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말하지 못했던 그 말, 그토록 오랜 세월이 가도 가슴에 남아"
이번 1월 개봉해 화제가 되었던 '너의 이름은' 이후 간만에 애니메이션을 보러 영화관을 다시 찾았다. 사실 어썸한 크리스 프랫 형님이 나오는 가.오.갤 2를 볼까 했었지만 역시 내 취향은 약간 이런 쪽인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정말 관련 내용을 쏙 빼고 써볼까 했는데 역시나 무리인 것 같다.
뽀로로도 아니고 노는 게 제일 좋은 천방지축 초등학생 이시다 쇼야(이리노 미유 분)는 어느 날 전학 온 니시미야 쇼코(하야미 사오리 분)라는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지루한 표정으로 샤프심을 가지고 놀던 쇼야가 잠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로 쇼코는 예뻤지만 독특한 첫인사로 인해 반 아이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된다.
청각장애를 가진 쇼코는 필담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을 시도하는데, 처음에 호의&호기심으로 접근한 아이들은 생전 처음 보는 '다른' 모습에 점차 쇼코를 피하게 되고, 곁에 항상 붙어서 쇼코를 도와주던 동급생 사하라 나오코(이시카와 유이 분)마저 주변의 비아냥댐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치듯 전학을 가게 된다. 쇼코를 향한 은근한, 혹은 직접적인 따돌림은 계속되었고 그 중심에는 쇼야가 있었다.
괴롭힘은 갈수록 심해져 결국 쇼코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전학을 택하게 되고 가장 앞에 나서서 쇼코를 괴롭혔던 쇼야는 그 원인으로 지목받아 왕따 가해자가 되어 책임 전가를 받게 되고 모두에게 버림받는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도와주지 않았다.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시마다(코지마 사치코&니시타니 료 분)마저 돌아서버리고, 오히려 중학교에 가서도 쇼야가 '왕따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퍼트려 쇼야를 외톨이로 만든다. 그 후로 6년, 삶의 한계를 느낀 쇼야는 자살을 결심하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쇼코를 찾아가게 되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작화가 막 정말 사진 같다거나 아주 훌륭한 편은 아니지만, 인물의 세세한 표정&몸짓 묘사, 주요 장면의 연출력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뭣보다 덕질(?)할 요소가 군데군데 많은 것도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쇼코의 친구 역인 사하라 미요코 역할을 맡은 이시카와 유이는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서 여주인공 미카사 역할을 맡기도 했고, 나온 지 얼마 안 된 화제의 게임 니어 오토마타의 여성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2B'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엉덩이!'를 외치며 시선을 한 곳에 둔 채 열심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친구의 곁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잘 모르... 잘 듣지 않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헤벌쭉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던 내 친구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
감독을 맡은 야마다 나오코 역시 '케이온!'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쪽 분야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분이지만 아직 내 주변에서는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이고, 제작사인 교토 애니메이션(통칭 쿄애니) 역시 '풀메탈패닉 후못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로 시작해 방금 말한 '케이온!', '울려라! 유포니엄' 까지 제작한 나름 잔뼈가 굵은 애니메이션 제작사이지만 역시 주변에서는 잘 모르는 눈치인 것 같으므로 나는 떠드는 것을 그만두고 재빨리 다시 일반인 코스프레를 시전했다.
어쨌든, 개봉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큰 흥행몰이를 하기는 힘들 것 같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늘 하던 대로 몇 가지 포인트를 짚으며 감상평을 써볼까 한다.
겉으로 슬쩍 보면 쇼야가 쇼코에게 뒤늦은 속죄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내용이지만, 아직 완전하지 못한 청소년들의 성장 / 얼핏 가벼워 보이는 친구 나가츠카(오노 켄쇼 분)를 통해 듣는 '친구' 에 대한 정의 /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 / 우리 사회의 왕따 문제 / 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는 우리들의 시선 등 다양한 관점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
부모님&선생님을 제외한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아직 어린이거나 청소년인 점은 가끔 100고구마 정도의 답답함을 안겨주지만 어쩌겠는가, 얘네 아직 다 어린애들인데.
