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을 활용한 현대전을 소재로 한 명품 전쟁 영화
※ 영화 리뷰에 결말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그거 비슷한...영화 리뷰 여기저기에 스포일러 같은 걸 조금 뿌려 두었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뒤로가기를 눌러 주세요.
※ 제가 영화 리뷰를 써 보는게 처음이라
다른 고급진 리뷰처럼 사진을 이쁘게 꾸미고 말을 넣고..그런게 많이 없습니다.
다른 분들은 다 어디서 가져오시는 걸까요...
※ 사진은 네이버 영화 포토 및 구글 검색을 통해 얻은 이미지를 활용했습니다.
문제가 된다면 말씀 주시는 즉시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 항상 컴퓨터로 글을 써서 PC 최적화입니다. 모바일로 보니 영 좋지 못하네요.
개빈 후드 감독님의 2015년 작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
국내에서는 2016년 7월에 개봉했다.
영화 리뷰를 하기 전에 우선, 제목을 참 잘 지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론의 하부에 위치한 팬틸트 방식의 고해상도 줌 카메라는
마치 사람이 눈을 돌리듯이 조종사가 보고자 하는 곳으로 카메라 렌즈를 돌려
초고도에서 적을 내려다보고 상황을 관측하기 때문이다.
제목을 듣자마자 그런 모습이 머리 속에 대강 그려졌다.
내 경우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리뷰를 찾아보고 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냥 줄거리, 출연 배우만 훑어보고 가는 편인데 보니까
'더 퀸'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역을 맡았던 헬렌 미렌님,
그리고 '스네이프 교수님'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앨런 릭먼님이 나오신단다.
예매할 때 좌석이 텅텅 비어 있어서 살짝 불안했지만
오늘이 평일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다른 영화를 고르지 않았고
여왕님과 교수님이 나온다기에 일단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영국에 있는 작전 지휘관
미국에 있는 드론 조종사
케냐에 있는 테러리스트
그리고 상공을 나는 감시자들,
시공을 초월하는 드론 전쟁의 실체
라고 위에 올려 둔 영화 포스터에 적혀 있다.
그러고보니 포스터 안 챙겨 왔네...
엄...그러니까 이건 전쟁 영화다.
하지만 전쟁 영화라고 해서 국지전과 전면전을 기반으로 한,
피와 살점, 욕설과 탄피가 여기저기 난무하고
비명소리가 가득한 그런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일련의 작전 수행 과정들은 조용하게 진행된다.
작전 지휘자와 수행자, 결정권자들은 무선 통신과 채팅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초소형 드론을 조종하는 케냐 첩보원은
겉보기에는 그냥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초소형 드론의 눈으로 테러리스트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이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드론은 작은 새 모양, 딱정벌레 모양의 소형&초소형 드론부터
'리퍼'라고 불리는 헬파이어 미사일 2기를 탑재한 중형 드론도 등장한다.
네이버 영화 란에도 나와있는 줄거리를 바탕으로 인물 구도를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1. 케냐에 은신중인 테러 조직의 핵심 인물 생포작전을 지휘하는 영국군
캐서린 파월 대령
2. 미 공군 드론 조종사 와츠 중위 & 군 짬밥 1개월차
(제가 잘못 본 걸 수도 있어요!)캐리 일병
3. 케냐인 첩보원 생존왕 자마 파라 & 케냐군
4. 파월 대령의 보고를 받는 영국군 벤슨 장군 & 각국 정치인들
5. 은신처 속 테러리스트들
6. 빵 파는 아이 '아리아'와 아리아의 가족(테러리스트 옆집에 삽니다ㅠㅠ)
파월 대령들의 기존 미션은 극단적 테러주의자들을 생포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들을 추적해 왔었고 이제 생포작전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다.
그러던 중 은신처로 잠입한 초소형 드론에 의해
자살폭탄테러를 준비하는 것이 포착되면서
생포작전은 급히 리퍼에 탑재된 헬파이어의 정밀타격을 통한
테러리스트 섬멸작전으로 변경된다.
하지만 관객의 눈에 비친 작전 변경 과정 및 승인 과정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타 국가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고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 또 문제고
이것저것 또 승인을 받아야 되는데 미리 승인이 되어있다고 말은 하는데
그래도 명색이 장관인 난데 그런 말을 처음 들어볼 뿐이고..
