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한국스러웠기에, 씁쓸하고 불편한.
※ 이번엔 리뷰라고 하기엔 좀 쑥스럽고 그냥 간단히 느낀 점들을 써 봤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영화 내용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람 전 내용을 읽는게 불편하시면 나중에 영화를 본 후 다시 읽으러 와 주세요.
김성훈 감독과 하정우가 만났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고 배두나와 오달수까지 함께 끼얹었단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개봉 전 터널이라는 영화를 기대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난 요새 핫한 부산역도 덕혜옹주도 인천상륙작전도 아직 못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널을 먼저 선택한 것에는 앞서 말한 이유도 있지만 영화 시나리오를 보고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영화 베리드(Buried, 2010)가 생각나서였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093
베리드는 '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치는 라이언 레이놀즈의 연기가 좋았고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영화지만 나는 인상 깊게 봤었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폐쇄된 공간, '무너진 터널 안'을 배경으로 한 이번 영화는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했다.
영화는 초반부터 불편했다. 귀가 잘 안 들리시는 주유소의 직원이(딱 보기에도 나이가 좀 많이 많으시다.)정수(하정우 분)가 3만원 어치만 넣어달라고 했는데 그만 기름을 가득 넣고 말았다. 정수는 직원이 가는 귀가 어둡다는 말에 더는 별 말을 하지 않고 어차피 결국 쓸 테니까 괜찮다고 했지만 주유소 사장은 자기 아버지 뻘은 되어보이는 어르신에게 크게 소리를 치며 지적을 하고 모욕을 주는 장면이 있었다.
또 터널에 갇힌 뒤 정수는 곧바로 119에 신고를 했지만 119 직원은 다급한 정수와는 달리 너무 평온했고 대답도 건성으로 했다. 아니 사람이 터널에 갇혔다니까?!?!?!
대표적으로 두가지 정도만 말했는데 영화 보는 내내 이런 장면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일일이 언급할 수가 없다.(그러니 영화를 볼 때는 꼭 탄산음료를 지참하세요!!!스프라이트 라던가 스프라이트 혹은 스프라이트 아니면 스프라이트도 좋습니다!!!)
영화는 중간중간 적절히 들어간 웃음 포인트를 통해 긴장을 풀어주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관객을 슬프게 했다가 화나게도 했다가 씁쓸하게도 만들었으며 뭣보다 철저히 한국스러웠다.
한국적인 주인공과 등장인물, 한국적인 사건 전개, 한국적인 극중 인물들의 행보... 아니, 한국이라기보다 별로 좋은 말은 아니지만 헬조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에이, 영화니까 저렇지 뭐.'라는 말을 하기엔 등장인물들은 너무나 현실적으로 '헬조선틱'했다.
조금 전에 이야기한 초반부 장면부터 해서 감독님이 작정하고 현실 사회 반영을 하려고 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가 불편한 게 아니라 영화가 다루고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생각나서 불편했다.(영화 재밌습니다 안심하고 보세요!!)
가장 높은 책임자인 장관으로서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대책 회의에서 '협의해서 진행하세요.'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만 하고 퇴장해버리는 안전처 장관(김해숙 분)이 불편했고, 속칭 '기레기'라고 불리기에 손색없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 기자(유승목 분)가 불편했다.
현장 인부가 안전사고로 죽었는데 아무 죄 없는 같은 피해자의 입장인 세현(배두나 분)에게 계란을 던지며 너 때문에 우리 아들이 죽었다고 소리치는 인부의 어머니(예수정 분)가 불편했고, 남편이 걱정되어 온 세현(배두나 분)을 진심으로 위로하기는 커녕 서로 사진을 찍겠다며 본인의 이름을 알리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불편했다.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있으면서도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제일 먼저 새로 들어간 회사의 신입사원 연수를 못 가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터널 내 또다른 생존자 미나(남지현 분)가 처한 현실이 안타까워 불편했고, 터널 공사 간 안전에 필요한 락볼트가 애초에 제대로 안 들어갔을 거라고, 원래 다들 그렇게 한다며 투덜대는 익명의 공사 관계자들이 불편했으며, 마지막에 구출되어 나온 정수를 빨리 이송해야 하는데 곧 장관님이 도착한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는 정부 관계자들까지... 영화가 진행되면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불편했다.
굳이 넣을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넣지 않았겠지만 영화 속 SNS나 댓글에서의 반응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신문 기사나 TV 토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이 되긴 했습니다.)
현실감 가득한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왜 저기서 아무 말도 못해?' 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지만 '나였다면 별다를 게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마블이나 디씨코믹스의 영화처럼 끝나고 쿠키영상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 앉아 멍하니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소설 원작의 영화라 100% 허구인 걸 알고 있는데도. 감독과 제작진들의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 좋은 연기로 인해 피부에 와닿은 현실감 때문이었을까. 최근 몇년간 TV로 봐왔던 굵직굵직한 사고들과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느꼈던 답답함이 오버랩돼서였을까.
마지막으로 맥락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영화를 보며 떠올랐던 노래를 하나 추천하고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불행한 사고를 TV나 인터넷으로 접하기는 하지만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는커녕 자신은 '다수의 이익'을 위한다고 생각하며, 혹은 그냥 재미로, 아무 생각 없이 당사자들이 들으면 가슴이 찢어질 아플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들이 영화에도 나오고 현실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아픈 말을 내뱉으며 이렇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