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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Jan 03. 2017

라라랜드 - 언젠가 네게 말했던 꿈에 거짓은 없었어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이 노래를 부릅니다"

  며칠 전 썼던 영화 '씽'의 리뷰에서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이번엔 거기에 사랑을 더한 '라라랜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의 영화평은 '아 그래 그렇구나'하고 넘기는 편이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주변에 못해도 서너 번씩 본 사람들이 꽤 많았고 여기저기서 꼭 보라는 간증(?)이 넘쳐나 이번에는 조금 기대를 하고 봤다. 리뷰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결과부터 말하겠다. 지금 점심시간인데 리뷰 다 쓰고 오늘 퇴근하면서 이 영화 또 볼 거다.


  그리고 요새 바빠서 영화를 거의 못 본 분들이라면 일단 씽을 먼저 본 후 라라랜드를 보는 것을 조심스럽게 권해 본다. 둘 다 '꿈'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드는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라라랜드는 낭만과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주 같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두 영화는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꿈을 꿔라. 그리고 행동해라.'

  라라랜드는 2014년 위플래쉬를 통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2년 만의 신작이다. 영화가 어떻다더라 써볼 생각으로 영화 티켓을 사고  자리에 앉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냥 재미있게 봤다. 그래서 영화 전체를 아우르며 분석하기보다는 인상 깊었던 포인트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 리뷰에 영화 내용들을 잔뜩 끼얹었습니다. 중요 내용 누설...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영화를 먼저 보신 후에 혹시나 생각이 나신다면 다시 보러 와 주세요.



1. Welcome to LA, LA LA Land


  영화 도입부, 어딘가로 향하는 꽉 막힌 도로 속에서 저마다 다른 노래를 들으며 다르게 리듬을 타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러던 중 한 운전자에게 카메라가 클로즈업되고 제각기 다른 노래를 듣던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한 노래를 부르며 함께 춤춘다. 이 장면은 '여러분 이 영화 뮤지컬 영화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후 나오게 될 남녀 주인공에게, 영화를 보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좌절해도 땅을 딛고 다시 일어나라고.

아침이 다시 돌아오니까, 또 다른 날의 태양은 뜨니까.

재즈는 점점 사장되어가고 있지만 재즈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재즈 클럽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재즈를 알리고 싶어 하는 실력파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


수많은 오디션 탈락에도 실망은 하되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의 꿈을 향해 노력하는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 분)


  뮤지컬 신이 끝나고 위에 소개한 두 주인공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향하는 곳이 화면을 통해 밝혀진다.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노래를 들으며 차 안에 앉아있던 그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가는 곳, LA(LA LA LAND)다.



2. 자연스러운 관계의 변화


  뮤지컬 신이 끝난 직후 두 사람의 첫 만남 신이 이어진다. 운전 중 핸드폰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느라 앞 차들이 출발하는 것도 모르고 있는 미아를 본 세바스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길고 묵직한 경적소리를 통해 미아에게 정의 구현을 시전하고, 미아는 길고 아름다운 가운데 손가락을 쭉 뻗어 세바스찬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후 미아의 시점에서, 세바스찬의 시점에서 두 사람이 세바스찬이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의 이야기가 각각 진행된다. 세바스찬의 연주에 이끌려 들어온 미아가 인사를 표하려는 찰나, 즉흥 연주를 하지 말라던 레스토랑 주인의 지시를 어긴 세바스찬은 그 자리에서 해고당하고 미아를 그냥 지나쳐 레스토랑을 나가버린다.


  이때는 미아만 세바스찬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다음번 파티에서 세바스찬도 미아를 기억하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설명충 기질이 다분한 소설가에게 붙잡혀 곤혹스러워하던 미아는 마침 곁을 지나던 세바스찬을 이용해 그 자리를 피신하게 되고, 파티가 시작될 때 주차를 맡겨뒀던 차를 찾으러 가게 되면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서로에게 '님은 내 타입 아니세요'라고 투닥거리며 언덕길을 오르던 둘은 이윽고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도달한다. 힐을 벗어던지고 운동화로 갈아 신던 미아에게 세바스찬이 장난을 걸기 시작하며 춤을 통한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된다.

  '너랑 있기엔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밤이다'라는 주제의 노래가 흐르고 있지만 둘이 함께 합을 맞추며 춤을 추는 과정에서 서로를 향한 눈빛과 표정이 달라지는 것이 보인다. 뮤지컬이 아닌 대사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했다면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진부한 전개가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 변화를 의미하는 춤과 노래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후 둘은 서로의 꿈을 함께 이야기하고 조언도 해 주는 관계로 발전하며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처음엔 가운데 손가락과 경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였건만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듯 참 묘한 것이다.



3. 부러진 건, 다시 붙이면 돼


  꿈을 향해 가는 길은 꽃길이기보다는 가시밭길인 경우가 많다. 세바스찬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클럽 운영이라는 꿈을 잠시 접고 친구 키이스의 밴드 연주자로 활동하게 되고, 1인극에 온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우연히 일부 관객들의 혹평을 듣게 된 미아는 세바스찬과의 의견 다툼까지 겹쳐져 배우의 꿈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여기까지는 꿈을 접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세바스찬과 미아를 통해 꿈을 향한 당신들의 노력은 틀리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노력하면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속 노래 가사를 통해 '꿈꾸는 바보'들을 위로하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운이 안 따라줘서 당장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부러졌다면 다시 붙이고 계속 걸어가면 된다. 포기하고 돌아서지 않는 한 꿈이라는 날개는 설령 부러질지라도 사라지지 않고 항상 우리 등 뒤에 함께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4. 아름다운 환상 속 그곳, 라라랜드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OST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한다. 그 OST들이 빛날 수 있었던 건 OST가 흘러나올 때 우리가 함께 보았던 아름다운 영상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상을 보면서 영화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뮤지컬 신은 그 인물이 실제로 그 행동을 했다기보다는 노래 가사를 통해 관계의 변화를 이야기하거나 상상 속에서 두 사람이 함께 교감을 나누는 것을 아름답게 그려낸 모습이다. 그런 허구의 장면들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주제가 다름 아닌 '꿈''낭만'이기 때문일 것이다.



