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흔들림을 마주했던 한 달의 기록
며칠을 표정 없이 흘려보냈다.
20대의 중반,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거세지는 흔들림에는 당해낼 수가 없다.
본인은 늘 자신을 무감각한 사람이라 칭해왔다.
그동안의 거센 바람이나 변화에는 특별히 아파하지 않았으니 난 강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글쎄.
냉혹한 사회에 그동안의 울타리 없이 내던져지니 이토록 말랑할 수가 없다.
코로나 19로 무너진 사회, 그토록 바라던 ‘음악 기자’로서의 취업에 성공했으나 채용이 보류되었다.
합격 연락이 왔던 그날, 기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하얀 이불을 당최 가만 둘 수가 없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한껏 구겼다가 쫙 피고, 행복한 만큼 이불에는 주름이 새겨진다.
4일 정도 지났을까, 그동안의 이불 주름이 완벽히 펴지기도 전에 ‘보류’ 통보를 받았다.
취소와 다름없었다.
‘그럼 그동안 해온 내 노력은? 음악에 대해 쓴 글과 피드백을 몽땅 모아 둔 내 포트폴리오는? 다시 포트폴리오를 제출할 기회는 올까?
음악계에는 ‘기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난 이제 어쩌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며칠을 몇 평이되지도 않은 작은 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거세게 흔들렸던 내 한 달은 이랬다.
첫째 주 - ‘...’
둘째 주 - 억울해서 미치겠다.
셋째 주 - 연락이 오기는 할까. 미친 듯이 사람인을 들락날락.
넷째 주 - 아, 연락은 오지 않겠구나.
역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담담했다.
넷째 주에 나는 비워내기를 실천했다.
그냥 그렇게 됐다.
본인은 원래가 겁이 많은 사람이라 마음의 쿠션을 무지막지하게 깔아 둔다.
모조리 비워내야 더 가볍게 흔들릴 수 있다.
비워내지 못해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던 첫째 주, 어쩔 수 없이 비워내야 하는 상황에 반항했던 둘째 주,
불안함밖에 남지 않아 불안정하게 흔들렸던 셋째 주.
그리고 비워내기를 실천하며 가볍게 흔들렸던 넷째 주로 고비는 끝자락에 섰다.
결국 4월이 되었다.
다섯째 주를 맞이하며 채 없애지 못했던 미련을 비워내려 출근했어야만 했던, 반드시 그렇게 하고 싶었던 회사에 연락을 했다.
그 미련은 또 어찌나 질기던지 스테이크의 힘줄보다 질겼을 거다.
오늘 보내는 게 맞을까, 일주일만 참아볼까, 이 미련이 생각보다 무거우면 어쩌지.
그 흔해빠진 운명에 맡기기로 하고, 어쨌든 보냈다.
“3월 중 주신다고 하셨던 연락 기다리고 있습니다. 회신 부탁드립니다.”
이에 답은 2분 만에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현 상황에서는 채용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와! 채용이 취소됐다!
결국 채용은 취소되었다.
드디어 채용이 취소되었다.
굉장히 시원했다. 눈물 나도록 시원했고, 그만큼 씁쓸했다.
2분 만에 얻을 수 있었던 해답인 것을, 나는 ‘미련’이라는 이름의 큰 고비를 넘었어야 했다.
정확히 35일 후였던 내 비워내기의 끝에서, 난 드디어 작은 방구석을 당장에 뛰쳐나가고 싶어 졌다.
시원함이 씁쓸함에 잠식될까 무서워 곧바로 케이크를 사 먹었다.
입안이 달달해진 만큼 씁쓸함이 지워지기를 바라며.
케이크를 먹은 다음날. 바로 오늘, 글을 쓰고 있다.
이를 행함에 거리낌이 없고 편안한 이유는 그만큼 비워낸 마음의 공간이 외롭지 않기 때문.
‘비워내기’가 끝나면 ‘채워 넣기’가 시작된다. 이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한 번에 비워내지 못했던 만큼 한 번에 채워 넣을 수 없지만, 차근차근 채워 넣는 여러 ‘행함’들은 또 다른 동기를, 용기를, 그리고 산뜻함을 선사한다.
한동안 케이크를 입에서 떼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삶의 한 부분을 뼈저리게 겪으며 성장한다.
+ 4월이 한참 지나 5월로 들어선 이제야, 본 글을 기고한다. 보다 더 정돈된 마음으로.
Today’s Music
Liszt - Un sospiro (탄식)
생각보다 잔잔했던 마음처럼 흘러가는 피아노 선율.
‘탄식’이라는 제목을 가진 리스트의 피아노 곡이 짧고 굵은 탄식과 함께 모두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