는 칼.


정답은 없어도 오답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오답들을 쳐내야 한다. 가장 낮을 곳을 직시하며, 가장 높은 곳을 지향해야 한다. 갈등의 씨앗인 분열의 언어에 속지 말아야 한다. 비록 어려울지언정. 그럴 여유 따윈 없더라도.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는 뜻의 신조어. 개인의 실패를 사회적 구조가 아닌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 부족 등으로 꼽는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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