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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Sep 07. 2016

밀정(The Age of Shadows)개봉 당일 후기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영화를 먼저 보시고 난 후, 나는 보고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스포일러 포함해서 리뷰 썼던 이 친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썼는가 보러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그...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요!!

출발 비디오 여행보다 조금 더 셀 듯. 내용 없이 글 써보려고 했는데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ㅠㅠ



  개봉 전부터 송강호와 공유의 조합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밀정이 드디어 개봉했다. 사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유사한 영화를 떠올려보자면 작년에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있었고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도, 분위기도 전혀 다르지만 김지운 감독의 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도 있었다.


  밀정은 '놈놈놈'의 유쾌함도, '암살'의 스타일리쉬함도 아닌 '콜드 느와르'를 표방한 영화다. 느와르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를 먼저 보고 온 사람으로서 중점적으로 봤던 몇 가지 포인트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배우 엄태구


  엄태구는 2007년 영화 '기담'의 단역으로 데뷔한 후 3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 내공을 다져온 배우다. 사실 밀정의 포스터에 있는 5명의 이름 - 송강호, 공유,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 - 중에서 내게 유일하게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기도 해서 영화를 본 후 자료들을 조금 더 찾아 보았다.



  김지운 감독과는 전작 '악마를 보았다'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캐스팅 비화까지 여기서 이야기할 건 아니고, 어쨌든 엄태구는 하시모토 역을 훌륭하게 소화함으로써 김지운 감독의 기대에 보답했다.


  엄태구가 연기한 '하시모토'는 조선인인 이정출 경부(송강호 분)와는 달리 젊고 유능한 일본인 엘리트 경찰 간부로써 이정출 경부의 상관인 히가시 부장(츠루미 신고 분)의 신임을 얻어 이정출 경부와 함께 의열단을 추적하게 되는 역할이다.



  말끔한 인상과 항상 입고 다니는 검은색 옷, 말할 때 입을 많이 벌리지 않는 등의 절제된듯한 모습은 이후 영화에서 보여질 그의 광기를 더욱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광기어린 연기'라는 게 자칫 과해지면 소위 말하는 '후까시 잡는'연기가 되어버리고 모자라면 배우와 캐릭터가 잘 섞이지 않았다고 지적을 받기 쉬워지는데 엄태구는 이 경계를 잘 왔다갔다 하면서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하시모토는 상급자인 히가시 부장에게는 군인다운 태도를 유지하며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약자나 하급자에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무자비하다. 극 중에서는 주로 이정출 경부와 대립하게 되는데, 일단은 상급자이니 존대는 하지만 언제든 목덜미를 물어뜯을 기세로 이정출 경부를 바라보는 장면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영화 포스터의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애매한 네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배우 엄태구는 러닝타임 내내 송강호와 맞부딪히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 만약 당신이 아직 영화 밀정을 보지 않았다면, 영화에서 기대하는 부분에 배우 엄태구의 연기를 추가해도 좋을 것이다.


2. 빛과 어둠, 그리고 김지운


  인물들이 밤에만 활동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어둡다. 그렇기에 빛이 더 부각될 수 있었다. 이미 많은 영화 평론가, 블로거분들이 이야기한 김지운 감독 영화의 특징인 '빛과 어둠'을 이용한 장면이 이번 영화 밀정에서도 많이 보인다.  



  영화를 보는 동안 왜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연출을 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정출 경부가 의열단의 수장 정채산(이병헌 분)을 만나 밤낚시를 하러 가서 회유를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또렷한 빛과 어둠을 가진 정채산의 얼굴에 비해 일렁이는 모닥불 때문에 빛과 어둠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얼굴의 밝기가 계속 변하는 이정출 경부의 얼굴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영화 속 빛과 어둠은 위 사진 속 장면처럼 공간 내에서 표현되기도 하지만 인물의 얼굴 안에서도 표현되기도 한다. 거리에서도, 차 안에서도, 감옥에서도 이 명암들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무엇일지 고민하며 영화를 본다면 자연스레 영화에 몰입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3. 불신자들의 시대


  밀정이라는 영화 제목부터가 '은밀히, 남 몰래 무언가를 염탐해서 사정을 알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이용해야 하고, 누구든 100% 믿어서는 안 된다. 설령 그게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지라고 할지라도.