이런 류의 애니메이션은 대체로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이 어린 편인데, 그 편이 아무래도 등장인물들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면서 메시지를 전달하기 좀 더 수월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여담으로, 영화에서는 알 수 없는 등장인물 각자의 이야기는 원작인 만화책에서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원작을 보고 나니 왜 그런 비판이 생겼는지 이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니 국민 여러분은 안심하고 영화를 즐겨 주시길.
앞서 말한 것처럼 원작 만화책에 비해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다고는 하지만, 처음에 같은 평을 들었던 해리 포터 시리즈가 나중에는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을 생각해보면 굳이 원작 반영이 다 안 되었다며 불편함을 어필하기보단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보며 나오지 않은 부분에 대한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는 건 어떨까. 다들 원작 만화를 보고서 보는 건 아니니 말이다.
왕따 가해자로서 손가락질을 받게 되며 쇼야의 삶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친다. 어린 시절에 했던 잘못에 사로잡혀 활발했던 예전과는 달리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뭐라 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거나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게 된다. 그것은 극 중에서 주변 인물들의 얼굴에 X 표시가 붙는 것으로 묘사된다. 무서웠을 것이다. 간접적 가해자&방관자였던 그들이 모두 한순간에 적대 세력으로 돌아선다는 것은.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한 나날들을 보내던 쇼야는 사과를 하기 위해 수화를 배운 후 쇼코를 찾아가지만 본래 계획과는 달리 자꾸 다른 말만 하게 된다. 더군다나 왕따 가해자로서 손가락질을 받으며 지낸 쇼야이기에 다소 주눅 들어있는 모습이 관객 입장에서는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쇼코와의 대화도 그렇다. '아으아으아아' 라는 식으로 어렴풋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할 때도 있고 비중은 적지만 필담을 할 때도 있으며 수화를 할 때도 있는데, 이 중 수화의 경우 따로 자막이 나오지 않는다. 대체로 쇼코의 수화를 본 다른 등장인물들이 해당 내용을 되묻는 식으로 해서 관객에게 의미를 전달하곤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경우 오로지 그들의 성격, 과거 있었던 일들과 표정, 몸짓만으로 무슨 말인지 유추해야 한다. 답답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 부분이 관객들을 쇼야나 다른 등장인물들의 시선에 동화되게끔 만들어 쇼코만의 목소리의 형태에, 극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 장면에서는 자연스럽게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에 집중하게 되는데, 도입부에 얘기했던 뛰어난 연출력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소리, 명암, 등장인물들의 시선 등 그 작은 비언어적 표현들을 보고서 우리가 각자 하는 그 여러 가지 추측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겠지만 각자 떠올려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뭐 사실 그 상상이 맞고 틀리는 게 별로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나중에 내용이 전개되며 자연스레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이런 류의 성장물을 볼 때면 종종 느끼는 감정이다. 발단~전개 과정에서 어수룩하고 미완성이었던 그들이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완전히 성장하거나, 그렇게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몇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들을 보고 뿌듯해하는 내 자신을 보면 이런 게 아빠 마음인 건가 싶기도 하다. 물론 진짜와 감히 비교할 순 없겠지만.
극 중 쇼코의 어머니와 동생 유즈류(유우키 아오이 분), 이른바 왕따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인 쇼야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게 그렇게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야?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의 경우 특히 받아들이기가 힘들 테지만... 어쩌겠는가. 삶의 모습에 정답은 없는 것을. 처음에 의구심이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나중에는 속 편하게 '자기들이 괜찮으니까 그랬겠지' 하고 생각하며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흐뭇하게 지켜봤던 것 같다.
포스터만 보고서 이걸 어린 남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쯤으로 알고서 영화관에 앉았다간 아마 큰 화를 입게 될 것이야...