이것저것 군/정치/법/여론 등 고려할 게 많아지다 보니
각자의 의견이 대립해 결정은 지지부진해진다.
결정을 내려야 할 상급자는 또다른 상급자에게,
그 또다른 상급자는 또다른 상급자에게 보고하라고 하는 행태가 이어지며
관객을 점점 답답함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다들 한국 국회에서 의원체험 하고 가셨나봐요...9시뉴스 스타일이야...
오죽하면 내 앞자리에 나처럼 혼자 보러 왔던 여자는 그 장면에서
한숨을 쉬더라.(사실 나도 같이 쉬었다)
군대에서, 직장에서 흔히 듣는 '컨펌 받고 진행해야 됩니다.'를
작중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표현으로 수십 번씩 말하는 바람에
지난날 군대에서, 직장에서 겪었던 수많은 답답함이 오버랩되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던 것 같다.
컨펌을 받는다고 바로 일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이것마저 한국의 직장과 같습니다!소오름)
컨펌된 사항에 대해 실행을 망설이거나 반박하는 등
갈등 구조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짬찌 캐리 일병을 데리고 무심한 척 임무수행을 하는 것 처럼 보이나
빵 파는 무고한 소녀가 휘말린다고, 많은 사람 살리자고 아이를 죽일 수 없다며
작전 수행을 재고해 달라는 와츠 중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희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아이가 중상을 입을 확률을 몇 번이고 다시 계산하게 하고 미사일 발사에
대한 법적 문제는 없는지 등 끊임없이 신중해지고자 하는 파월 대령,
테러 이즈 아웃!!이라는 명확한 입장을 시종일관 강력하게 어필하는 미국,
(참고로 이 영화 영국영화입니다ㅋㅋㅋ야이....왜 미국은 무조건 쳐! 입장이고
왜 자기들은 생명 생각하면서 갈등하는 입장인데ㅋㅋㅋㅋㅋㅋㅋ뭐 말하자면
미국은...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겠죠.)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었을 때 본인의 정치 생명과 여론을 걱정해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외무장관 조라 모르몬트 및 각국의 정치인들
온 몸으로 '나는 군인이다'를 표현하며 작전 강행을 원하는 벤슨 장군,
(심각한 분위기 속에 나는 문득 '의사 결정이 늦는군 외무장관, 10점 감점이다.' 같은
이상한 상상을 혼자 했다.)
그런 벤슨 장군에게 맞서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안젤라'라는 인물까지...
간단히 '그냥 쏴 vs 그래도 쏘면 안돼' 로 요약할 수 있겠지.
하지만 각자의 입장이 모두 잘못되지도 않았으며
저 모두가 나름의 정의(?)를 기반으로 하는 주장들이다.
영화를 보면 이게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자, 테러리스트들이 은신처에 모였다.
이 테러리스트들은 기존에 각각 위험 분자 2위, 4위, 5위로 분류된 인물들이다.
미국과 영국, 케냐 정부가 주시하던 테러리스트들이고
이번에 생포를 위해서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얘들이 은신처 안에서 뭘 하나 봤더니 아니 글쎄 테러 준비를 하고 있잖아?!
쏴야된다 말아야된다 논쟁하는 와중에 화면이 나갔네?
초소형 드론이라 배터리도 초소형이군요!ㅠㅠ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교전 규칙이고 뭐고
내가 장교 생활을 하며 배웠긴 했지만
정작 뒷감당이 무서워 써먹어본 적은 거의 없는,
선조치 후보고 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빨리 얘네 잡아 족쳐야 하지 않습니까!
하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실은 내가 그랬다.
좀 전에 이야기했던 구도 항목으로 다시 돌아가서 빵 파는 아이,
'아리아'에 주목해 보자.
얘 그냥 생 민간인이다.
드론이 비행긴지 미네랄이랑 가스 캐는
50원짜리 저그 유닛인지도 들어본 적 없으며
공부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아버지한테 물어도 보고
평소에는 어머니가 구운 빵을 집 근처에서 파는,
훌라후프를 좀 많이 좋아하는 순진한 어린 소녀다.
