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쓴 책으로 전 세계 900만 부, 국내 55만 부가 팔린 글로벌 베스트셀러이다. 이스라엘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2017년 한국어로 출간된 이후,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그의 전작 <사피엔스>가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이유에 대해 밝힌 책이었다면, <호모 데우스>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만, 책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예언서라기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기술해 놓은 책이다. '미래의 인류는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유발 하라리는 이제껏 밝혀진 인간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사실들을 기반으로 그가 예측하는 미래를 그려낸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마주하는 첫 페이지에는 저자의 친필 사인이 인쇄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이 한 문장이 적혀있다.
Everything Changes
이는 500페이지가 넘는 책에 담긴 방대한 이야기를 하나로 압축해 놓은 문장이자 책 내용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이다.
그렇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모든 것은 변화한다'라는 <진화론>을 바탕으로 모든 가능성을 제시한다. 같은 맥락에서 진화론과는 반대되는 부분, 즉 아직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은 철저히 배제한다. 이를테면 '영혼', '의식적인 마음'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믿음의 대상인 '영혼'과 달리 '의식하는 마음'은 구체적인 실제이다. 인간은 살아가는 매 순간 감정과 감각들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경험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이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므로 이를 차용하기를 거부한다.
대신, 미래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들을 돌아보며 세계를 정복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특별함을 찾아낸다. 그 특별함은 바로 '상호 주관적 실재'인데, 상호 주관적 실재란 '여러 사람이 실재한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돈'은 객관적으로는 가치가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가치가 있다고 믿으므로 현실에서 그 가치를 발휘한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은 '국가, 종교, 문자'와 같은 상호 주관적인 실제를 만들어 냈고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협력을 통해 세계를 이끄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호 주관적 실재는 영원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과거 '신'으로 대변되었던 '종교'가 무너지고 현재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인본주의'가 중요해진 것처럼, 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미래에는 '이를 대체할 또다른 무언가가 등장할 것이라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그것이 '데이터'가 될 것이라 예측한다. 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이미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이제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를 쓰기보다는 대중들이 모이는 플랫폼에 세세한 일상을 실시간으로 업로드한다. 사진, 글, 영상 등 형태를 막론하고 데이터화된 기록들은 공유되지 않은 개인 적인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과 의미를 얻고 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에서 수많은 팔로우를 가진 인플루언서들에게 부와 명예가 쏠리는 현상을 보라!
이에 더해 딥러닝으로 더 똑똑해진 AI는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가고 있다. 구매 기록, 검색 기록, 시청 기록 등 우리가 더 많은 데이터를 남길수록 AI는 나에게 가장 최적의 선택지라는 편의를 제공한다. 더 이상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이전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손에 쥔 핸드폰을 켜서 앱 하나만 열어도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꼭 필요한 정보들이 모습을 드러내니 말이다. 이렇듯 시대는 사람들로 하여금 점차 더 많은 것들을 데이터화해 세상과 공유하기를 촉구한다.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데이터들은 점점 더 '거대한 데이터의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AI는 이를 바탕으로 점점 더 똑똑해질 것이다. 미래에는 인간의 관리, 예측 영역을 벗어날 만큼 전지전능해진 AI 앞에서 인간은 더 이상 고유하고 절대적인 존재로 설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존재 자체가 필요 없어 질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예측한다.
"인간 자체보다 데이터가 더 중요해지는 세상, 그래서 결국 잉여로워진 인간은 멸종하고 거대한 데이터의 흐름만 남게 되는 세상."
이것이 저자인 유발 하라리가 예측하는 극단의 미래이다. 벽돌만큼 두꺼운 이 책은 이렇게 끝이 난다. 몇 백 페이지를 읽어 내려간 끝에 이리도 섬뜩하고 허무한 결말을 마주하다니,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니 참으로 오싹해진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인간은 정말 우리의 존재를 위협할 만큼 위험한 미래를 알면서도 무조건 적으로 앞만 보며 달려갈까?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No이다. 그건 지나온 역사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인간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지는 상황에도 언제나 현명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남았다. 그 비법은 바로 '다 함께 힘을 모아 의식적으로 옳은 선택'을 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핵무기가 발명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핵이 터져 종국에는 모두 멸망할 거라며 두려워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수많은 핵 가운데에서도 평화를 유지하며 잘 살고 있다. 이처럼, 데이터가 중요해지는 시대에도 우리는 서로 협력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 지지선을 구축하며 기술을 긍정적으로 제어하고 발전시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이것을 다시 꺼내와야 한다. 그것은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인간의 '의식'과 그 속의 '감정'들이다. 그래서일까? 책의 마지막 장, 마지막 문단에 이르러서 저자는 자신의 전제를 단번에 뒤엎을만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이 질문에는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저자의 진짜 속마음이 드러나 있는 것 같다.
현대 과학의 한계로 인해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의식'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의지는 늘 그래왔듯 앞으로의 미래에서도 주효하게 발동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로 아닌 것은 거부할 것이며 나의 이익만을 생각해 극단으로 가기보단 세상과 주위를 둘러보고 보듬는 '감정'을 기반으로 의사결정들을 검토할 것이다. 인류 역사가 그렇게 흘러왔듯이, 미래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이 책을 덮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 미래를 밝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를 마냥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실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불확실해 보이는 미래에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걱정을 덜기 위해 펼친 책이었다. 그리고 이제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미래에 전도유망한 직업을 찾겠다고 동분서주하며 초조해하기보다 알고리즘에 빠져 편협해지기 시작한 나를 먼저 구해야겠다고.
데이터에 잠식되고 데이터의 일부로만 기능하는 부속품이 되지 않기 위해 우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 더 열심을 내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세상을 경험하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키워진 '유연함'과 '폭넓은 사고의 힘'이 내 안의 의식을 강화시킬 테고 이는 알고리즘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탄탄한 길을 열어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기술을 잘 활용하면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현명함을 가꾸어 가기를!
다소 편협한 전제를 바탕으로 극단의 비관적인 미래를 그려낸 저자 유발 하라리. 사실 그의 진짜 의도는 '우리에게 있을법한 극단의 미래를 제시하면서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길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예상보다 더 방대했고 충격적이었으며 도발적이기까지했던 역사학자의 미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의식도 다시금 각성되는 느낌이다.
참으로 어려웠고 심오한 책이었지만 Chat GPT처럼 온 세상이 데이터를 중심으로 격변 하고 있는 요즘, 한번쯤 읽어 볼만한 책이다. 다만, 그가 제시하는 결말때문에 지레 겁먹고 비관론자가 되지는 말길! 그저 그가 던진 미래에 대한 굵직한 화두들을 토대로 스스로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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