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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 Jun 04. 2024

슬픔이 필요치 않은 회귀의 고리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읽고

나는 모든 미래가 오늘의 치명적 오역이라고 믿는다

-[최후의 후식] 中


 푸앵카레의 재귀정리에 따르면 모든 것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엔 다시 처음의 상태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 수학적 명제는 불교의 윤회설과도 매우 닮아있다. 만약 그것들을 우리 삶에 대입한다면, 지금 우리는 둥글게 생긴 고리의 한 점을 스쳐 지나가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날이 저무는 때, 이별의 순간이고, 생의 마지막이라고 한들 슬퍼할 이유가 있는가? 그것을 앞에 두고 웃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절망에 몸부림치는 격정이 아닌 점잖은 어조와 시선으로 시인은 자신이 마주한 몰락을 바라본다. 거기엔 굳이 슬퍼할 이유가 없다. 그저 지금 그 순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니.


차창에 기대 노루잠에 빠진다

치어 떼처럼 망막 위를 헤엄치는 빛의 산란

꿈속에서조차 나는 기적을 행하지 못한다

숨 꾹 참고 강바닥을 걸어 도강(渡江)한다

-[미망 Bus] 中


 시인은 마치 소설처럼 하나로 이어진 긴 이야기를 푸는 것만 같다. 허무와 염세에 빠졌더라면 몹시 지루했을 소실의 이야기들은, 정갈한 단어로 표현된 이미지와 슬픔을 억제한 위트 있는 표현으로 되려 강렬하게 다가온다. ‘미망 Bus’에서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쯤으로 보이는 강을 담담하게 건너고, ‘아내의 마술’에서는 그것보다 더 슬픈 풍경이 있을까 싶은 아내의 울음도 신기한 마술 같다 표현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냉정하다거나 무심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오랜 시간을 거친 무뎌짐에 더 가깝다.

 또한 시인은 1부의 몰락에서 그치지 않고, 2부에선 회귀하며 돌아오고자 하는 열망을 그린다. 그것은 성과 배설로 대변되는 생의 욕망, 리비도적 욕구이다. 행여 시인을 통해 의도된 바가 아니라 할지라도, 시집의 구성은 몰락 이후에 소생의 이미지가 배치되어 있다. 그건 삶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일반적인 생의 과정이 아닌 죽음 이후에 생이 돌아오는 '윤회'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킨다.


오오, 내 가엾은 딸아

어서 이리 오렴

너의 빈약한 절벽을 한입에 가려주고 싶구나

-[배고픈 아비] 中


 2부의 '배고픈 아비'를 보면서는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가 떠올랐다. 그림처럼 예술과 외설의 중간 그 어딘가에 시인은 교묘하게 메시지를 숨겨두었다. 자신과 분신, 삶과 죽음. 자신의 모든 것이 굴레 속에 있고, 생과 사는 실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죽어갈 뿐이고, 그저 살고자 한다. 비슷하게 ‘여, 자로 끝나는 시’에선 그 안의 내용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제목의 '여자'만이 의미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양이 음을 말하고, 남자라서 여자를 말한다. 그의 이야기 속에선 사사로운 감정의 진폭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시인이 지나치게 화자에게 일어난 사건을 제삼자가 관찰하듯이 적었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3부에 들어 시인은 그래도 인간적으로 화자와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를 한다. 소중히 접어둔 사진을 툭 꺼내 보여주는 것 같은 이야기들은, 그 시절의 공기나 풍경이 느껴질 만큼 생생하다. 하지만 시인은 있는 힘껏 그 사건들을 껴안지 않고 이미 그것들로 남은 상처를 숨기고자 한다. 이 시집이 한편으론 소설책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3부를 읽고 나면 화자가 어떻게 속세를 떠나 빛나는 이마를 가진 스님처럼 초월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미 사랑하는 것들과 이별했고, 그것이 당연한 순리임을 배웠다. 시인의 그런 태도가 울림이 큰 것은 교조적인 이미지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자전적인 어조로만 채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미래에 속한다고

미래 속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애인이 나에게 가르쳐주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 아프네

-[어느 날 은행에 갔었네] 中


 언제나 생의 영원한 숙제처럼 마지막 순간을 예상한다. 어떤 날씨에, 어떤 풍경 안에, 어떤 자세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끝맺음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 상상 가운데 무엇보다 강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질문이 있다.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나?'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주어지는 결과 또한 완벽하게 마음에 들 수 없지만 그 모든 것이 내가 겪어야 할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그 모두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시인처럼 조용히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슬픔과 기쁨이 모두 빛이 바랠 만큼 많은 나이가 든 훗날에 꼭 손에 쥐고 있고 싶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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