하필 아리아가 앉아서 빵을 팔고 있는 길거리 바로 뒷편에 있는 집에서
테러리스트들이 테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게 이 영화에서 여러 사람들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관객들은 아마 각자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이들 중 한 사람에게 감정 이입을 하며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강한 흡입력을 가지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도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일을
소재로 다뤘기 때문이다.
'미군 드론 임무', '미군 드론 테러'라는 검색어로 찾아봤더니
작게는 미군 드론이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부터
크게는 테러 주모자 섬멸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까지
많은 뉴스들이 나왔다.
영화 리뷰를 하다 말고 잠깐 다른 얘기 좀 하겠다.
나는 2011년 3월에 ROTC 장교로 임관하여 2013년 6월에 전역했다.
처음엔 포병 관측장교로 있다가 대대에서 여단으로 잠시 파견을 다녀온 후
남은 1년 5개월 가량은 곡사포대 전포대장으로서 복무 후 전역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말할 사항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대충 넘기도록 하겠다.
여단에 잠시 파견을 갔을 때 임무 수행 차 갔었던 정보대대에서
영화 속 드론과 비슷하게 생긴 UAV 무인항공기라는 걸 처음 봤었다.
그때는 지금은 흔해진 '드론'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고 그렇게 부르지도 않았다.
드론이라고 하면 다들 스타크래프트 1에서
저그 종족의 자원을 캐는 일꾼 유닛을 떠올렸다. 나도 그랬고.
운용되는 UAV를 처음 본 나는 솔직히 실망했다.
영화는 영화고 실제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이는 북한군의 모습은 그리 선명하지 않았고
UAV는 툭하면 정비, 기상 악화로 인한 비행 취소가 되어
UAV 때문에 거기까지 갔던 나는 이따금씩 할 일이 없어져 붕 뜨곤 했었다.
그게 불과 약 5년 전의 일인데
그 때 내가 생각하던 전쟁이란 건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정보전을 기반으로 한 현대전에 비하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같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14/0200000000AKR20160714122800077.HTML?input=1195m
위 링크는 드론 임무수행과 관련된, 불과 7일 전 뉴스다.
내가 별 쓸데도 없는 내 군 생활 얘기를 왜 했냐면,
세상이 이렇게나 빨리 변해가고 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면서 알게된 정보를 통해
새삼 느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그랬다.
영화를 보는 도중 마이클 샌델 교수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에서 정의에 관한 여러 딜레마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한 쪽의 말만 들어보면 '네 말이 옳구나'지만
다른 쪽의 정의도 들어보면 '듣고보니 네 말도 옳구나!'라는 이야기다.
옳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예전보다 고려해야 될 부분이 너무나도 많아진 현대 사회에서
뭣이 중헌지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몇 번이고 곱씹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답을 구하지 못할 경우도 있겠으나 분명 의미 있는 고민이 될 것이다.
결말이 어떻다더라 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아마 이랬었어야 했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 등
사람마다 각자의 의견이 있을 줄로 안다.
다만 그건 영화 외적 이야기고
영화 내에서 그들이 한 선택이 결국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고 믿는다.
결과는...음...^^직접 보시는걸로...
누적관객수와 무관하게 영화 정보만 보고서
영화를 선택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2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맘스터치 싸이버거와 케이준 양념감자 중 사이즈를
나도 모르는 새에 해치우고 영화에 집중했으니까.
남들은 어떻게 봤나 하고 다른 리뷰를 보니 1년에 한번씩은
꼭 걸작인 전쟁 영화가 나온다는 말을 하신 분이 있었다.
그분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맞는 것 같아서
주말에 시간이 나면 그 리뷰에서 추천해 준 전쟁 영화들을 좀 볼까 한다.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오락 영화의 홍수 속에서
간만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줄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영화를 발견해 뿌듯하다.
우리 동네에서는 오늘이 마지막 상영일이었던 것 같은데
늦지 않게 봐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상영되었던 조용한 전쟁을 다룬 이 영화를 조용히 추천하며
이만 리뷰를 마친다.
P.S 엔딩 크레딧 전에 앨런 릭먼을 추모하는 자막이 잠시 나온다.
이제는 작품 속에서만 살아 숨쉬고 있는 그분은
일면식도 없는 내가 추모한다고 해서 별로 신경쓰실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아무쪼록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