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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Jan 18. 2017

컨택트 - 어떻게 하면 이곳에 남길 수 있는지...

"네 삶 너머에도 너의 이야기는 존재해."

  여친도 없는데 맨날 사랑 얘기 이별 얘기나 쓰던 어느 날, 영화 리뷰도 괜찮겠다 해서 써보려고 했는데 덜컥 이직해버리는 바람에 지금까지 달랑 7개밖에 못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송하게도 브런치 무비데이 행사에 초대되어 오늘 영화 '컨택트'(영문명 Arrival)를 보고 왔다.

  가산에서 퇴근하고 잠실까지 부랴부랴 간 것도 힘들었고, 줄 설 때 앞 뒤로 다 커플이었는데 난 혼자 가서 시무룩했으며 본인 확인한다고 닉네임 말하라고 할 때 되게 부끄러웠지만 결론적으로 그런 점을 감수하고서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서 어떻게 글로 정리되지 않는... 많은 생각이 들었고 정식 개봉 후 내가 야근을 많이 하지 않는다면 지금 굳이 쓰지 않고 넘어가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도 써 볼 예정이다.


  프리즈너스(2013), 시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2015)로 대표되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2016년 작품이며 영화를 다 본 후 내용을 다시 곱씹어보고 싶다면 영화를 다시 보던가(...) 원작 소설인 테드 창'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소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안 찾아보고 갔기 때문에 회색 톤의 포스터와 그 속에서 기괴하게 떠있는 물체 - UFO로 추정되는 - 만 보고 처음에는 꿈도 희망도 없는 SF영화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리뷰를 쓰긴 써야 될 텐데 나 같은 게 감히 이 영화를 평할 자격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시놉시스라도 읽어보면 글 시작하는 데 도움이 좀 될까 하고 영화 정보를 찾아봤는데, 이게 참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12개의 쉘

의문의 신호, 18시간마다 열리는 문

15시간 내 그들이 온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 시놉시스를 좋게 말하자면 영화 내용을 잘 숨겼고, 나쁘게 하자면... 너무 내용을 숨겨버렸다. 스포일러 할 생각은 없으니 지금 내용이 이렇다 저렇다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초반부 줄거리는 이렇다.


  딸을 병으로 잃고 홀로 지내던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아담스)는 여느 때처럼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도중 TV로 전 세계에 동시에, 갑자기 나타난 12개의 거대한 쉘에 대한 뉴스를 보게 된다. 정부는 각 분야에 능통한 학자들을 쉘 근처로 모아 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며 언어학자인 루이스와 물리학자인 이안 도넬리(제레미 레너)도 그곳에 합류하게 된다.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존재와 조우하면서 루이스는 또 다른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저렇게 줄거리를 줄이고 줄이고 줄여놓고 보니 그냥 3줄 요약으로 시놉시스를 써버린 담당자분들의 고충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이 영화는 딱히 글 몇 줄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튼... 국내 정식 개봉일이 2월 2일이니 앞으로 2주 정도 남았다. 해외에서, BIFF에서, 원작 소설로 미리 접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나같이 아무 정보도 없이 보러 가시는 분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가서 보는 것'이지만 어느 정도 알고 영화를 보러 가길 원하는 분들을 위해 이 영화를 보면서 신경 써서 보면 좋을 포인트를 몇 가지 정도 정리해 보았다.



※ 중요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리뷰에 사용된 모든 사진들과 정보는 인터넷에 이미 돌아다니는 영화 소개 페이지의 이미지 파일과 트레일러 영상을 토대로 거기다 제 생각을 조금 끼얹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영화를 보고자 하시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고, 영화를 보면서 '그때 얘가 이래서 이런 글을 썼구나!'라는 생각이 들어도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계속 잘 읽어주시면 됩니다:)



1. 다른 존재와의 소통


  타인과의 소통은 쉬워 보이면서도 어렵다. 그들은 나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다른 가치관을 확립하며... 다른 경험을 하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갈등도 대부분은 이 점이 원인이 되곤 한다.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서로를 이해하려 하고 소통하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 소통한다고 하면 그 난이도는 급격히 올라갈 것이다.

  간단한 예로 얼마 전에 다녀온 고양이 카페를 예로 들어보려고 한다. 고양이들은 너무 귀엽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심장에 참 안 좋은 존재들이지만 대체로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고양이 간식이나 장난감 같은 걸로 고양이들을 잠시 소유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얻을 수는 없다. 장난감에 질리거나 간식이 다 떨어진 것을 확인한 그들은 간식 달라고 들이대던 그 기세 그대로 휙 돌아서서 가버리니까.

