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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Jan 05. 2017

너의 이름은 - 사라졌다 한들 그리워하는 것

"꿈 속에서 널 보았어. 하늘을 날아 나에게 왔어."

  사실 극장가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화제가 되었던 적은 몇 번 있었다. 대표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이 그랬고 에반게리온이 그랬다. 하지만 이번에 개봉한 '너의 이름은'은 이례적으로 개봉날인 1월 4일 곧바로 예매율 1위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이거 누구 꺼야? 미야자키 하야오 꺼래?'


'아니 나도 모르겠는데 여기 포스터 보니까 그건 아니네.'


라는 대화를 주고받으시던 앞자리 커플의 말처럼 신카이 마코토라는 이름이 아직은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지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서정적인 OST, 작화 담당을 갈아 넣은 것만 같은 포스터와 예고편 퀄리티,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는 두 남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설정은 충분히 관객들을 끌어들일만한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도쿄에 사는, 평범한 고등학생 '타키'(카미키 류노스케 분)는 어느 날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 여동생과 함께 사는 '미츠하'(카미시라이시 모네 분)와 몸이 뒤바뀌어버리는 꿈을 꾸게 된다. 꿈이라고밖에 믿을 수가 없다. 하루아침에 전혀 뜬금없는 곳으로 와버렸으니.

  하지만 그저 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주변 친구들의 말들이 마음에 걸린다. '어제 너 좀 이상했어'라는 말을 들으며 수업 중 공책을 펼친 미츠하는 '넌 누구야?'라는 이상한 메모를 발견하게 된다.

 이때부터 미츠하는 이것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고 타키와 메모, 스마트폰 속 일기를 통해 교류하게 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그동안 겪지 못 했던 특별한 일상들 - 상대방에게는 그저 똑같은 일상일 뿐이지만 - 을 함께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우게 된다.

  내일 출근할 때 아마 높은 확률로 눈이 부을 텐데 혹시나 왜 그러냐고 묻거든 라면을 먹고 잤다고 둘러대야겠다. 왜 내가 서른이나 먹어놓고 만화를 보면서 눈물이 났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 내용과 함께 진득하게 잔뜩 하고 싶지만 굳이 그러지 않고 영화를 볼 때 신경 써서 보면 좋을 포인트를 세 가지 정도 간단하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요만큼도 없으나 영화 내용이 적다 뿐이지 없는 건 아닙니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뭔가 쎄한 기분이 드시면 언제든 주저 말고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1. 미숙한 등장인물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주요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린 남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 '별의 목소리'가 그랬고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도 그랬으며 '초속 5센티미터', '별을 쫓는 아이', '언어의 정원' 모두가 그랬다.


  아직 어리고 미숙하기에 감정 표현에 능숙하지 못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아...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며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들은 어느새 '타키'가 되어, '미츠하'가 되어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2. 독보적인 작화 퀄리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데뷔작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5분이 조금 안되는 짧은 흑백의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처음 봤을 때 흑백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작화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후속작인 '별의 목소리'에서도 그것은 여실히 드러난다. 그 모든 작업을 당시 혼자 해냈다는 것이 더 대단했다. 지금은 거기서 더 진화했다. 예고편, 포스터, 스틸컷만 봐도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만약 작화 수준이 별로였더라도... 단지 스토리만 가지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매번 작품을 위해 수많은 사진을 찍어 자료로 활용한다고 한다. 그런 노력들이 바탕이 된 실감 나는 등장인물들의 움직임과 아름다운 배경을 통해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좀 더 깊게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3. 인연에 대하여


  영화는 미츠하 할머니의 입을 통해 '무스비'... 즉 매듭을 시간과 인연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만들고, 때로는 꼬이고, 엉키고, 끊어지고, 그러다가도 다시 이어지는 것무스비, 그것이 시간이라고. 이것은 사실상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매듭은 묶이면 단단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단순한 실뭉치에 지나지 않을 뿐, 언제라도 덧없이 흩어질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타키와 미츠하는 몇 번이고 서로의 이름을 묻는다.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스스로를 잊지 않기 위해서.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



4. 마무리


  깔끔한 떡밥 회수, 중간중간 큰 웃음을 주는 성진국의 유머 코드, 황혼의 시간 - 타소가레 - 으로 대표되는 판타지적 요소들, 다 보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 하고 찾을 수 있는 복선과 후반부에 사정없이 쏟아지는 여운까지...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보고 싶은 영화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영화 속 단골손님인 열차벚꽃, 쓰르라미 울음 소리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극 중간중간에 녹아들어 있을지 확인해보는 재미는 덤. 영화관에서 산 직소 퍼즐을 맞추며 한동안은 이 여운에 감정을 담근 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을 생각하며 잠들었기 때문에

꿈에 나온 걸까?

꿈인 걸 알았다면 깨지 않았을 것을...


  여담이지만 이번 영화는 위 일본 와카(일본의 전통 시가)의 한 구절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지난 리뷰에 이어 이번에도 역시 영화와 잘 어울릴만한 노래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역시 애니메이션 OST인데, 노래를 소개해 주었을 때 하나같이 입을 모아 좋은 노래를 소개해줘서 고맙다는 반응을 들었던 노래이다.

P.S -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들의 만남과 감정 변화, 엇갈림과 헤어짐과 마주침에 휘둘려 마음 한쪽이 먹먹하고 요동쳤었다. 아마도 그건 다른 시공간이 아니라 같은 하늘 같은 시간 아래 살아가고 있는, 손바닥에 이름 같은 걸 써놓지 않았어도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하는, 하지만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그립고 예쁜 내 기억 속의 이름 하나가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https://youtu.be/AsQkiEbMMyU


[윤하 - 꿈속에서]


달이 저무는 밤 밝아 오는 새벽빛이

같이 거울을 봐 나를 또 작게 만들어

숨 쉴 수 없어도 혼자 남겨진 하루는

다시 시작을 맞지  


같은 하늘 아래 나와 꼭 닮은 사람들  

속을 숨기는데 너무 익숙해 버린 걸  

단 하나 위로는 두 발을 딛은 이곳에  

우리가 함께란 것 혼자가 아니라는 것  


꿈속에서 널 보았어 하늘을 날아 나에게 왔어  

어디든 갈 수 있어 가진 날개를 펼쳐  

몸을 맡겨 나를 믿어줘  

지나쳐버린 일이라 발끝을 보고 걸었던 날들  

다시 무릎을 세워 꿈을 꾸는 것처럼  

눈을 감아 네게 돌아가  



하나뿐인 너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서툶뿐인 나에게 어깰 기대도 된단 것  

한 걸음 멀어도 마주친 시선의 끝엔  

우리가 함께란 것 혼자가 아니라는 것  


꿈속에서 널 보았어 하늘을 날아 나에게 왔어  

어디든 갈 수 있어 가진 날개를 펼쳐  

몸을 맡겨 나를 믿어줘  

지나쳐버린 일이라 발끝을 보고 걸었던 날들  

다시 무릎을 세워 꿈을 꾸는 것처럼  

눈을 감아 네게 돌아가  


오직 나만이 날 구할 수 있어

여전히 다른 누구에게 기댈 수 없어


꿈속에서 널 보았어 하늘을 날아 나에게 왔어

어디든 갈 수 있어 가진 날개를 펼쳐

몸을 맡겨 나를 믿어줘

지나쳐버린 일이라 발끝을 보고 걸었던 날들

다시 무릎을 세워 꿈을 꾸는 것처럼

눈을 감아 네게 돌아가

윤하 'Lost in Love'(201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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