  영화 초반부, 의열단 리더 김장옥(박희순 분)은 의열단 내부 밀정의 고발로 인해 자금 조달을 하던 중 발각되어 총을 맞고 위기에 몰리고 만다. 그는 옛 친구였던 이정출 경부와 짧은 대화를 나눈 후 권총으로 자결을 하게 된다.


  정보통으로부터 사진관과 고미술상을 하는 김우진(공유 분)이라는 사람이 자금을 모아 상해 쪽으로 보낸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 이정출 경부는 예전 김장옥에게 그랬던 것처럼 김우진에게 접근하게 된다. '적은 친구처럼 다가온다'라는 예고편 소개 문구처럼.



  의열단의 수장 정채산은 오히려 '적의 첩자를 역으로 우리 첩자로 만들자'며 이런 이정출 경부를 이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그렇게 김우진과 이정출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서로를 불신하며 함께하게 된다.



  그런 시대였다. 일제 강점 하 조선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시련과 맞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내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처음부터, 혹은 독립운동을 하다가도 변절한 사람들이 많은 시대였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의열단 리더와 친일 경찰의 동행이라고 하면 말할 것도 없다. 영화는 두 불신자가 겪는 내면의 갈등을 송강호와 공유라는 걸출한 배우들을 통해 잘 표현했다.


 4. 사망 플래그


  사망 플래그란 드라마나 만화, 영화, 심지어 게임 등의 이야기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등장인물이 죽기 전에 곧잘 하는 말이나 행동들을 통틀어 의미한다. 유래는 프로그래밍 용어로서 의미 확장을 거쳐 게임 업계에서, 다시 만화나 영화 등의 다양한 매체까지 진출하게 된 것이다. 죽기 전에 하는 공식화된 행동들이 많다 보니 - 전쟁 도중 딸아이의 사진을 본다던지, 전쟁터로 떠나며 연인에게 돌아오면 결혼하자고 말한다던지 하는 것이 대표적 - 이제는 그런 영화 같은 걸 조금만 보더라도 '아 저 사람 죽겠구나'하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의 경우 플래그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역이용해 사망 플래그를 잔뜩 뿌려놓고도 생존하는 등장인물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영화에서 김지운 감독은 정직했다. 웬만한 스릴러처럼 뒤통수를 탁 치는듯한 반전은 없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이라는 필연적으로 사망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사망 플래그를 세운 등장인물들은 여지없이 죽어나가거나 생사가 불분명해졌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는다거나, 어머님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거나...


  그렇게 사망 플래그를 세운 후 했던 등장 인물의 행동들이 독립 운동에 있어서 꼭 필요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을 알았기에, 결국 말미에 어떻게 될 것인지 눈에 너무 보였기 때문에 더 슬펐고 아쉬웠다.


5. 밀정이 전하려 했던 것


  김지운 감독은 인터뷰 영상에서 크랭크인 전날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했다고 했다. 빼앗긴 나라를, 잃었던 민족의 혼을 찾으려고 몸부림쳤던 독립투사 분들의 당시 그런 모습을 현장에서 읽어 내려가면서 무척 가슴이 뭉클했다고, 그때 받았던 그 감동들을 온전하게 영화에 담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영화 마지막 정채산(이병헌 분)의 대사 속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젊은 독립운동가 청년의 입에서, 자전거 뒤에 폭탄을 싣고 조선 총독부로 들어가는 청년을 배경으로 한 정채산의 내레이션에서 두 번이나 반복되는 말이다.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실패가 쌓이고, 우리는 그 실패를 딛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 가야 합니다


  그 대사가 나오는 장면과 함께 형무소 독방에 갇혀있는 김우진(공유 분)의 모습이 나온다. 간수가 다가와 폭탄이 제대로 전달되어 거사가 이루어졌더라고, 아직도 남은 폭탄이 많은데 발견되지 않은 것들이 많더라고 귀띔해주고 자리를 벗어난다. 햇볕이 두 뼘 정도밖에 내리쬐지 않는 형무소 독방 안에 드러누우며 김우진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린다. 그 모습과 함께 형무소 돌벽이 클로즈업되는데, 세 개의 벽돌에는 각각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단원들'

'이곳에'

'다녀가다'


[총평]


  결국 영화 속 정채산의 말대로 수많은 실패 끝에 그 실패가 쌓여 우리는 독립을 이루어냈고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독립운동 및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대상으로 '국뽕'이라며 비난을 하기보다는 이런 영화들을 통해 그런 사실들을 다시금 되새기며 우리가 우리의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이름 없는 수많은 어제의 실패들에게 감사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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