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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Oct 09. 2020

지루한 연휴를 기분 좋게 보내는 방법

이불 빨래를 하자!

한글날 연휴다. 회사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오랜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창밖에선 연휴와 상관없이 공사장 소음이 울려댔다. 짜증이 났다. 창문을 닫고 멍하니 앉았다. 어제인지 그제인지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린 뒤 건조기에 널어두었던 이불은 여전히 이상한 냄새가 났다. 짜증이 났다.

점심시간 즈음이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살폈다. 계란과 햄이 있었다. 즉석밥을 데웠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과 잘게 자른 햄을 볶았다. 데워진 밥을 넣었다. 거기에 버터를 더했다. 팬에서 볼로 옮긴 볶음밥에 갈릭 마요네즈를 더했다. 반찬은 양념된 깻잎. 깻잎 한 장에 밥 한 숟가락을 얹어 먹었다. 그러는 동안에 다른 이불을 세탁기에 돌렸다.

밥을 다 먹었다. 세탁기가 도는 동안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독서실을 매일같이 가겠노라 생각한 것이 떠올랐다. 귀찮았다. 씻지도 않았고, 설거지도 해야 했고, 나가려면 옷도 챙겨 입어야 했다. 이런 측면에선 역시 회사에 나가는 것이 좋다. 씻고, 옷도 입고 억지로라도 나가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씻지도 않았고, 설거지도 해야 했고, 나가려면 옷도 챙겨 입어야 했다. 옆에 보이는 건조기 위의 이불은 꿉꿉한 기운이 났다. 짜증이 났다. 그 길로 다른 것들은 내팽개치고 이불을 챙겼다. 옥상으로 향했다.

날씨는 맑았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다. 챙긴 이불을 옥상 한편에 놓인 빨랫줄에 널었다. 이 집에 이사 온 뒤 처음으로 이용해 보는 옥상 건조대였다. 건조대라고 말하기엔 누군가가 밧줄을 어설프게 묶어 놓은 정도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잠시 앉아 바람을 누렸다. 기분이 나아졌다.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두어 번 내쉬었다. 그 기분으로 방으로 돌아와 분리수거 거리를 챙겨서 분리수거하였다.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였다. 새롭게 돌린 세탁기도 세탁을 마쳤다는 알림음을 울렸다. 새롭게 돌린 이불도 옥상으로 올렸다.

일광건조. 생각해보니 가장 이불 빨래를 잘했던 때는 군대에 있을 때였다. 가장 규칙적으로 생활하던 때였다. 환기를 잘하지 않는 동기 무리에 살면서 내 이불이라도 잘 씻어내자 생각했던 모양이다. 매주 이불 빨래를 했었다. 세탁기를 돌린 뒤 낮 시간의 햇볕으로 이불을 말린다. 선선한 바람도 한몫을 더한다. 새로운 이불을 깔면 기분 좋은 감촉이 몸을 감싼다. 딱히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알뜰해진 기분이 든다.


할 일 없는 연휴, 실은 할 일은 많지만 하지 않는 지루한 연휴다. 그 연휴를 기분 좋게 보내는 방법을 찾았다 이불 빨래다. 이불 빨래를 하는 것이다. 옥상 위 빨랫줄에 탁.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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