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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Dec 06. 2021

엄마! 내년부터는 김치 사 먹읍시다

가시방석

며칠 전, 엄마가 절인 배추를 양념에 버무리고 계셨다.


"엄마, 내가 도와줄 건 없어?"

"지금은 없어! 필요하면 부를게"


아픈 허리를 연신 두들기며 엄마는 올해도 김장을 하셨다. 하나밖에 없는 큰 딸이 도와 드릴 수 있는 건, 김치통을 옮기고 절임배추가 담겼던 박스를 밖으로 내다 놓는 일뿐이다. 그러고도 엄마는 내가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며 엄지를 치켜 새우신다. 그럴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지기는 커녕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내가 장애가 없었더라면  빨간 대야를 사이에 두고 엄마와 마주 앉아 오순도순 배추 속을 버무렸을까?


작년 김장철, 엄마는 김장은 올해까지만 할 거라고 선언하셨다. 김장 노동으로 지친 어깨와 허리를 두들기며 내년엔 김치를 사 먹어야겠다고 하셨다. 엄마를 많이 도와드리지 못해 김장철마다 항상 가시방석이었던 나는 가족들 중 가장 먼저 환호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올해도 엄마는 절인 배추를 20포기나 사셨다. 문득 지난여름,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김치 한 포기를 사다 먹은 일이 스쳐 지나갔다. 아빠가 생김치를 드시고 싶어 하셔서 샀는데 가족 모두 김치를 잘못 샀다며 손사래를 쳤다. 맛 구별 잘하지 못하고 뭐든지 맛있게 잘 먹는 나도 마트에서 구매한 김치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평소에 먹던 엄마 김치하고  맛이 많이 달랐다.


우리 가족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 새우는 엄마 손맛이 나는 김치 20포기를 사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엄마의 김장포기 선언을 지지해드리기 위해, 지키지 못할 빈말이라도 외쳐본다.


엄마! 내년부턴 김치 사 먹읍시다. 내가 돈 많이 벌어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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