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고시를 경험한 사람이 되었다.
시험은 평이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만만했을테지.
생각보다 시험은 단순했다. 반타작을 목표로 시험장을 향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약술, 단답형으로 나온 시사상식 문제를 어거지로라도 채웠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평소에 신문을 읽으며 투자를 위한 산업 공부 따위를 할 때, 조금 더 디테일하게 공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일 디테일하게 투자 공부를 했다면 확실하게 채울 수 있었던 문제가 3-4문제는 더 되었을 것.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정도의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얇게 떠오르는 기억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ex.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이 '파운드리'라는 것은 기억했지만 공정 개발을 하는 기업이 '팹리스'라는 것은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평소에 하던 투자 공부의 덕으로 편안하게 답안을 채웠다. 나에게 평이했다면 다른 이들에게는 만만했을 터. 작문 시험의 답안이 채점관들에게 눈에 들어오길.
작문 시험의 제시어는 단순했다. 그러나 조건이 까다로웠다. '( )이/가 사라졌다.'로 첫 문장을 시작하는 대신, 시대상을 반영하라는 문제였다. 10분, 20분 가량을 고민했을까. '거리'로 괄호를 채우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80분이라는 제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마냥 기다릴 수 없었고, 쓰면서 다음 문단을 생각해야 했다. 가볍게 개요를 짜긴 했으나 개요를 따르기엔 내 문단의 주장들은 단순하고, 빈약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다. 분량은 채워야 했다. 빈약한 문단이나마 이어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1장 반 남짓을 채웠다. 내 작문에는 등장인물이 1명 나오는데, 그의 이름을 '태호'라고 하였다. 시사상식 문제를 풀며 무한도전 예시를 들었기에 떠오른 이름이었다. 시험장을 나서며 '철민'으로 할 걸 하는 생각을 하였다. SBS 라디오의 메인 PD 중 한 명이 '류철민' PD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배는 떠났다.
시험이 끝났다. 평이했고, 그래서 남들에겐 만만했을 시험이다. 시험지가 내 손을 떠났고, 그저 운이 좋길 바랐 뿐이다. 합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오히려 더 안정적인 직장에 남아서 다른 기회를 엿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라디오PD'라는 단순히 '회사원'이 되어버린 지금의 직업 보다는 확실한 어떤 목표를 향해 시험을 쳐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SBS 라디오PD로 합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라디오PD'의 역할이 될 무엇인가를 해볼 용기랄까, 자신감이랄까, 흥미랄까. 그런게 더 생겼음에 의미를 부여한다.
만일 운이 좋아 필기에 합격한다면 다음 전형들은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안정적인 직장'을 잃을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2번의 전형을 더 치루고(이때는 휴가를 써야한다) 2달 간의 인턴을 해야 한다. 인턴을 할 때는 지금 회사를 떠나야 한다. 이때의 문제는 인턴이 정규직 전환을 100% 장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의 회사를 퇴사하고, SBS의 인턴은 되었으나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백수가 되는 셈이다. 그 리스크를 나는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 아직은 잘 모른다. 필기시험의 결과가 나오면 그때 많은 고민이 휘몰아 칠 것이다. 아직은 실감나지 않는 그 소용돌이. 일단, 오늘은 그 고민을 미루자. 언론고시를 경험한 나에게 잘했다 이야기하며 언제나 그렇듯 이 시간이면 몰려오는 잠을 먼저 청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