사실 리뷰 쓰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았다.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으니까 쓰면서 이 얘기도 하고 싶고 저 얘기도 하고 싶었는데, 그건 앞으로 영화를 관람할 분들께 맡겨두려고 한다. 이야기에 극단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어서 중간중간 '음? 저걸 저렇게?'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털어버리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등장인물들이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작은 것이 아니었고, 현실은 오히려 만화와 비슷하거나 더 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뭣보다 중요한 메시지는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없으니 변화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 이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포스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을 전하는 목소리의 형태는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다. 모든 것이 서툴렀고 어렸던 그때 저질렀던 실수로 인해 한동안 주눅 들어 있기도 했으며 별 것 아닌 오해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고 그 자리에 머물러 주저앉아있을 수는 없다. 일어나야 한다. 뒤를 돌아볼 때도 있겠지만 앞을 봐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더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잘못된 것을 되돌려 다시 함께 웃을 수 있을 테니까.
투표도 하고 영화도 본 날, 집에 돌아와서 오랜만에 방 청소도 하고 책꽂이 위의 먼지 쌓인 졸업앨범도 물티슈로 닦다가 자연스럽게 앨범을 펼쳐 보게 되었다. 그 속에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고 두려운 것도 많았지만 작은 것에도 행복해했던 기억 속 저 편의 누군가가 짝꿍이었던 아이와 나란히 손을 잡고 서서 웃고 있었다. 별 이유 없이 진짜 징하게 괴롭혔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그 친구가 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
괴롭혔던 기억 속 초등학교 동창생도, 이 노래를 부른 분도 지금은 만날 수 없어서 문득 먹먹한 기분이지만... 어쨌든 영화 속 주인공들의 상황과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내용의 노래 하나를 소개하며 늘 하던 대로 글을 마칠까 한다. 아는 분들은 짐작하셨겠지만 이번 리뷰의 제목은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 라는 노래에서 따 왔다. 이번에 소개할 노래와는 별개로, 방황하던 시절의 주인공 쇼야를 함께 생각하며 이 노래를 들어보면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도 날 것 같다.
큰 눈, 오똑한 코,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에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정말 예뻤던 내 기억 속 그때의 너는 지금 잘 있니.
난 아주 어릴 때 우리반에서
앞에서 첫번째 줄에 앉았고
여자 애들에게도 전혀 인기가 없었어
성격도 소심한 축에 들었고
유난히 몸이 약해 자주 아팠어
한마디로 말해 별 볼일 없었단 얘기지
그러던 어느 날 양호실에서
배탈이 나 드러누운 그 앨 보았고
내 생애 처음으로 사랑에 빠져버렸어
얼마 후 소풍날 하필 그 애가
우리 반 아이들 몽땅 모인 앞에서
나의 촌스러운 바지를 놀려대는 거야
당황해 버린 난 얼굴이 빨개져 숨이 막혀와
어쩔 줄 몰라서 우왕좌왕 하다가
그만 손을 들어 그 애 뺨을 때렸지
I am sorry, I am so sorry
정말 미안해 나의 천사여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도망가던 길은 멀기만 했지
I am sorry, I am so sorry
결국 말하지 못했던 그 말
그토록 오랜 세월이 가도 가슴에 남아
우연히 들러 본 동창회에서
숙녀가 된 그 애를 다시 만났고
우린 진짜로 사랑에 빠졌으면 좋았겠지만
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얘기지
졸업 후 다시는 그 앨 못 봤어
결국 삶이란 영화가 아니란 얘기야
정말 아주 우연히 어느 하늘 아래 길을 걷다가
스치듯 지나쳐 갔을 수도 있겠지
너는 내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까
I am sorry, I am so sorry
정말 미안해 나의 천사여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도망가던 길은 멀기만 했지
I am sorry, I am so sorry
결국 말하지 못했던 그 말
그토록 오랜 세월이 가도 가슴에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