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임 Dec 14. 2021

연말

X세대의 지금 #1

연말이다. 해가 갈수록 시간이 빠르다는 말은 40대 중년이 다되어 가는 나이에도 문득문득 무섭게 체감되는 말이다. 나의 일 년은 회사의 굵직한 분기 별 이벤트 중심으로 계획되어있고, 그 이벤트 때마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 아무 생각 없이 돌진하며 영혼과 체력을 갈아넣다 보면 어느새 이렇게 연말이 다가온다.


연말은 한해의 성과를 평가하고 평가받는 시간이고, 또 다른 새로운 업무를 찾아 조직을 이동할 수도 있는 날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승진의 기쁨도 맛볼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반면에 일한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받지 못했다고 좌절하는 시간이며, 내가 원하지도 않는 부서에 갑자기 발령이 내려질 수도 있는 날이고, 아무 이유도 없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리더 자리를 내어놓아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맘때 회사에는 이러한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한다. 어느 누구는 기쁘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며 마무리하겠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생존을 위협당할 만큼 괴롭고, 원치 않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씁쓸함을 삼키는 심난한 마무리일 수도 있다. 그 중간에서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며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나 같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겠지만 사실 지켜보는 것 또한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매한가지다.


...


그렇게 어찌저찌 올해도 아무 일 없이 잘- 지나갔다고 안도할 수 있다면 그건 단지 회사에서의 일일 뿐, 저마다 "왜 때문에 저는 매년 삼재인가요?"를 외칠만한 괴로운 개인사도 나이가 들수록 참 속속들이 다양하게 찾아온다. 나의 일년과 친구들의 일년을 뒤돌아 보면, 교통사고를 비롯한 각종 사고를 비롯하여, 건강검진했더니 아프다고 해서 (보통 검진 안 하면 그냥 모른 채 산다)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하는 케이스도 다양하고, 이혼 및 각종 소송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으며, 더더군다나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생겨난 심각한 생계 문제와 어쩔 수 없이 바뀐 생활 변화에 적응도 해야 했고 그 와중에 24시간 가족 돌보미 역할까지 소화해내느라, 모두가 늘 피곤했고 어느 누구도 웃기가 쉽지 않은 한 해였다. 


그래서 모임이라도 어쩌다가 하게 되면, 다들 일단 건강한지 안부가 제일 궁금하고 식구들은 평안한 지가 그다음이고 별일 없는지 세 번째로 묻게 되는데 어느 하나 문항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인당 평균 두 개 사건 정도를 보유(-_-)하고 있었고 그걸 듣다 보면 '세상 살기 참- 어렵다... 뭐 이렇게 나이가 들수록 난이도가 더 올라가냐... 해결해야 할 문제도 너무 어렵고 해결 방법을 찾기도 어렵고... 근데 나는 아직 이 모든 것을 감당할 만한 멘탈이나 체력도 갖춰지지도 않았는데... 그냥 너무 다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그러다 보면, 모임에서는 당연히 유명하다는 몇 가지 약들이 추천되고 그 자리에서 쿠팡 로켓 배송으로 주문도 함께 하게 되며 (누군가 이런 분야의 전문가가 꼭 지인 중에 있기 마련!) 운동을 함께 하자는 약속도 하고 (그래서 그렇게 등산을 가는 거다! 제일 하기 쉽고 약속 지키기도 쉬우니까...) 그러면서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잘- 헤쳐나가기 위해 서로에게 기대고 또 누군가는 당기고 또 누군가는 끌려가며 무언의 마음들을 주고받는다.


...


올해도 여지없이 예쁜 다이어리를 하나 장만했다. 반도 못 쓰고 매년 방치해두지만 그래도 이 나이가 되도록 새롭게 다짐하고 싶은 마음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나이가 많다고, 더 나이가 들어간다고 주저앉고 싶지 않다. 심난해도 어려워도 그래도 끝까지 희망의 말들로 채워 넣고 싶다. 20대 때의 싱그러운 다이어리처럼 나의 40대의 다이어리에도 매년 갱신되는 싱그러운(?) 다짐들로 다시 또 채워본다.



-오늘의 BGM. Close To You, 카펜터스


21.12.14 라임



작가의 이전글 카세트 테이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