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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Mar 31. 2017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예전엔 삶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아."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너의 이름은'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이름을 제대로 알린 신카이 마코토의 1999년 작품이자 그의 데뷔작이다. 여자 목소리와 음악을 제외한 모든 것을 혼자 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회사에 다니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5분 남짓한 흑백 애니메이션이지만 처음 본 후, 다시 본 후, 세 번째 본 후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이 들어서 이 기분이 사라질 때까지 몇 번이고 돌려 봤다. 이번 이야기는 그에 대한 내 감상문 같은 거다.


https://youtu.be/_4Xwci4CUCs


1. 시선


  이야기를 진행하는 시점은 중요하다. 다들 나름 주관적으로 영화나 소설 같은 걸 본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시점이냐에 따라 의식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을 어쩔 수 없음에는 동의할 것이다.


  여담으로, 신카이 마코토는 이때도 흑백 애니메이션치고 놀라운 작화 수준을 보여주지만, 고양이만큼은 유독 단순하고 귀엽게 그렸다.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는 관찰자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표현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고양이 '쵸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녀'에게 주워진 고양이 '쵸비'는 봄-여름-가을-겨울을 그녀와 함께 철저히 고양이답게 보낸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추측 같은 건 배제하고 '그녀'의 모습과 행동만을 묘사하여 '그녀''나'의 일상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몰입감을 높인다.



2. 계절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을 진행하는 것은 딱히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것은 아니고 여기저기서 쓰이고 있는 이야기 전개 방법이다. 그만큼 보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익숙하고(쉽고) 계절이 주는 상징성도 명확하다. 이 짧은 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하려는 이야기를 명확하게 표현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다.



[봄]

  봄비가 내리는 어느 날, 왜인지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고 방구석에서 쭈그려 앉아 있는 '그녀'는 불현듯 자리를 박차고 집을 나간다. 비가 와서 봄을 타는 건지, 정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그 전화가 받기 싫은 전화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고양이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날, 나간 곳 어딘가에서 '그녀'는 박스 속에 버려져 있는 '나'를 만난다. 세상 속에서 조용히 계속 열을 빼앗기고 있던 둘의 첫 만남이다. '내'가 정말 박스 속에 넣어져 버려진 건지, 돌아다니다가 박스가 보여서 그냥 그곳에 들어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어머니처럼 상냥하고 연인처럼 아름다운 '그녀'를 금방 좋아하게 된다.


[여름]

  출근하며 문을 닫는 장면과 함께 자연스럽게 여름으로 장면 전환이 된다. 여름을 알리는 벌레 소리와 꽃, 풀들을 배경으로 그녀의 출근 이후 밖을 돌아다니는 고양이의 일상이 그려진다. 일련의 과정들이 세세하게 설명되지 않는 건 이거 단편 애니메이션이라서 이미 그녀와 사는 '나'의 삶이 익숙하고 평온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평온하고 밝은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여자친구 '미미'가 등장한다.



  '미미'는 작고, 귀엽고, 응석을 부리는 솜씨가 좋지만 '나''그녀'가 있기 때문에 결혼하자고 하는 '미미'와 진지하게 만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해도 거짓말하지 말라고, 데려와 보라고 말하는 '미미'의 질투가 귀엽다.


다음에 또 놀러 와

정말로 와야 해

꼭 와야만 해

꼭꼭 와야만 해


라는 미미의 마지막 말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나의 첫 여름은 지나고, 점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게 됐다.'라는 대사로 미미와 헤어졌음을, 그리고 앞으로 극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암시한다.


[가을]

  빠르게 울다가 점점 천천히 우는 쓰르라미 울음소리가 - 지난 리뷰에서 매미라고 했는데 친구가 그거 매미 아니고 쓰르라미라고 해서 알게 됐습니다 -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속에서 들리면 나는 일단 불안해진다. 그렇게 쓰르라미가 울 때면, 혹은 울고 난 후에는 꼭 무슨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데뷔작에도 역시나 그 흔적이 묻어 있다. 활기찼던 분위기는 어둡게 바뀌고, '나' '그녀'가 긴 통화 후 한참이나 우는 것을 바라본다. 우는 이유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아서 우리는 그녀에게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겼다거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거나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의자와 전화기도 넘어뜨리며 한참을 울던 그녀가 말한다.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 도와줘...


[겨울]

  겨울은 종착지이자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단 몇 분이 지났지만, 영화 속에서는 사계절이 지났고 그동안 '나' '그녀'는 많은 일을 겪었을 것이다.


