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때문에 네가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마"
'미니언즈'의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고 유니버설 픽처스에서 배급하는 애니메이션 씽(Sing)이 지난 12월 21일 개봉했다. 올겨울은 오랜만에 볼 만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바쁜 일들을 이제 막 다 마무리한 나는 뭘 먼저 봐야 하나 하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고민 끝에 선택한 첫 영화는 애니메이션 '씽'이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로 유명한 가스 제닝스 감독이 이 귀염귀염해보이는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연출했을지 기대감을 안고 극장으로 들어섰다.
영화 초반부에는 스피디하게 시점이 바뀐다. 캐릭터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시작하기 위함인데 극장을 몰래 빠져나가는 주인공 버스터 문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빠른 호흡의 화면 전개를 통해 각 인물들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점은 신선했다. 조금 정신없긴 했지만. 어쨌든 주요 등장인물들은 아래와 같다.
한때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연이은 흥행 실패로 인해 빚더미에 시달리는
극장 주인 코알라 버스터 문(매튜 맥커너히 분)
노래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것을 아버지 앞에서 잘 표현하지 못하고
아버지, 친척들과 범죄 행각을 일삼고 다니는 젊은 고릴라 조니(테런 애저튼 분)
록에 대한 열정만큼은 부족함이 없지만 현실은 리드 보컬인 남자친구를 보조하며
록 공연을 하러 다니는 젊은 고슴도치 애쉬(스칼렛 요한슨 분)
할아버지의 생일 축하 노래 하나도 소울 넘치게 부를 정도로 노래를 잘 하고 좋아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한 번도 무대에 서본 적 없는 코끼리 소녀 미나(토리 켈리 분)
명문 학교를 졸업했지만 길거리 공연을 전전하며 사는,
그래서 돈만이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버린 생쥐 마이크(세스 맥팔레인 분)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지만 25남매를 키우며 바쁜 남편 뒷바라지까지 하는 일상 속에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사는 엄마돼지 로지타(리즈 위더스푼 분)
씽의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위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준 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가며 버스터 문이 극장을 되살리기 위해 친구 에디(존 C. 라일리 분)앞에서 오디션을 열겠노라고 선언한다. 오디션을 통해 공연 수익을 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슈퍼스타 K로 대표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전 재산인 935달러에 잡동사니를 우겨 넣어 1000달러를 상금으로 걸려고 했지만 극장 직원인 미스 클로리(가스 제닝스 감독)의 실수로 홍보 전단지에 0 두개가 더 붙어 10만 달러의 상금이 인쇄된 전단지가 동네 곳곳으로 뿌려지게 되고 이 전단지들은 위 등장인물들에게도 빠짐없이 전달되며 수많은 도전자들과 함께 그들을 오디션 장소인 문 극장으로 향하게 한다.
씽은 108분의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그 속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극중 캐릭터들의 노래 실력에 대해서는 굳이 말이 필요 없기에 생략하고 전개 속도가 빠른 편에 속하기 때문에 자칫 놓칠 수 있는 포인트만 간단히 짚어보려고 한다.
버스터 문을 포함한 주요 등장인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루고 싶은, 하고 싶은 일들이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그 꿈을 접고 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항상 계획만 거창하지만 늘 실패하는 빚쟁이 극장주,
25명의 자식들과 남편을 돌보느라 가사에 치여 사는 주부,
길거리 공연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허세 투성이 젊은 남자,
남자친구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의 꿈을 누르고 사는 젊은 여자,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확실히 모른 채 주변에 의해 휘둘리는 소년,
사람들 앞에 서본 적이 없어 재능을 펼쳐본 적 없는 소심한 소녀.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등장시켜 캐릭터에게 자신을 투영시키는 것이 쉽다. 자연스레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외에 버스터 문의 친구로 꽤 비중 있게 나오는 에디가 있는데 에디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렇게 뭔가 실패하거나 억눌려 살던 이들이 한데 모여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여 '꿈'을 이룬다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커다란 줄거리이다. 그래. 흔한 다른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해피엔딩이다. 그건 영화를 굳이 안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해피엔딩으로 향하는 과정이다.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은 대체로 후반부의 공연에 열광하지만 본인이 마음에 드는, 자신의 모습을 본 캐릭터의 감정에 이입해보며 그 캐릭터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꿈을 이뤄내는지 지켜보는 것도 좋은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아래는 예고편에도 나왔던... 개인적으로 많이 웃었던 로지타의 마트 공연 신 캡쳐. 일단 보면 빠져든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로지타는 아무리 봐도 이공계 출신이 확실하다. 다시는 아줌마를 무시하지 마라.
우리가 현실 속에서 위 등장인물들 중 하나의 위치에,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저들이 그랬던 것처럼 역경을 극복하고 성장하여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행운의 여신이... 내게 미소를 짓는군'이라는 말을 툭하면 던져대는 모 게임 속 캐릭터라도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말도 안돼. 만화니까 가능한 거지. 저게 말이 되냐?'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유하게 해보면 어떨까? 만화이기에 사람들은 그런 전개가 유치하다고 생각될지언정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까? 동물들이 사람처럼 돌아다니는 것부터 해서 현실적인 요소를 많이 넣지 않았기에, 그래서 앞으로 이어질 일이 어찌 보면 뻔하기에 사람들은 극 중에서 주인공들이 시련에 빠지더라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날 것을 믿는다. 뻔하니까.
'바닥으로 떨어지면 좋은 점이 뭔지 알아? 올라가는 길밖에 없다는 거야. 위로 쭉!!'