  같은 지구에 살고 있는 고양이와도 이렇게 소통이 쉽지 않은데 상대는 외계인이다. 동물들한테는 '얘들은 어차피 말을 못 하니까'라는 생각에 - 물론 그들만의 소통 방식이 있겠지만 - 기대라도 안 하겠는데 얘들은 무섭게 생긴 주제에 으어어어 하면서 뭐라고 말까지 하는 것 같다. 자세히 보면 표정 같은 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 모르겠다.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루이스는 달랐다. 단순히 정부에서 시키니까 한 건지, 아니면 언어학자로서의 호기심이 그녀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것인지는 영화가 개봉하면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2. 잔잔한 SF 영화


  SF영화라고 하면 생각나는 '거친' 것들이 이 영화에는 없다. 대신 섬세함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주연을 맡은 에이미 아담스가 있다. 딸과 함께 노는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 딸을 잃은 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 대학 교수로서의 모습, 언어'학자'로서의 모습, 인간으로서 처음 보는 존재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 등 여러 가지 모습들을 깊이 있고 섬세하게 표현해 주었다.

  또한 이 영화에는 긴장감도 - SF영화로서 어쩌면 당연하지만 - 있다. 인류에게 공격을 하던 하지 않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쉘 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외계 생명체가 있다. 등장인물들이 그들과 조우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영화에 조금 더 잘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3.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의미 찾기


  내용이 전개되면서 자연스레 몇 가지 떡밥이 던져지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그 떡밥이 하나씩 풀리는 것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내용이 공개되어도 치명적인 부분이 아닌 선에서 예를 들자면, 루이스이안이 처음 작전에 투입되어 쉘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좌&우가 없이 위아래로만 작용하는 지구 중력의 방향에 맞춰 수직으로 상승하던 그들은 우주선 내에서 원래라면 수직으로 올라가야 했을 쉘 내부를 몸을 돌려 수평으로 걷게 된다. 외계인(다른 존재)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인 대화법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해봤었다.



4. 마무리


  '좋았다'라는 말로 깔끔하게 끝내고 싶은데 굳이 말을 늘려보자면, 우선 전작인 '시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와는 또 다른 반전과 여전히 흡인력 있는 스토리텔링이 좋았고 개인적으로 떡밥 뿌려놓고 속편 속편 하면서 제대로 회수 안 하거나 억지로 회수하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것 없이 깔끔해서 좋았다. 아마 영화를 한번 더 보게 되면 못 보고 놓쳤던 복선들을 몇 개 정도 더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처음 외계인, SF라는 단어만 듣고선 뭔가 우르릉 꽝꽝하고 부서지고, 뭔가 쏘고, 터지고 하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잔잔했고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주는 감성적인 요소가 함께 들어간 점도 좋았다.


  영화가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건 있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영화를 보고서, 영화를 본 후 계속 곱씹어보는 것도, 그래서 결국 자신만의 답을 찾는 것도 또다른 재미가 아닐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SF의 탄생'이라는 예고편 영상의 멘트가 자칫 허울 좋은 광고 멘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은 감히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거 '진짜'라고.


  SF 영화도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일종의 '판타지'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떠오른 곡이 하나 있어서 소개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치려고 한다. 이 곡은 게임 OST고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가사도 영화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곡 전반에서 느껴지는 몽환적인 분위기나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면 그렇게 관련이 없지도 않은 것 같다. 뭣보다 곡의 가사도 작곡가 칸노 요코가 스스로 만들어낸 '칸노어'로 구성되어 있다. 도통 뭔 소린지 알 수가 없어서 영화 속 외계인이 하는 말과 다를 바 없지만 다행히도 이 곡은 해석본(?)이 존재한다.


  영화 리뷰 쓰려고 영화 보러 갈 때마다 이런 것도 생각해야 하니 당분간은 누구랑 같이 영화 보러 안 가고 혼자 보러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절대 여자친구가 없어서 혼자 보러 가는 게 아니다. 정말이다.


https://youtu.be/QEqEh9GGyx4


[Kanno Yoko - Intro theme]


아직 오지 않는, 아직 보이지 않는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다가 놓치는

새끼손톱만큼의 크기


솜털, 꽃

내일이 되면 그곳에 있던 기척도 없다.


둥글고 둥근

행복한 세계

어떻게 하면 이곳에 남길 수 있는지


이곳이 아닌 먼 곳에서

어제 분명히 노래를 들었던 것 같은데


작은 창문에서 보고 있는

작은 창문에서 부르고 있는...



둥글고 둥근

행복한 세계

어떻게 하면 이곳에 남길 수 있나요


이곳이 아닌 먼 곳에서

어제 확실히 노래를 들었던 것 같은데


작은 창문에서 보고 있는

작은 창문에서 부르고 있는


머나먼 옛날의 라그나로크

Kanno Yoko 'Kanno Yoko의 작품집 RO2-라그나로크 온라인2 OST-'(200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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