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내
한때는 여행길 위에서 글을 쓰겠다며 노트북과 키보드를 챙겨 떠나던 시절이 있었다. 써지지도 않는 글을 붙잡고 호스텔 구석에 박혀, 수십 분이고 하얀 화면 위의 단어들을 새기고 지우기를 반복하던 시간들. 결국 남은 건 후회뿐. 그 시간에 술이라도 한 번 더 마시러 나갔으면, 일찍 잠에 들어 다음 날 일출이라도 한 번 더 보러 나갔으면 어땠을까.
이제는 더 이상 노트북과 키보드를 챙기지 않는다. 문득 스치는 단상이 있다면 휴대폰 메모장에 짧게 갈무리해 둘 뿐, 여행의 모든 순간에 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여정을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가 오면, 책상에 앉아 펜대를 잡고 길었던 여행을 마무리한다. 가라앉은 감정이 떠오르고, 떠오른 추억이 글에 앉으면 그제야 나는 길었던 나의 여행에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