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웰과 조선
명왕성1편에서 예고했듯이, 이번 글부터 2편에 걸쳐서 명왕성을 직접 발견하지는 않았지만 발견에 크게 기여한 퍼시벌 로웰이라는 인물에 대해 적어보겠다.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 1855~1916)은 미국 보스턴의 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명문가라고 특별히 적은 것은 집안이 단순히 부(富) 만 추구하지 않고 지(知)도 추구했기 때문이다. 퍼시벌 로웰의 남동생은 24년간 하버드대학 총장을 지낸 아보트 로웰(Abbott Lowell, 1856~1943)이었고, 여동생으로 1926년 퓰리쳐 상을 받은 여류시인 에이미 로웰(Amy Lowell, 1874~1925)이 있었으며, 친척들 중에도 문인이나 학자가 많았다고 한다.
집안의 성향은 로웰의 행보에서도 바로 나타난다. 명문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있는 명문대학 하버드 대학에 들어간 로웰은 수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고, 졸업 때 태양계가 성운이 결집해서 생성되었다는 학설에 대해 연설할 정도로 수학과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정작 졸업 후 한 일은 학문의 길이 아니라 집안 사업인 면방직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1880년대 로웰은 일본에 관심을 가지면서 집안 사업을 떠나 일본 등 극동 아시아를 많이 여행했다. 여행 중 일본에 머무르다가 1883년 주일 미국 공사의 요청을 받아 조선의 미국 수호통상사절단 보빙사를 수행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 때 로웰은 조선 사절단과 함께 고향인 보스턴을 방문하는 등 보빙사 사절단의 미국 여행 동안 보좌를 잘 했다고 한다. 조선으로 귀국한 사절단은 고종 임금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고종은 답례로 로웰을 조선으로 초대했다. 이를 기회로 로웰은 조선을 방문해 국빈급으로 대접받으며 수개월을 머물렀고, 이후 한두 번 더 조선을 방문하며 조선의 풍물을 자세히 기록했다. 이러면서 노월(魯越)이라는 한국이름도 생겼다.
1886년 로웰은 조선 방문 경험을 토대로 '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 A Sketch of Korea'라는 책을 펴냈다. 'Land of Morning Calm'... 고요한 아침의 나라... 많이 듣던 표현이지 않나? 朝鮮이라는 한자말을 영어로 풀어 쓴 문구로 널리 쓰이는 바로 그 표현이다. (이 표현이 로웰의 책으로부터 유래한 것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당시 조선의 조정에서는고려라는 나라는 이미 수백 년 전에 멸망한 왕조인데 서양에서 조선을 Korea로 부르는 것이 불만이었단다. (그럼 문 닫고 지내지 말고 고려처럼 외국과 적극 교류했어야 -_-) 그런 불만을 알았는지 로웰이 조선이라는 국호를 영어로 풀어써서 첵 제목을 정했던 것이다. 이 책에는 고종 임금의 어진을 포함한 진귀한 조선 말기 사진 25매를 비롯해서, 미국인의 눈에 비친 당시 조선의 풍경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맨 위 제목줄 배경 사진이 바로 고종 임금의 어진이 포함되어 있는 책의 속표지이다.
로웰의 'Chosön...' 책은 한국에서 대중적인 천문학자로 유명했던 조경철 교수(1929~2010)에 의해 2001년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책의 내용은 천문학과 관련 없지만, 천문학자로서 로웰이 유명한 등의 이유로 한국어 번역본도 천문학자가 출간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번역본의 내용을 살펴본 사람들에 따르면, 당대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조선을 불결하고 미개한 지역으로 표현하기 일쑤였던 반면, 로웰은 조선의 고급 문화를 접하면서 조선 문화의 의미를 상당히 잘 이해했고, 되도록 조선에 누를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사려 깊게 조선을 묘사했다고 한다. 아울러 로웰이 수학을 전공했던 만큼 당대 조선의 수학자 김낙집과의 친분도 적혀있다고 한다.
중국, 조선 등 동아시아를 여행하던 10년 가까운 동안 로웰은 거의 대부분의 기간을 당시 서양인들에게 관심 받았던 일본에서 머물렀다. 그러면서 '극동의 혼'(The Soul of the Far East, 1888)과 '노토'(Notto, 1891, 일본 혼슈지방의 노토반도에 대한 책), '신비로운 일본'(Occult Japan, 1894) 등 주로 일본 풍물을 중심으로 극동 아시아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저술했다. 이 중 '극동의 혼'이 당시 로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런 업적 등에 힘입어 로웰은 1892년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단순히 업적 때문 만은 아닌 듯한 것이,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본부가 로웰의 출생지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등 지방 명문가였던 로웰의 집안 배경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거든.
이 정도로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었던 로웰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다음 글 명왕성 3편에서는 명왕성 발견에 기여는 했으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천문학자 시절의 로웰에 대해 적어보겠다.
2006년 명왕성이 행성에서 왜해성으로 재분류되던 시기를 즈음하여, 한국 언론에서는 로웰과 조선의 인연을 언급하면서 명왕성과 한국이 인연이 많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이건 한국 언론에서 너무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해석한 것 같다. 로웰이 명왕성을 직접 발견한 것도 아니고, 극동 아시아를 여행하는 동안 주로 일본에 머물렀고 주관심사도 일본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렇다. 당시는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을 하기 전이어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지금과는 달랐다지만 말이다.
훗날 명왕성 발견에 기여하는 천문학자가 된 로웰이라는 미국인이 젊은 시절에 개항기의 조선을 방문하여, 조선의 고급 문화를 이해하고 조선의 풍물에 대해 사려 깊게 적은 책을 펴냈다... 이런 사실을 기억하는 정도가 한국으로서 온당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