만화이기에 저런 낭만에 잔뜩 젖은 대사조차도 치열한 현실을 살고 있는 관객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작년에 개봉했던 인사이드 아웃이나 씽 같은... 어른들을 타깃으로 한 이런 류의 만화들이라면 더욱 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나는 잠시나마 각박한 현실을 잊게 하고 그와 동시에 웃음과 감동 그리고 그동안의 자신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것이 이런 만화들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씽의 영화 팜플렛을 펼쳐보면 나오는 주인공은 5명이다. 버스터 문, 로지타, 애쉬, 조니, 미나. 그 외 내가 개인적으로 눈여겨본 주변 등장인물은 여기 함께 나오진 않지만 버스터 문의 친구인 에디, 그래도 주연 급으로 등장하는 마이크, 그리고 조니의 아버지이다.
먼저 에디는...부자다. 유명한 가수였던 나나 누들맨의 손자로서 책상 서랍 속에서 잠을 청하는 친구 버스터 문과는 달리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문이 도와달라고 할 때도 선뜻 나서지 못하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간단하게 차를 타 오는 것조차도.
별 특징이 없어서 그냥 별것 아닌 주인공의 친구 1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내 생각을 깨고 에디는 문이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왔을 때 곁에서 문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며 처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여 문을 돕는다. 이런 에디의 정신적 성장이 결국 문을 다시 일어서게 하고 해피엔딩으로 가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두 번째로 이야기할 캐릭터는 생쥐 마이크다. 처음 캐릭터 소개를 하고 극이 이어지면서 마이크에 대한 내 평가는 '이 망할 놈의 쥐새X...'였다. 자기 잘난 줄만 알고 욕심까지 많은 데다 남을 무시하며 빈정거리는 태도 때문이었다. 거기다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 허세 부리는 모습까지... 그래서 마이크가 노래를 할 때도 잘 부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마이크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명문 음악 학교를 나왔음에도 길거리를 전전하던 마이크는 자존심 강한 원래의 성격과 그러한 배경 때문에 더더욱 성공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을 것이다. 스케일은 다르지만 공부한다고, 연애한다고, 취업 준비한다고 주변에 소홀해서 친구들과 연락이 많이 끊어져도 이건 어쩔 수 없었다고 자기합리화 하던 나와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마이크는 후반부 공연에서 모자를 벗어 공손히 품에 안으며 미나의 노래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과거의 이기적이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옅은 미소를 통해 마이크가 앞으로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마지막 장면이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지지 않아서 마이크와 그 여친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내가 이렇게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듯 마이크도 부디 악착같이 잘 살아남아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아니 그러고보니 쥐도 여친이 있는데... 잘 살길 바란단 거 취소한다.
마지막으로 이 험악하게 생기신 분은 조니 아버님 되시는 분이다. 친척들과 함께 범죄를 저지르며 약간은 유약한(?)조니도 자신처럼 와일드하게 행동하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조니가 노래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님 표정이...
솔직히 나는 부모가 되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래서 교도소에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조니 아버지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고 조니에게 달려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 장면 보는 내내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났다.
유망한 학과를 나와서 굳이 유망한 직업을 가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과 조니의 모습을 동일시했던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사진처럼 나를 노려보는 대신 응원해 주셨지만 그래도 취직 준비할 때 자꾸 그런 쪽 회사 정보를 알려주셨던 걸로 봐서 그 길을 가지 않은 것이 내심 많이 아쉬우셨던 모양이다. 나도 지금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정말 좋은 글을 써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아버지한테 확인받고 싶다.
심각하게 눈에 힘주고 보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보면서 이 추운 겨울날 마음에게 잔잔한 감동과 훈훈함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영화다. 64곡에 이르는 유명 팝 가수들의 노래를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새롭게 듣는 즐거움은 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노래가 하나 있다. 영화 삽입곡은 아니고 예전 취업 준비할 때 많이 듣던 노래인데, 꿈과 재능이라는 날개를 달고도 날아오르지 못하던 영화 속 캐릭터들이 후반부 공연을 멋지게 끝내는 장면에서 문득 그 노래가 떠올랐다. 언젠가 이 노래를 주제로 써보고 싶어서 아껴뒀는데 생각난 김에 오늘 소개하면서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P.S - 개인적으로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는 '두려움 때문에 네가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마'라고 생각한다. 처음 언급될 때는 '사랑하는 것'으로 번역이 되었다가 이후에는 '좋아하는 일'로 바뀌어 번역되었는데 나는 처음의 '사랑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서 굳이 저렇게 썼다.
그것은 일일 수도 있고, 취미 활동이나 먹을 것(?!)일 수도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을 테니까.
미친 듯이 몸부림쳐봐도 뒤로 가는 것 같은 나의 삶
시작은 있었었는데 끝이 안 보이는 너의 꿈
꿈이라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지 못 하는 맘
찢긴 날개를 붙잡고 눈물 흘리기를 10여 년
아침이 밝아오면 솟아나리라
기다림을 알게 됐을 때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
어제보다 아름다워진 당신과 나의 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그 순간 My Glory Days
사랑하는 이에 대한 미안함 나의 꿈에 대한 서운함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불안함 그래도 주먹 불끈 다시 삶
한발 더 내딛을 때에 뛰어오를 때에
떨어져 날릴 때에 하지만 보란 듯이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
어제보다 아름다워진 당신과 나의 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그 순간 My Glory Days
아침이 밝아오면 솟아나리라
기다림을 알게 됐을 때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
어제보다 아름다워진 당신과 나의 날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
어제보다 아름다워진 당신과 나의 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그 순간 My Glory Days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 My Glory Days
My Glory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