  드라마 최종회에서 '5년 후'라고 자막이 뜨는 것처럼 갑작스럽게 장면 전환이 된다. 장면 전이라고 봤자 여전히 배경은 '그녀'의 집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넘어뜨렸던 의자와 전화기가 다시 세워져 있고 - 뭐... 나중에 정신 차리고 치웠겠지만, 굳이 그곳을 비춰 준 것은 '그녀'가 슬픔을 극복했다는 의미로도 해석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곧이어 계절이 바뀌어 지금은 겨울이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며 바뀐 것들에 대한 '나'의 관찰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초반의 봄 장면과 묘하게 겹치며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표현한다.



  가장 큰 차이는 그들이 느끼는 온도일 것이다. 세상 속에서 조용히 계속 열을 빼앗기고 있었던 둘이지만 정작 가장 추운 겨울이 되었음에도 그러한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 하나 더, 눈이 모든 소리를 삼켜버리지만 그녀가 타고 있는 전차의 소리만은 쫑긋하게 서 있는 나의 귀에 닿는다는 표현까지. 이것은 그동안 '나' '그녀'가 더 친밀해졌음을 알려준다.



3. 소리


  '나'는 크게 들뜨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 극 중 내레이션을 담당한다. 차분한 내레이션을 들으며 우리도 어느새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녀''고양이'를 지켜보게 된다. 귀에 가깝게 대고 들리는, 혹은 저만치서 들려오는 것 같은 각종 효과음과 분위기에 맞는 서정적인 음악 덕분에 몰입이 잘 되어서 그런지 5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4. 마무리


  사실 짧은 애니메이션이니만큼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오히려 짧기에 더 전달이 잘 되고 여운도 길게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리뷰도 짧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녀

이 세상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마지막 말이 깊게 와 닿고 여운도 길게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말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웃다가도 울고, 화내다가도 즐거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시각각 삶의 모습은 바뀌고 그것은 대체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든 거잖아.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건, '그녀'에게 '고양이'가, '고양이'에게 '그녀'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누군가가 지금은 없더라도, 언젠가는 분명 찾아올 것이다. 그 누군가와 함께라면 이 세상은 그래도 제법 살 만할 것이다. 아니, 살 만한 걸 떠나서 행복할 것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천국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런 날이 온다면 천국이라는 건 우리가 사는 바로 이곳이 아닐까.


https://youtu.be/P-WP6POdTgY


[Belinda Carlisle - Heaven Is A Place On Earth]


그거 알아?

천국은 바로 이 땅 위에 있대

천국에서는 사랑이 제일이라고 해

우린 여기에 천국을 만들 거야

천국은 바로 여기 있다는 걸


밤이 되면 나는 네가 오길 기다려

생기 넘치는 이 세상은

거리의 아이들 소리로 가득하지


네가 방 안으로 들어올 때

넌 나를 부둥켜안고, 움직이기 시작해

우리는 저 하늘의 별을 따라 돌고

너는 나를 사랑의 파도 속으로 이끌어


그거 알아?

천국은 바로 이 땅 위에 있다는 걸

천국에서는 사랑이 제일이라고 해

우린 여기에 천국을 만들 거야

천국은 바로 여기 있다는 걸


내가 외로울 때

나는 너에게 손을 뻗고

너는 나를 집으로 데려다줘

내가 바닷가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는 네 목소리를 들었고

네 목소리가 나를 이끌어 줬어


이런 세상에서 우린 이제

삶의 기적이 뭔지 알아

예전엔 삶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아


그거 알아?

천국은 바로 이 땅 위에 있다는 걸

천국에서는 사랑이 제일이라고 해

우린 여기에 천국을 만들 거야

천국은 바로 여기 있다는 걸



Ooh baby, do you know what that's wo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They say in heaven love comes first
We'll make heaven a place on ea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When the night falls down, I wait for you and you come around
And the world's alive with the sound of kids on the street outside
When you walk into the room
You pull me close and we start to move
And we're spinning with the stars above
And you lift me up in a wave of love


Ooh baby, do you know what that's wo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They say in heaven love comes first
We'll make heaven a place on ea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When I feel alone

I reach for you
And you bring me home
When I'm lost at sea
I hear your voice
And it carries me


In this world we're just beginning
To understand the miracle of living
Baby I was afraid before
But I'm not afraid anymore


Ooh baby, do you know what that's worth
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They say in heaven love comes first
We'll make heaven a place on ea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Belinda Carlisle 'Heaven On Earth' (198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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