5. 계절의 변화


 영화를 보다 보면 중간에 몇 번 장면 전환이 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야기의 진행 양상, 두 사람의 관계가 변화할 것임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서로에게서 꿈을 키워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사랑에 빠지는

사랑이 충만한 마음을 바탕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활기찬 여름

나뭇잎이 영원하지 않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듯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되는 가을

계절의 끝을 알리는 것처럼 관계의 끝을 암시하는 겨울


  겨울은 끝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등장인물들에게도 새로운 시작이 올 것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겨울이 단순히 끝을 의미한다고만 했다면 이런 결말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고 시간이 흘러 좀 더 성숙해지고 꿈에 가까이 다가간 두 사람을 보여준다. 5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모습은 흔한 한국 드라마의 마지막 회(3년 후, 5년 후 등)를 떠오르게 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지 폭넓고 자유롭게 상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꿈에 대한 서로 간의 오해로 인해 틀어지기 시작했지만 결국 처음 그들이 눈을 반짝이며 서로에게 이야기한 꿈에 거짓은 하나도 없었다.



6.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각자 배우와 재즈 클럽 운영자이자 피아니스트로 사실상 꿈을 이룬 두 사람이지만 힘든 시절을 함께했던 때와는 달리 결말부의 두 사람은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미아는 그와 함께 우연히 들른 클럽에서 예전 자신이 세바스찬에게 만들어줬던 재즈 클럽 로고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세바스찬과 눈이 마주치고, 그동안 우리가 봤던 장면들이 주마등 스치듯 화면에 펼쳐진다. 차이가 있다면 세바스찬은 우리가 봤던 영화 내용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굳이 자막이나 설명이 없어도 이 장면이 두 사람의 상상 속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노래를 더 들을지 묻는 남편에게 그만 나가자고 말한 미아는 클럽을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뒤돌아서 세바스찬을 보게 되고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한다. 말 한마디 없는 장면이지만 두 사람이 어떤 마음일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기 비슷한 영상이 하나 있다. 1분간 낯선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퍼포먼스를 펼쳤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라는 유명한 행위예술가의 영상이다.


https://youtu.be/mEcqoqvlxPY


  바쁘신 분들은 1분 20초부터 보면 된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그녀가, 다른 쪽에는 퍼포먼스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이 앉게 된다. 여러 사람들이 그녀 앞을 다녀가는데, 문득 한 노인이 그녀 앞에 조심스레 앉는다. 마리나는 눈을 감고 있는 상황이고 노인은 약간 멋쩍은 듯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기도 하고 괜히 옷매무새도 한번 다듬어 본다. 이윽고 눈을 뜬 마리나가 노인을 알아보고는 그동안 평온을 유지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노인은 마리나의 옛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눈빛으로 나누는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떤 대화가 오고 갔을지는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도 같은 식이다. 그들이 헤어지기 전 '우린 지금 어디쯤에 있는 걸까'라는 미아의 물음에 세바스찬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라고 대답한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그리고 다시 봄이 오듯이. 둘은 서로의 선택을 존중했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결과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두 사람 모두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 장면을 보고 세바스찬의 대사가 문득 떠올랐다. 물론 그 눈빛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을 해볼 수 있겠지만 정확하게 무엇이다 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또다시 연주를 준비하는 세바스찬의 마지막 읊조림이 상징하듯 인생이라는 그들의, 우리들의 연주는 계속될 것이다.


One, two...

One, two, three, four...



7. 마무리


  라라랜드의 영화 포스터 정면에는 '이 영화는 마법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 이것이 한 치의 과장도 없는 사실임을 굳게 확신하게 되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이 영화를 추천할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지만 아직도 이 영화를 못 본 사람들이 많다.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니 어쩌니 이야기하기보다는 머리가 아닌 가슴을 통해 이 영화를 즐겼으면 한다. 그래서 이 행복의 마법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연말연시만 되면 늘 찾아 듣게 되는 노래가 하나 있는데, 영화를 볼 때도 영화를 보고 나서 리뷰를 쓰는 지금도 머릿속을 맴도는 노래를 하나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공교롭게도 이 노래의 제목은 Seasons, '계절'이다.



[Hamasaki Ayumi - Seasons]


올해도 또 하나의 계절이 찾아와

추억은 또다시 멀어졌어

애매했던 꿈과 현실의 경계도 또렷해졌어


그래도 언젠가 너에게 말했던 꿈에

거짓은 하나도 없었어


La La


오늘이 무척 즐거워서

내일도 분명 즐거울 거라고

그런 나날이 계속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그 시절..



반복되는 매일에 조금 부족함을 느끼면서

부자연스러운 시대의 탓이라며

괜히 앞질러서 포기해버렸어


La La


오늘이 무척 서글퍼서

내일 만일 울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날도 있었네 하면서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까?


몇 번이고 돌고 도는

한정된 이 시간 속에서

우리들은 지금 살아가고

결국 무엇을 발견할까?

Hamasaki Ayumi 'Duty'(200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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